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생신 축하드립니다
“MRI 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혹시 잠은 잘 주무시나요?”
“잠은 멜라토닌을 먹어야만 옵니다.”
“그럼 수면 부족 혹은 수면 장애로 인해 오는 두통일 수도 있겠네요. 이런 증상이 얼마동안 있으셨나요?”
얼마동안이라… J 씨는 의사의 벗어진 머리를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당신도 나와 같은 처지로구먼. 머리숱은 내가 좀 더 많지만 말이야.
“환자분?”
“아마 딸이 태어나고부터 인 것 같습니다만.”
“따님이 언제 태어나셨나요?”
“30년 전에요.”
J 씨의 대답에 의사는 그제야 모니터에만 연신 붙어있던 두 눈알을 굴려 J 씨를 바라보았다. 의사는 잠시 J 씨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30년이면 꽤 오래되셨네요.”
의사의 대답은 별일 아니라는 듯 덤덤했다. 삼십 년이 오래된 시간일까. J 씨는 의사의 눈썹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적은 머리숱에 비해 눈썹 숱은 많아 보였다. 머리숱은 많은데 반해 눈썹 숱은 날이 갈수록 적어지는 자신과는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딸과 아내는 그가 담배를 많이 펴서 그런 것이라 잔소리하곤 했지만 그 때문이 아니었다.
때는 바야흐로 20년 전, 그가 과장 진급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이미 동기들은 진즉 과장을 단지 오래였다. 학창 시절 공부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그였지만 그가 이토록 쉬이 진급을 하지 못하고 있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그의 전부인 딸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그로 인해 잠들지 못하게 했고, 수면 부족으로 일에 집중할 수 없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의 딸이 보통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알았다. 그녀는 세상에 나와 이틀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울어댔다.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병동이 떠나가라 울던 아이는 엄마의 젖을 물기도 거부한 채 울어댔다. 그리고 그 조그만 몸에 담긴 수분이 다 쏟아지고 나서야 아기는 비로소 엄마의 젖을 물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엄마의 젖을 물고 젖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젖꼭지를 물고 놔주지 않아 아이 엄마는 수유를 하고 나면 언제나 온몸이 뜨겁게 붉어져 있었다. 이에 지친 아내는 결국 본인의 계획보다 훨씬 일찍 단유를 해야만 했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서는 엄마 손을 잡고 놔주질 않았고, 자신이 아끼는 인형은 절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의 손과 자신의 손 사이에 찬 습기로 인해 손바닥이 퉁퉁 부르틀 때가 되어서야 엄마의 손을 놔주었고, 인형의 머리칼이 다 뽑혀 없어질 때까지 인형의 머리를 빗었다. 혹여나 소유욕이 강한 아이일까 싶어 그녀에게 여러 개의 인형을 사주어도, 동생을 낳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주어도, 아이는 변함이 없었다.
“하고하고 병입니다.”
“네? 그게 무슨 병이죠.”
“하고 싶은 게 계속 끊임없이 있는 병이죠.”
“그런 병이 다 있나요?”
“네. 있습니다.”
J 씨는 딸의 계속되는 기이한 행동에 용하다는 소아과는 다 다녀보았지만, 의사들은 쉬이 해답을 내놓질 못했다. 기껏해야 아동 ADHD가 의심된다는 소리나 했다. 아이의 증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고, 그와 아내는 점점 말라갔다. 그러던 중 아내 지인의 지인이 미국에서 유학하고 온 한 정신과 의사를 추천해 주었고 그리하여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런데 말도 안 되는 병명이 의사의 입에서 나오자, J 씨의 안에서 그간 억눌러 왔던 분노가 일어났다.
“그게 도대체 무슨 병이란 말입니까? 그딴 병이 어딨어요!”
“아마 부모님 두 분 중 한 분이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극도로 억압하고자 했던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그런 병명은 처음 들어본다고요.”
의사는 그런 J 씨를 보며 처음 보는 반응이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하고 싶은 욕구를 많이 참고 살았을수록 아이에게는 더 심하게 발현되죠.”
