뉴욕에서 처음으로 맞는 생일이었기에 나에겐 의미가 남달랐다. 엄마는 언제나 생일을 유별나게 챙기는 내가 이상하다고 했지만 나는 언제나 내 생일이 좋았다. 어릴 때는 친구들과 함께 롯데리아에서 파티를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또 갖고 싶던 선물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언제나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게 많은 나였지만 생일만큼은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나의 욕망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기에 좋았달까. 그렇기에 결혼하고 나서 맞는 첫 생일에 어떤 음식을 먹을지는 나에게 무척이나 중요했다.
미국에 오기 전, 한 인플루언서가 뉴욕 링컨센터에 위치한 한 유명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제집 드나들듯하며 포스팅을 올리는 것을 본 기억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고급 인테리어로 장식된 내부는 '여기 아무나 못 와요'라는 자태를 뽐냈고 가격 또한 기념일이 아니면 먹지 못할 가격이었다. 그런 곳을 과장 조금 보태 매 주말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는 그 인플루언서가 부러웠다. 그리고 그곳을 가고 싶었다.
그랬기에 생일 한 달 전, 남편이 무엇을 먹고 싶냐는 말에 나는 그 레스토랑을 떠올렸다. 그곳을 가고 싶다는 말에 남편은 웬 이탈리안 음식이냐며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내가 먹고 싶다는 말에 웹사이트로 들어가 예약을 했다. 마치 어린 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나는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마침내 다가온 나의 생일날, 나는 두 달이나 미리 사둔 생일용 원피스를 입고 집 밖을 나섰다.
매번 문 밖에서 구경만 하던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니 격식 있는 캐주얼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과 손님들로 가득했다. 생각보다 퇴근 후에 온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 남편에게 물어보니 법카로 밥을 먹으러 왔을 것이라 말했다. 서버가 안내해 주는 이인용 테이블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며 이곳에 오려면 어떤 회사에 취업을 해야 할지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 금융업에 종사하면 이런 곳에 많이 오리라. 하지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금융 쪽은 아니기에 오늘 남편이 데려와 준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잠시 기다리자 서버가 메뉴를 들고 나타났다. 우리는 먹고 싶었던 엔트리와 메인, 그리고 와인까지 한병 주문한 후 담소를 나누었다. 기대했던 문어 디쉬는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있었고 파스타는 한 때 미슐랭 투스타인 이유를 반증하는 맛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내가 그렇게 꿈꾸던 식당에서 한참을 앉아 식사를 이어갔고 디저트까지 맛있게 먹은 후 근처 재즈바에서 행복한 생일날을 마무리했다.
근 세 달 가까이 근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듣던 ESL 과정이 끝이 났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하게 인사만 주고받던 친구들은 끝날 무렵에는 서로 많이 친해져 인스타그램 맞팔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이곳에서 친구를 사귈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다. 수업의 마지막 날이 다가올수록 모두 이 과정이 끝나감에 아쉬워했기에 우리는 수업 마지막 날 다 같이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기로 약속했다.
항상 마트를 가며 지나쳤던 동네 페루 음식점에 들어가 각자 음식을 주문했다. 나는 몇 년 전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과 같이 간 엘에이에서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는 로모 살타도라는 음식을 주문했다. 각자 음식을 주문한 후 우리는 서로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나누며 조금 더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메뉴가 나오고 생각보다 양이 많았던 탓에 나는 모두와 함께 내 음식을 나누었다. 음식까지 나누자 정말 마치 식구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친구들과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내심 서운했지만 이런 우정을 나눌 수 있었음에 감사하기로 했다.
한참을 먹고 떠들다 보니 시간이 한참 흘러있었다. 이제 계산을 하고 집을 가야 할 것만 같이 보였는데 그 어느 누구도 자리에서 엉덩이를 뗄 생각을 하질 않았다. 그리고 십여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기억은 잘나지 않지만 수업 도중 어쩌다 '나 지난주에 생일이었어'라고 한 말을 친구들이 흘려듣지 않고 기억을 해준 것이었다. 나는 케이크를 받고 어쩔 줄 몰라했고 그런 나를 둘러싸고 친구들은 박수를 치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예상치 못한 축하에 갑자기 눈물이 북받쳐 올라왔지만 애써 속에서 올라오는 울음을 꾹꾹 참았다. 정말 이 수업을 듣지 않았으면 생판 모르는 남일 수 있었던 친구들에게서 타국에서 받는 축하란. 말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감동이 내 안에 물밀듯 차올랐다.
생일을 유별나게 챙기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내가 나의 생일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진짜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생일에 내가 축하를 받아야만 할 것 같은 주변인들에게 축하를 받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외로워졌다. 한동안 카카오톡에 생일 알람을 해두지 않았던 이유는 내 생일을 알리지 않으면 서운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생일을 공공연하게 알리지 않아 축하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는 카카오톡에 내 생일을 설정해 두고 축하 인사를 기어이 받아내곤 했다. 그래야만 그들과의 관계가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야만 내가 아직 그들에게서 잊히지 않은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런 나였기에 이번만큼은 더욱 특별한 생일이었으면 했다. 남편 말고는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내가 외롭지 않게.
같은반 친구들이 내게 건넨 케이크 한 피스는 내가 고심해서 계획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은 생일 케이크보다 백만 배는 더 귀한 생일 케이크였다. 우리는 그 작은 케이크를 한 입씩 나누어 먹었다. 태어나 난생처음으로 먹은 맛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친구는 내게 플랑(flan)을 처음 먹어보냐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라고 했다. 나는 푸딩과도 같은 식감의 케이크를 오래도록 입안에서 혀로 굴리며 음미했다. 절대 잊지 못할 맛이자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젠 더이상 카카오톡에 생일 알림 설정을 해두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