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가, 명확하고 분명하게 동의하는 말과 행동
말끝마다 ‘명분(名分)’을 내세우는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포장하려는 의도가 크다.
그럴듯하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는 공통된 이유로,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 어떤 이유라도, 명분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고, 더 이상의 반박을 막을 수 있다. 자신이 하는 어떠한 일도, 명분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정의로운 일이 된다고 생각한다.
명분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영화다. 해고 위기에 처한 비리 세관원 최익현(최민식)이라는 사람이 있다. 순찰 중에 히로뽕을 발견한다. 일본으로 밀수출하기 위해 젊은 보스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는다. 부산 최대 조직의 보스 최형배와 로비에 재주가 있는 최익현은 그야말로 환상의 콤비였다. ‘장님과 앉은뱅이’라는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서로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면서 도움을 주고받는다. 히로뽕을 계기로 만난 두 사람은, 부산 전체를 접수하기로 야망을 키운다.
부산 전체를 접수하는데 거쳐야 할 관문이 있었다.
부산 제2의 조직을 이끄는 김판호(조진웅)의 조직을 접수하는 것이다. 부산 최대 조직 보스로서 내심, 제2의 조직이 거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쳐들어가려고 해도 명분이 없었다. 그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최형배가 쳐들어가자고 부추기자,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건달 세계에서는 명분이 중요하다며 한탄하듯 이렇게 말한다. “명분이 없습니다. 명분이” 그래서 최익현이 명분을 만든다. 같은 성(姓)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먼 친척 사이다. 최익현이 촌수로, 높은 할아버지뻘이었다. 최익현과 그 사위가, 김판호의 업장에 들어가, 억지를 부려서 맞고 나온다. ‘자신의 대부가 맞았다!’ 이것이 명분이 되었다. 그렇게 조직을 접수하게 된다.
억지를 부리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명분은 좋은 이유가 되어준다.
과욕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것으로 만들어준다. 심지어, 사명으로까지 확대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당사자는, 명분으로 포장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모를 것으로 생각한다.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는 것뿐인데 말이다. 좋지 않은 의도를 명분으로 포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명분이란 이런 것이다.
명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말하는 이유와 행동이 같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기준이 같아야 명분이라 할 수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만 철저한 기준을 댄다면 그것은 명분이라 할 수 없다.
나에게 들이댄 잣대와 타인에게 들이댄 잣대가 같다면, 그것은 명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그 기준을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귀에 거슬리고 마음을 후벼 파더라도 들어야 한다. 듣고 생각하고 돌아봐야 한다. 기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명분을 완성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