옆에서 의사의 말을 가만히 듣던 아내는 돌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J 씨는 의사를 바라보았지만, 의사는 덤덤하게 J 씨의 아내를 훑어보다 이내 손가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내분의 손톱이 극도로 짧으시네요. 엄청난 결핍과 욕구를 억제하기 위한 증거 중 하나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내도록 J 씨의 아내는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J 씨 또한 운전대를 잡고 끝없이 펼쳐진 능선을 바라보았다. 그는 시선을 돌려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세상모르게 잠든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이런 천사 같은 아이가 불치병이라니?
딸이 태어났을 때 J 씨는 난생 태어나 처음 느끼는 감정을 느꼈다. 오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위로도 형, 아래로도 남동생이었기에 여자라는 존재는 그에게 그저 낯선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렇게 성인이 된 어느 날, 직장 동료의 집에 놀러 갔다 우연히 만난 옆집 여자에게 알 수 없는 묘한 이끌림을 느꼈다. 까만 눈썹에 흰 피부, 귀엽게 생긴 외모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그 무엇보다 그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녀의 단정한 손톱이었다. 아무런 꾸밈없이 짧게 자른 그녀의 손톱을 바라보며 늘 생선 내장을 빼내느라 손톱 밑이 까맸던 자신의 엄마를 떠올렸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지 칠 년이 지나서야 그들은 혼인서약을 했다. 결혼을 생각할 때마다 갑자기 일렁이는 묘한 괴리감에 메슥거려 그녀가 결혼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의도적으로 피했지만 서른이 되어 이제 다른 남자를 찾겠다는 그녀의 어깃장에 얼떨결에 한 결혼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결혼을 하자 J 씨가 결혼 전 아내에게 느끼던 메스꺼움은 사라졌고, 그렇게 결혼한 지 일 년 만에 딸아이를 가졌다.
아이는 머리가 유달리 컸다. 의사가 보다 못해 머리를 살짝 잡고 빼낸 탓에 아이의 눈썹 위는 살짝 파여있었다. 태반에서 갓 나온 아이는 퉁퉁 부어 도대체 누구를 닮았는지 모를 얼굴이었다. 그런 그 아이가 자신의 품 안에서 두 눈을 떴을 때, 그는 그 두 눈동자에 자신의 온 마음이 빼앗겼다. 그제야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아이의 두 눈에는 거울을 뚫어지게 볼 때마다 자신을 바라보던 심연이 담겨있었다. J 씨는 그 순간 맹세했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든 다 하겠다고. 그 맹세를 하늘이 들은 것일까? 그렇다면 J 씨는 자신의 맹세가 지금과 같은 결과를 원해서 한 것이 아님을 신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 나 때문이야. 우리 딸이 저런 거.”
집에 도착한 아내는 아이를 침대에 뉘이고 나서야 말문을 열었다.
“당신한테 그 병이 있다고?”
“응.”
예상치도 못했던 답변이었다. 아내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밥도 흰 고명밥에 김치만 있어도 잘 먹었고, 옷도 늘 입던 것만 입었다. 얼핏 보면 화려한 외모와 다르게 그녀가 사는 삶은 언제나 단출했기에 그 매력에 이 여자와 이끌려 결혼한 J 씨였다. J 씨는 순간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어릴 때, 유난히 하고 싶었던 게 많았어. 그런데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못했지. 당신도 알잖아.”
J 씨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우리 시절엔 다 그렇게 사는 것 아니었어? 당신도 그랬잖아. 근데 우리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잖아.”
아내의 말에 한평생 좌판에서 생선을 팔던 어머니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렇게 생선을 판 돈으로 그녀는 J 씨의 오 형제를 먹여 살렸다. 지금도 어머니는 새벽 네시가 되면 버릇처럼 일어나 장터에 생선을 팔러 나갔다. 어머니 덕분에 끼니를 굶은 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도 풍족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사탕을 사 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먹었고, 옷은 셋째 형까지 입고 너덜너덜해진 옷을 물려 입었다. 어릴 적 바닷가에 늘 머물러있던 자신을 J 씨는 떠올렸다. 바다에 있으면 옷을 입을 필요도, 굶을 필요도 없었다. 자연은 그에게 모든 것을 내주었다.
“그렇지, 우리 다 그랬는데. 나도 하고 싶은 걸 참고 살았는걸. 당신 탓이 아니야.”
