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지혜

by 청리성 김작가
마음의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깨달았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


‘지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바로 연관해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연관 검색어 같은 느낌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진 않더라도, 많은 사람이 ‘솔로몬 임금’을 떠올릴 거라 생각된다. 하느님께서 솔로몬에게 원하는 것을 물으시자, 솔로몬은 지혜를 청한다. 그 모습만으로도, 이미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솔로몬의 지혜 중에 가장 회자(膾炙) 하는 이야기는 ‘솔로몬의 재판’이다.

한 아이를 두고 자신의 아이라 다투는 두 여인에 대한 판결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한집에 사는 두 여인이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다. 한 아이가 죽자, 산 아이를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주장하며 싸우다 솔로몬에게 찾아온다.


솔로몬 앞에서도 서로 자신의 아이라 주장하며 말싸움을 벌이자, 솔로몬이 입을 연다.

“한 사람은 ‘산 이 아이가 내 아들이고 네 아들은 죽었다.’ 하고 또 한 사람은 ‘아니다. 네 아들은 죽었고 내 아들이 산 아이다.’ 하는구나.” 솔로몬은 신하에게 칼을 가져오라 하면서, 이렇게 명령한다. “그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쪽은 이 여자에게 또 반쪽은 저 여자에게 주어라.”


한 여인은 제 자식을 생각하니 가슴이 매어져, 자신이 친모가 아니니 다른 여인에게 아이를 주라고 말한다. 다른 여인은 어차피 누구의 아이도 아니니 나눠 갖자고 말한다. 그러자 솔로몬은 아이를 죽이지 말고, 처음 여인에게 내주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가 참 어머니다.” (열왕기상 3,16-28 참조)


친모는 자신의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살리기 위해 거짓을 말한다.

자신의 품에 돌아오지 못해도, 아이를 살리는 방법을 선택한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가 아닌 여인은 자신의 아이가 죽었으니, 애꿎은 아이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솔로몬이 아니더라도, 두 여인의 말을 들으면, 누가 친모인지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친모를 구별하기 위해 이렇게 질문했다는 사실이다. 그게 지혜라고 본다.


참 사랑의 중심은, 소유에 있지 않다.

나와 함께 있거나 내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울 때 특히 가져야 할 마음이라 생각된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이의 의지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려 한다. 부모의 책임감이랄까? 그 무게가 크게 느껴질수록 더 심하게 아이를 조인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부모의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려 더 숨쉬기가 어렵게 된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아이는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강요하지만, 어쩌면 아이가 자신의 삶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부모에게 필요한 건, 강압이 아니라 풀어주고 지켜봐 주는 거다. 울타리에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풀어주고 잘 지켜봐 주는 것이 아이의 행복을 위해 더 필요하다.

지금 시대에 지혜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부모다.

아이를 지혜롭게 키울 수 있는 지혜를 청해야 한다. 지혜를 얻는 데 필요한 건, ‘인내’와 ‘꾸준함’이다. 아이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 그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인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에게 하는 표현을 아이가 받아주지 않는다고, 몇 번의 시도로 좌절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랑을 표현하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부모로서,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 한다.

“내 말을 잘 듣는 아이가 되는 것이, 내 소망일까?”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면서 살아가는 것이, 내 소망일까?”

그러면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고 행동해야 할지, 조금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부모에게 필요한 지혜를 함께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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