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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시선

by 청리성 김작가
『삶에 동행하는 노력을 해야,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는 마음』


‘꼰대’라는 표현이 있다.

처음 이 표현을, 어린 시절 영화에서 들었다. 그리 단정해 보이지 않는 학생이, 자신의 아버지나 선생님을 꼰대라고 불렀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우리 꼰대’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표현인가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의미를 알았을 때, 선생님과 아버지한테 왜 그렇게 버릇없이 행동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직장에서 더 많이 사용되는 용어가 되었다.

직장 상사 중에, 세대 차이가 나는 사람을 일컬어 꼰대라고 부른다. ‘라때’라는 표현을 시작으로, 지난 자신의 이야기를 들먹이며 지금의 모습을 다그치면, ‘꼰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지난주 토요일 오후에 들은 라디오에서는, ‘꼰대 테스트’라는 것을 했다. 14개의 질문을 던지는데, 자신에게 해당하는 개수가 몇 개인지 세어보게 했다. 해당하는 개수에 따라 꼰대의 농도를 평가했다. 예를 들어, 4~5개 정도(개수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해당하면, ‘잠재적 꼰대’라고 해서, 지금은 아니지만, 꼰대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는 식이다.


문제의 내용을 들어보면 내가 생각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 질문이 있었다.

내가 봐도 꼰대라 생각됐다. 하지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반문하게 되는 질문도 있었다. 몇 년 전, 나도 심각한 꼰대였다고 내가 인정한다. (후배들은 지금도 내가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후배들의 잘못된 부분을 가르쳐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예전에는 보이는 대로 바로바로 지적했다. 지금은 몇 번을 참고 참은 후에 조곤조곤 설명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해당하는 질문은 2~3개 정도였다. 생각만으로 따지면 해당하는 개수가 더 되지만,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가 되었다.


‘꼰대’와 ‘꼰대라고 부르는 사람’이, 온도 차가 나는 이유가 뭘까?

나와 다른 부분을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가 서 있는 시선에서 상대를 바라본다. 꼰대는 지금 세대(20~30대)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지 않고, 자신이 그 세대였을 때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세월이 변한 만큼 여러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라떼’라는 말로 운을 뗀다. 이 단어를 들으면,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또 시작했네’라며 듣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 세대의 시선도 마찬가지이다.

꼰대는 세대 차이가 나는 모든 사람을 총칭하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이렇게 말하면, 20~30대 후배들은, 꼰대라서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꼰대라고 부르는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지금 상황과 너무 맞지 않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인지, 아니면 필요한 이야기인지 살펴봐야 한다.


듣기 싫은 이야기는 무조건 귀를 막고 반대되는 이야기는 무조건 비하하는, ‘꼰대의 잔소리’로 치부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자칫 정말 소중한 기회, 잘못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춘기 때를 돌이켜 보면 그렇다. 부모님께 싫은 소리 들을 때는 야속했지만, 방에서 가만히 그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맞는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은, 지나온 삶이 바탕이 된다.

내가 살아온 삶과 타인이 살아온 삶은 다르다. 사회에서 만난 비슷한 나이의 사람과 이야기할 때, 공감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지나온 삶이 다르다. 하물며 세대의 간격까지 더해지면 시선의 차이는 더 날 수밖에 없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을 타인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내 삶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내 시선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강연하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야 청중은 강연 내용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타인의 시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으며, 어떤 꿈을 가졌는지 묻고 들어야 한다. 그렇게 타인의 삶에 잠시나마 동행했을 때, 그 사람의 시선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시선의 차이가 나는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 왜 저래?’라고 생각하기보다, ‘대화가 부족했구나’ 생각하고 먼저 상대에 대해 알아보는 노력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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