아내의 두 눈동자에는 그새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아내를 말없이 안아주자 그제야 아내는 닭똥 같은 눈물을 J 씨의 어깨에 쏟아내었다. J 씨는 북받치는 울음을 꾸역꾸역 목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결혼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그들은 누구로부터 이 병을 물려받았는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의 병은 치료제가 없는 탓에 그저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리하여 아내는 결혼 후 그만두었던 학원 강사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J 씨는 남들이 기피하는 3교대 근무 일을 지원했다.
그 무렵부터 J 씨의 눈썹 숱은 기하급수적으로 적어지기 시작했다. 아내와 딸의 잔소리가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 그때쯤 그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기 시작했다. 아내의 뱃속에 딸아이가 들어섰을 때 담배 대신 초콜릿을 먹는 고통을 감수하며 힘들게 끊었던 담배였지만 그에게는 탈출구가 필요했다. 술은 한잔만 마셔도 온몸이 붉어졌기에 적절치 않았고, 운동을 하기엔 삼 교대 근무를 마치면 너무나도 고단했다.
J 씨는 담배는 한 모금 필 때마다 자신의 속에 있는 걱정거리가 함께 연기로 기화되어 날아가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담배가 타는 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면 그 안에 문제도 함께 소각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매일 얼마 정도의 걱정을 담뱃대에 태워 흘려보냈다. 하지만 그가 매일 걱정을 태우는 만큼, 새로운 걱정거리는 계속 생겼다. 쓰레기 소각장에 사람이 쓰는 만큼 쓰레기가 차오르듯,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J 씨의 걱정거리는 무더기로 쌓여만 갔고, 그렇게 J 씨는 걱정을 태우기 위해 더욱 열정적으로 담배를 폈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난 후, 진급 시험이 다가오자 그는 그때부터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고된 업무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지만 두통은 점점 심해져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되면 괴상한 상상들이 그를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그가 돌연 자신이 정리해고 되는 상상이었다.
자신이 정리해고가 되면 딸아이가 하고 싶은 것을 더 이상 해주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아이는 시들시들 병들어 죽어가는- 그런 끔찍한 상상은 밤마다 그를 괴롭혔다.
“형님, 멜라토닌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게 뭔데?”
여느 때와 같이 교대근무를 하던 날이었다. 오후 근무를 마치고 늦은 저녁을 함께 하는 회식 자리에서 후배는 그가 솔깃할 만한 정보를 J에게 주었다. 미국에서 들어오는 멜라토닌 성분이 들어있는 알약을 먹게 되면 아무리 지독한 불면증 환자라 할지라도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언제 잠든 지도 모르게 잠이 든다는 것. J 씨는 미국으로 출장을 가는 동료에게 부탁해 한 알당 5mg이 함유되어 있는 멜라토닌 다섯 통을 건네받았다.
멜라토닌을 처음 먹은 그날, 그는 오랜만에 아주 개운한 잠을 잤다. 그에게 있어 잠은 언제나 중요했다. 중요한 시험이 있는 날 전에도 그는 꼭 잠을 잤고, 친구들과 한참 놀다가도 12시가 되기 전에는 집으로 향했고, 심지어 그의 주사조차 잠을 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중한 잠을 되찾게 된 그는 매일 밤 멜라토닌 한 알을 입에 털어 넣고 잤다. 처음에는 아주 극소량이 들어간 멜라토닌에서 점점 발전해 고함량의 멜라토닌을 털어 넣어야만 잠이 왔다. 장기 복용해도 되냐는 아내의 걱정스러운 말을 뒤로한 채 그는 어딜 가든 멜라토닌과 함께했다. 하지만 그 안정기 또한 오래가지 않았다.
“S 아빠, S가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대.”
“왜?”
“모르겠어. 갑자기 악기 상가를 지나가는데, 창문에 걸려있는 바이올린을 보더니 저걸 하고 싶다는 거야.”
“그래서.”
“그래서 끌고 오려고 하는데 그 악기점 앞에서 삼십 분을 울고 불고. 그래서 결국 들어가서 악기를 샀어.”
“얼마였는데?”
“완전 초급자 용이어서 30만 원.”
“아니, 왜 그렇게 비싼 거야?”
