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커지지만, 행동으로 걷어내게 할 수 있는 마음.』
지난달, 두 번째 책 투고를 했다.
사실상 두 번째 투고는 <야구에서 배우는, 슬기로운 직장 생활>이라는 소설이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블로그나 브런치에서는 반응이 좋았는데…. 내용은 이렇다. 직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신입 사원이 있다. 우연한 계기로, 본부장이 야구장을 데리고 간다. 본부장은 야구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직장 생활을 연결해서 이야기해 준다. 신입 사원은 체기가 내려가듯, 막혔던 생각의 물꼬를 트게 된다.
생각보다 야구 상황에서 배울 만한 부분이 많다.
직장 생활뿐만 아니라 삶에 주는 교훈도 많다. 더 많은 출판사에 투고했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걸로 판단하고, 좀 더 묵혀뒀다 다시 투고할 계획이다.
이번에 투고한 원고의 가제는 <저는 세 딸아이의 아빠입니다>이다.
세 딸아이를 키우면서 아니, 함께 성장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모아봤다. 매일 쓰는 생활 묵상 글에서 관련된 내용을 뽑았다. 여기서 추가로 떠오른 기억을 보태고, 관련된 책의 내용을 인용해서 보충했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을 모아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글을 쓰다 문득 ‘이런 내용의 책이 있으면 좋을 텐데.’하고 책장을 살펴보면,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 얌전히 꽂혀있었다. 보물 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것 같은 마음으로 책을 빼 밑줄 친 곳 위주로 살펴보면, 머리가 삐쭉 설 정도로 맞아떨어지는 문장이 나오기도 했다. 테트리스에서, 기다란 막대를 기다렸는데, 딱하고 나온 느낌이랄까? 때로는 바로 매칭이 되지 않아, 연결고리가 될 만한 문장을 고민하느라 한참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며칠이 지난 오후 늦은 시간,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왔다.
일반전화번호 중에서도 스팸 전화가 대부분이라 저장돼있지 않는 전화는 잘 받지 않는데, 투고한 상황이라 그냥 받고 있었다. 이번에는 핸드폰 번호라 뭔가 느낌이 왔다. 가라앉은 목을 헛기침 몇 번으로 가다듬고 조심스레 받았다. 건너편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는 질문을 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까지 쓰면서 물었다.
점점 좋은 느낌이 밀려오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투고한 원고에 대해 언급을 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바라던 두 번째 출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터졌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그다음 주에 미팅을 했다. 좋은 꼭지 몇 개를, 좀 더 맛을 살려, 샘플 원고로 다시 써서 보내기로 했다. 두 번째로 보냈을 때, 계약하자는 최종 컨펌이 떨어졌다. 다음 주에 계약하기로 했다.
<야구에서 배우는, 슬기로운 직장 생활>의 투고 결과가 좋지 않아,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아직 출간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신호가 왔다는 걸로 어느 정도 마음이 추슬러졌다. 투고한 이후, 매일 조금씩 들어오는 메일을 보면서 전전긍긍했기 때문이다. 검토하고 연락을 주겠다는 곳이 있었고,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 맞지 않아 출간이 어렵다는 답변도 있었다. 긍정적인 답변을 준 곳도 있지만, 100% 기획출판이 아니라 조금 망설이기도 했었다.
항상 기억하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되는 것이 있다.
걱정이다.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걱정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걱정을 하게 된다.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 할수록 더 걱정된다. 늪에 빠졌을 때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진다고 하는데, 그것과 같다. 바다에 빠졌을 때도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헤어 나오기 어렵다. 힘을 빼고 바다에 가만히 몸을 맡겨야, 얼굴이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알지만 순간적으로 덮쳐오는 걱정과 두려움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만든다.
걱정을 완전히 몰아낼 순 없지만,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방법이 있다.
바다에 빠졌을 때의 상황에 접목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머릿속에 떠오른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여 내 몸을 거기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생각하고 그것에 몸을 맡기는 방법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부술 수 있는 건, 행동이다. 걱정과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은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커진다. 그걸 깨는 방법은 행동하는 거다.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것에 몸을 움직인다.
의지가 발동하지 않아도 일단 움직이면 의지도 뒤따라온다. 계속 반복하다 보면 걱정하는 시간과 크기가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직접적으로 연관된 행동이 아니어도 된다. 방을 정리한다든지 청소를 한다든지, 걷거나 뛰는 행동들도 모두 포함된다. 움직임을 통해 걱정에 맞춰진 초점을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어쩌면 죽는 그 순간까지 걱정을 완전히 걷어내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걱정을 좋은 방향으로 사용해 더 나은 결과를 내는 경우도 많다. 걱정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어디에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독으로 사용할 것인지 약으로 사용할 것인지 본인이 결정해야 하고 할 수 있다. 누군가, 자신은 행복하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했다. 우리도 행복하기로 결심할 수 있다. 걱정을 걷어내겠다고 결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