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잠이 덜 깬 상태였지만 베란다로 나가 소파에 앉았습니다. 시원한 물 한잔과 함께 어제 읽다 만 책을 다시 펼치며 가벼운 하루를 시작해 보네요. 그런 오늘은 토요일 아침입니다. 주말에만 누릴 수 있는 이 여유로움을 항상 가질 수는 없는 걸까요?
단순한 삶, 미니멀 라이프...
처음 미니멀 라이프를 만나게 된 것은 개그맨 윤정수 씨와 김숙 씨가 출연한 '최고의 사랑'이라는 한 TV 프로그램에서였어요. 미니멀 라이프? 그게 뭐지? 그렇게 궁금증으로 시작된 미니멀 라이프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잊혀져 갔습니다.
사실 그 당시엔 미니멀 라이프가 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굳이 시작할 필요도, 실천할 필요도 없는 그런 삶이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크게 다투었습니다. 남편은 쌩하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혼자 남은 거실에 가만히 있자니 화를 주체할 수가 없더라고요. 화풀이할 대상으로 눈에 띄었던 건 바로 식탁과 서랍장이었습니다.
'그래, 바로 여기다. 오늘 나의 화풀이 대상은 말이야!'
잽싸게 일어나 식탁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가까이 다가간 식탁 위에는 다 먹고 남은 배달 용기들과 각종 잡동사니 물건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거기에 반쯤 열려있던 수납공간에는 각종 라면과 참치캔들이 서로 엉켜 널브러져 있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뭔가에 홀린 듯 식탁 위를 치우고 수납장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걸린 시간과 버려야 하는 물건들이 산처럼 쌓인 모습은 너무도 당황스러웠어요. 도대체 이 많은 물건들은 어디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미 집안은 포화상태를 넘어 곧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겨우 정리까지는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정리되어 있는 물건들조차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답답해졌어요.
다음날 아침, 어제의 그 답답한 마음을 뒤로한 채 출근을 했습니다. 그날 하루는 아주 엉망이었던 거 같아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 물론 티 내려고 하는 집안일은 아니지만 아무리 정리를 해도 이렇게 티가 안 날 수가 있을까요? 오히려 답답해 보이기 일쑤이니 원래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대로 손을 놓게 돼버렸습니다.
저는 워킹맘입니다. 매일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어김없이 바쁜 업무는 시작이 되었고 더 이상 집안일에 신경을 쓸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모았냐고요? 아니요. 오히려 빚까지 생겨버린 이상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집안 정리는 물론 아이들 식사까지 챙기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일주일에 5일 이상은 배달음식에 기대어 살아야 했고 그 배달음식은 어느새 식사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교복은 또 어떻고요. 제때 세탁을 하지 못해 두 번 세 번을 다시 입어야 하는 날들도 계속되었습니다. 이렇게 바쁜 날에는 아이들에게 참 미안하고, 저 역시도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음을 알기에 잠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곤 합니다.
아이들 역시 불평하나 없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하지만 그런 불평 속에서도 이런 엄마를 이해해 주는 착한 아이들이라 여태껏 잘 버티며 살아왔던 거 같습니다.
바빴던 업무가 끝나고 마지막 야근을 마치며 퇴근을 하던 그날 홀가분함이라는 것을 다시금 배웠습니다. 버스가 끊긴 시간에 탄 택시 안에서요. 답답한 마음에 열어 둔 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얼굴에 스쳤을 때 말입니다. 홀가분함도 잠시, 집안으로 들어선 순간 홀연히 사라져 버리긴 했지만요.
집인지 쓰레기장인지 판단이 되지 않을 정도로 더러움에도 계속해서 이어진 야근으로 지치고 힘들었던 전 그 모든 상황을 무시한 채 침대 위 구겨져있던 이불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미안해, 내일 치워도 되겠지?!'
눈을 떠보니 어제 그 광경은 꿈이 아니었습니다. 이 쓰레기장 같은 집에서 얼른 벗어나고파 청소와 동시에 정리를 시작했어요. 좀처럼 눈에 띄는 변화 같은 건 없었지만 다행히 쓰레기장에서는 벗어났다고 생각했어요. 식탁 의자에 앉아 잠시 쉬는 동안 온 집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휴... 저도 모르게 한숨이.
그때 머릿속을 스친 건 바로 미니멀 라이프였습니다. 최소한의 물건만을 남겨두고 살아가는 삶. 왠지 이 답답한 집안을 홀가분하고 단순하게 만들어 줄 것만 같았어요. 그렇게 미니멀 라이프는 힘들고 버겁던 하루하루에 살며시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또 바쁜 업무가 시작될 테고, 집안일에는 많은 시간을 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럼 쓰레기장으로 돌아가는 건 안 봐도 뻔한 일이잖아요. 과연 주말이나 공휴일에 하는 집안일만으로 정말 괜찮아질까요?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엉망이 될걸요. 쉬지 못했다며 주는 보상으로 하루 종일 이불속에서 뒹굴뒹굴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사실 집안일이 무척이나 귀찮고 벅찹니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기에 주방에 있는 시간이 싫었고 결국 다른 집안일 역시 멀어지게 되더라고요. 미루고 미뤘던 집안일들은 쌓이게 되고 손도 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대로 방치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를 잘 알기에 어쩜 미니멀 라이프는 딱 맞는 맞춤옷 같은 인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소한의 물건만 가지고 산다면 집안일은 당연히 줄 것이고, 적은 시간 안에 거뜬히 해낼 수 있으니까요.
'그래 맞아. 더 이상은 이렇게 못살겠어. 미니멀 라이프라는 거 한번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