“이게 제일 싼 거였어. 안 사주면 악기점에서 안 나갈 기세로 또 눈물을 글썽거리길래. 하, 어쩔 수 없었어.”
아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J 씨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내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에게 닥쳐오는 고난을 온몸으로 맞아냈다. 그의 아내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 충동이 들까. 그 순간, J 씨는 딸아이의 병이 아내로부터 유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학생 무렵, 그는 우연히 둘째 형을 따라 교회에 나섰다. 교회는 절대 가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와 그의 형제들은 교회에서 나눠주는 간식을 받기 위해 어머니 몰래 종종 교회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멜로디를 들었다. 어린 J의 말랑말랑한 마음을 만지는 그 음을 따라 간 그곳에서 J 씨는 생전 처음 기타라는 악기를 보게 되었다. 찬양대 앞에서 연주하고 있는 아무개 형의 손에는 여섯 개의 줄로 이루어진 나무통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기타를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다 자신과 형제들이 교회를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머니의 귀에 들어가며 그는 일요일이면 교회 대신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아직도 다음에 오면 기타를 가르쳐 주겠다는 그 형의 약속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저 죽어버린 줄만 알았던 그 약속이, 딸이 음악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자 J 씨의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서 뜨겁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딸아이가 이뤄줄지도 모르는 자신의 꿈. 기타를 둘러메고 베짱이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는 꿈. 비록 지금 자신의 인생은 개미에 불과하지만.
“음악, 시키자.”
“뭐라고?”
“그까짓 거, 내가 나이트 교대 근무 좀 더 서면 되고, 또 내년에 진급도 하겠지.”
“참, 그러다 몸 다 상해. 우리 생활비도 이미 만만치 않아.”
“얘가 하고 싶은 것 못해서 병나서 죽으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갑작스러운 J 씨의 날 선 반응에 아내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 그냥 시켜.”
“그래. 일단 시켜보지 뭐. 나가떨어질 때까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J 씨의 딸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딸의 실력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어가는 동안 나날이 늘어갔고, 그럴수록 그에 맞는 레슨 선생님을 찾아주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시간당 5만 원이었던 레슨비가 대학 교수에게 레슨을 받기 시작하면서는 3배가 뛰었고, 전공을 하려면 제대로 된 악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그는 대출까지 받아 차 한 대는 훨씬 넘는 값을 악기 값으로 치러야만 했다. 대출을 받은 그날, 그는 멜라토닌을 세 알이나 먹어도 잠이 오질 않았다. 자신이 이 세상에 없어서 더 이상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상상은 끊임없이 밤마다 그를 괴롭혔다. 그렇게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아이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어이, J. 요즘도 밤에 잠을 잘 못 자나?”
“네. 그래서 미치겠네요.”
“그러다 단명한다. 담배라도 끊어.”
J와 함께 담배를 피우던 직장상사 P가 담뱃불을 비벼 끄며 J에게 조언했다. 지도 못 끊는 주제에 제 코가 석자면서, J는 속으로 생각하며 웃음을 삼켰다.
“네, 그래야죠.”
그의 어깨를 툭툭치곤 뒤돌아 다시 옥상 문을 통해 사무실로 내려가는 P의 뒷모습을 보며 J는 생각에 잠겼다. 딸과 동갑인 P의 아들은 과학고에 입학했다고 했다. 소문에 의하면 고액 과외란 과외는 다 받는 데다가 입학과 동시에 유학 준비까지 하느라 P 또한 등골이 휘는 중이라 했다.. 월급쟁이 월급으로 유학이라니. 혹시 P의 아들도 우리 딸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P에게 한번 물어볼까라는 생각도 잠시, J는 생각을 떨쳐내려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는 것은 괜찮았다. 하지만 혹여나 딸에 대해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수면부족으로 인한 미칠듯한 두통을 참아가며 딸에게 필요한 레슨비를 대주는 것이었다. 일단 대학만 보내자. 그러고 다시 생각하는 거야. J는 먼 산을 보며 남은 담배를 태웠다. 눈앞에 퍼져가는 담배 연기에 이번엔 걱정이 아닌 자신의 다짐을 연처럼 날려 보냈다.
“아빠, 나 이제 바이올린 하기 싫어.”
수능이 100일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실기 시험은 수능이 끝나고 약 두 달 뒤에 치러졌다. 그런다 한들, 고지가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딸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J 씨가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놓게 만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 이제 그만둘래.”
“수능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니, 난 진짜 재능이 없는 것 같아.”
“그러면 연습을 더 해야지.”
“해도 해도 안 되는 걸 어쩌란 말이야! 내가 이렇게 스트레스받으려고 바이올린 시켜달라고 한 건 아니잖아!”
순간 J의 눈앞에 자신의 시간과 아이의 미래를 맞바꾸며 견뎌왔던 수천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두통에 시달리며 보고서를 쓰던, 혀를 깨물어가며 교대 근무를 하던, 잠을 미처 자지 못해 점심 대신 사무실 구석에서 쪽잠을 자며 딸아이를 위해 헌신해 온 시간들이 눈앞에 떠오르자 그의 단전에서부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났다.
짝하는 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찢었다. J 씨의 손이 찌릿하며 순식간에 아려왔다. 딸아이는 식탁에 앉아 볼을 감싼 채 J 씨를 노려보았다. 왜 그랬냐며 옆에서 다그치는 아내의 말은 저 멀리서 누가 소리치는 것 마냥 웅웅댔다. J 씨는 순식간에 부엌에서 자신의 방에 들어간 딸아이의 방문을 멍하니 바라보다 집 밖을 나섰다.
겨우 고3이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대학에 갈 테고, 아이가 좋은 대학을 진학하면 자신의 희생이 보상되리라 생각하며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던 그였다. 그저 우리 아이가 어디 대학 나왔어요라고 은근히 뽐내는 상상은 하기만 해도 그의 두통이 완화되었다. 그것이 J 씨의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아파트 밖으로 나온 J는 또다시 담뱃갑을 열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벤치에 앉아 그는 딸아이가 태어나던 기억을 다시 더듬어냈다. 세상에 나와 이틀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울어재끼던 아이를. 그렇게 끝장을 보던 아이가 이제와 포기를 하겠다니. 기왕이면 조금 더 일찍 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제와 그런들 무엇이 달라졌으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타고 담배 연기가 끝없이 퍼져나갔다.
그는 정처 없이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다리가 뻐근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집 앞 횡단보도 옆 골목길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눈을 들어 골목길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불이 꺼진 상가들 사이에서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J는 홀리듯 그곳으로 향했다.
『라이브 뮤직 앤 호프 - B1층』
수백 번이고 지나다닌 골목이었지만 이런 가게가 있는지 미처 몰랐던 J였다.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너 명의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가게 정중앙에 있는 무대 위에서 한 중년의 남자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J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바 자리에 앉아 맥주 한 잔을 시킨 후 가수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J는 자신이 무대 위에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컨트리 뮤직을 연주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방랑하는 자신의 모습을. 미국 서부를 여행하며 음악을 연주하고, 전기 자전거로 자유롭게 대륙을 횡단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 순간 자신을 짓누르던 두통이 잠시나마 희미하게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머리가 그렇게 상쾌한 기분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여가 지나고 중년의 가수는 무대 위에서 내려와 J의 옆 옆자리에 앉아 바텐더가 건네는 맥주를 한 잔 받아 순식간에 들이켰다.
“처음 뵙는 분이네요.”
맥주를 단숨에 들이켠 후 가수는 몸을 돌려 J 씨에게 말을 걸었다.
“아, 네. 걸어가다가 우연히 들어왔습니다. 연주 실력이 수준급이던데요.”
“수준급은 무슨. 그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수준밖에 안 되지 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J 씨를 빤히 바라보던 가수는 바텐더에게 두 번째 잔을 받아 한 모금 마신 후에야 말을 이어갔다.
“나도 예전에는 내가 최고인 줄 알았지. 그런데 날고 기는 사람들은 너무 많더라고.”
“아, 네.”
“말이 좋아 예술가지, 음악으로 먹고산다는 게 쉽지 않아요. 음악은 최고만 인정받는 세상이라고. 여기만 해도 봐봐, 금요일인데 파리 날리잖아.”
가수는 방금 자리를 뜬 손님들의 테이블을 치우느라 분주한 바텐더를 힐끗 바라보며 J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런 그를 보며 J는 이유 없이 그를 북돋아 주고 싶었다.
“제 딸도 음악 하는데 방에서 연습하는 걸 듣고만 있어도 좋던데요.”
“무슨 음악 하는데요?”
“바이올린 해요.”
“바이올린? 바이올린은 하면 뭐 먹고사나. 이런 무대에서 연주하나?”
“뭐, 연주도 하고.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거나 교수가 되어 개인 레슨 하거나, 그렇겠죠.”
“거참. 따님도 쉽지 않은 길을 걷겠소.”
J가 미처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가수는 나머지 남은 맥주를 들이켜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수고하세요. 나는 또 다른 공연을 하러 가봐야 해서 이만.”
“아, 네. 들어가세요.”
J 씨는 그로부터 한참 동안 그가 덩그러니 남기고 간 빈 500cc 맥주잔만을 바라봤다.
“S야, 자니?”
“아니요.”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 J 씨는 딸아이의 방문을 두드렸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고 있었다.
“네가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싶으면, 괜찮아. 다만 지금까지 열심히 하다가 갑자기 그만두는 이유를 모르겠기에 그래.”
“….”
“최고가 되지 못해도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포기해도 늦지 않아.”
“이미 학교에서도 일등이 아닌데, 내가 바이올린으로 성공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런 말을 왜 해. 성공을 하지 못해도 괜찮아.”
그 순간 아이는 이불을 박차고 나오며 엉엉 울었다.
“아빠, 담배 냄새나. 매일매일 끊임없이 아빠 주변에만 가면 담배 냄새가 난다고. 그뿐만이야? 맨날 잠은 못 자서 실핏줄은 터져있어. 근데 그거 나 때문에 그런 거잖아!”
갑작스러운 딸아이의 울음에 J의 몸은 얼어붙은 듯 움직여지질 않았다. 아이 방에서 나는 큰소리에 자던 아내도 잠에서 깨 방으로 왔다.
“무슨 일이야?”
“엄마, 내가 아무리 연습해도 일 등을 못 해. 그러니까 나는 성공을 못 할 거고, 엄마 아빠에게 효도할 수 없을 거야. 게다가 아빠 눈썹이 더 이상 사라지는 건 싫어.”
J 씨와 아내는 오열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랐다.
“성공 못 해도 괜찮아. 아빠는 그래도 너에게 해준 것을 후회하지 않아.”
그런 J 씨의 말을 딸은 당연히 믿지 않는 눈치였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대학만 가면 자신이 새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것이라고 그에게 선포를 했다. J 씨는 알겠다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딸이 계속 바이올린을 하길 바랐다. 아름다운 베짱이로 살길 바랐다.
“30년이면 꽤 오래되셨네요.”
딸아이의 결혼식을 앞두고 신경안정제가 떨어진 탓에 처방받기 위해 늘 가던 병원이 문을 닫아 그는 어쩔 수 없이 옆 건물의 다른 내과로 향했다. 대충 둘러대고 약을 처방받기 위해 들른 곳이었는데 의사는 MRI까지 찍게 만들더니 꼬치꼬치 쓸데없는 걸 물어댔다. 안 그래도 잠을 못 자서 예민한 신경이 무척이나 거슬려 화가 나려던 찰나였다.
“혹시 따님이 하고하고 병이 있으신가요?”
J 씨는 순간 누군가 자신의 머릿통을 세게 가격한 느낌이 들었다.
“네?”
“아니, 제 아들이 하고 하고 병이 있는데 그 사실을 안 후로부터 제게도 두통이 있었거든요. 뭘 해도 안 없어졌어요.”
과거형으로 말하는 의사를 보며 J 씨는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럼 지금은 없어진 건가요?”
“네.”
“어떻게요?”
“장가보내는 날 싹 없어지던데요.”
J 씨는 속으로 자신을 놀리나 싶어 화가 나면서도 동시에 다시 궁금했다.
“왜죠?”
“그야, 이제 저를 떠나 다른 둥지를 트니까. 이젠 제가 책임질 게 없잖아요.”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한 후 베짱이가 되길 바랐던 딸은 개미가 되었다. 바이올린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내심 서운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딸의 얼굴에는 언제나 생기가 피어올랐다. 취업을 한 후에 유난히 밝은 얼굴이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일 년 넘었어 아빠, Q 진짜 괜찮아.”
J 씨는 웃으며 자기 남자친구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딸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어린 줄만 알았던 딸의 얼굴에서 젊은 시절 아내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다. 딸의 손톱은 엄마와 똑같이 짧았다. 이십 년 가까이 바이올린을 하며 손톱을 짧게 깎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는 듯했다.
딸은 결혼식에도 하고 싶은 것으로 가득했다. 자신의 월급을 모은 것으로는 감당이 되지도 않는데 대뜸 호텔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해 자신과 아내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J는 노후는 어쩌려고 그러냐는 아내의 걱정 어린 잔소리도 뒤로한 채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모아둔 돈이 들어있는 통장 하나를 해지했다.
호텔 결혼식은 생각보다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꽃이며 식대며, 장소에 맞는 웨딩드레스까지 합하면 식 자체로만 외제차 한 대 값이 들었다. 아내는 내내 계산기를 두드렸지만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J 씨는 결혼식에 비용이 많이 들면 들어갈수록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결혼식 당일엔 그는 난생 태어나 처음으로 메이크업이라는 것을 받아보았다. 거울을 보자 딸아이가 태어나고서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던 눈썹이 진하고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옆을 바라보니 고운 한복을 입은 아내는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여전히 지금껏 담배 한 개비 피우지 않고 모든 고통을 견뎌낸 그녀에게 새삼 존경심이 들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보자 열 살은 젊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 속에서 그를 반겼다.
수많은 혼주와 신부들로 가득한 메이크업 샵에서 빠져나와 식장에 도착해 정신없이 하객을 맞이하고 나자 숨 돌릴 틈도 없이 결혼식이 거행됐다. 버진로드에서 J는 꼭 쥐고 있던 딸아이의 작은 손을 Q에게 넘겨주었다. 아이의 손톱은 웨딩 네일 아트로 인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딸아이의 손을 건네다 말고 와하하 크게 웃어버렸다. 딸과 사위뿐만 아니라 결혼식장에 있던 모든 하객들이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결혼식 내내 아이의 은빛으로 반짝이는 손톱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떠난 뒤 축의금과 식장 계산을 마치고 결혼식장을 나오는 순간 오묘한 기분이 J 씨를 휘감았다. 그날은 12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다. 한겨울이라 한기가 드는 것이라 여기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의 몸 안에 있던 무엇인가가 순식간에 몸 안에서 빠져나가 버리는 느낌이 생생히 느껴졌다. J 씨는 습관처럼 손으로 주머니 속을 헤매 담배를 찾아 속 주머니에 있던 담뱃갑을 열었지만 담배가 한 개비도 남아있지 않았다. 결혼식이 너무 정신없었던 탓에 담배를 살 생각을 미처 못했던 것이었다. 지도 앱을 켜 편의점이라고 검색하려던 순간, 그는 잠시 검색하려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그리고 한참 망설이다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탔다.
“당신 어디가!”
그를 허겁지겁 따라와 택시를 따라 탄 아내가 그에게 따져 물었다.
“기사님, 낙원상가로 가주세요.”
“웬 낙원상가?”
“나, 기타 사려고.”
“기타? 왜? 무슨 기타?”
“그냥 기타.”
“아니 기타를 지금 왜 사는 건데.”
옆에서 짜증을 내는 아내를 무시한 채 J는 창밖을 바라보며 손에 쥐어진 빈 담뱃갑을 움켜쥐었다. 창문을 내리자 추운 공기가 택시 안을 순식간에 채웠다. J는 입을 오므려 숨을 뱉었다. 담배 연기 대신 자신의 숨이 뿌옇게 피어올랐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숨을 내뱉고서야 J는 창문을 닫았다. 이내 밖을 향한 시선을 거두고 장갑 속에 숨겨져 있던 자신의 손을 꺼내보았다. 손톱이 초승달만큼 자라 있었다.
"손톱을 잘라야겠군."
옆에서 아내는 그런 J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J는 아내를 보며 씩 웃으며 말했다.
“나 이제 베짱이가 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