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곳에 숨기거나 감추는 게 아니라, 치우고 버리는 것.』
어떤 청년이 어수선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절에 들어갔다.
혼자 벽을 마주하고 앉아 어수선한 마음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오히려 머리와 마음이 더 어수선해졌다. 떠올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럴수록 잡념은 더 떠올랐다. 심지어 잊고 지내던 오랜 일들까지 떠올랐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스님을 찾아가 하소연을 하였다. 스님은 이 청년을 그윽이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떠오르는 잡념을 지우려 노력하지 말고 그냥 떠올리거라, 떠오르는 대로 그냥 떠올리거라. 모두 떠올리면, 그때는 더는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청년은 스님의 말씀이 아리송했지만, 뾰족한 다른 방법이 없어, 하라는 대로 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보냈다. 때로는 식음도 전폐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그냥 떠올렸다. 어느 순간 잡념이 떠오르지 않기 시작했다. 떠올릴 수 있는 잡념을 다 떠올려, 더는 떠올릴 잡념이 없게 되었다. 그때부터 청년은 무아지경에 빠져, 자신이 원하는 수행에 깊이 들어갔다. 잡념을 없애는 방법은, 떠오르지 않기 위해 누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서 날려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 잡념이 생긴다면, 이 방법을 사용해도 좋을 듯하다.
잡념이 생긴다는 건, 편하지 않다는 말이다. 어딘가 불편하거나 어색하게 보인다. 나의 성향과 맞지 않거나 내가 싫어하는 모습이나 행동 그리고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부분 감추거나 누른다. 내색하지 않거나 참는다. 내색하지 않고 참을 수 있는 한계에 다다르면, 나도 모르게 그 마음이 삐져나오게 된다. 그 결과는 사람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좋게 마무리되진 않는다.
불편한 사람과 마주하기 싫은 이유는, 내 마음을 감추고 누르기 때문이다.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날려버리거나 풀어야 하는데, 누르고 꽁꽁 묶어둔다. 그래야 할 것 같고, 그래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생각대로 그리고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살 순 없지만, 너무 누르고 묶어두는 것도 좋지 않다. 그럴수록 내 마음이 더 불편해진다. 한두 번은 참고 넘기는 게 속 편하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고 쌓이면 불편해진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재활용만큼, 불편하고 치우기 싫어진다. 양이 많기 때문이다.
마음의 불편함을 쌓아두지 않고 버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불편한 사람과 마주하고 함께 버리는 방법이 있고, 내 마음에서 자체적으로 정화하는 방법도 있다.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자의 방법이 좋고, 그렇지 않다면 후자의 방법이 좋다. 전자의 방법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다. 서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로 상극이 아닌 이상 잘 풀리고, 오히려 더 가까운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문제는 후자의 방법이다.
상대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데,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방법이 명상이다. 명상을 통해 어수선한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한다. 문제는 명상할 때는 마음이 다스려졌다가도 그 사람과 마주하면 다시 마음이 흐트러진다. 한쪽에 쌓아두었던 쓰레기 더미가 우르르하고 쏟아지는 느낌이다. 한 방에 무너진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버리지 않고 한쪽에 몰아넣었다는 사실이다. 버렸다면 한 방에 무너질 일은 없다.
쌓아두는 것과 버리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외면하는 것과 직시하는 것은 다르다. 외면한다는 것은 쌓아둔다는 말이다. 당장에 보기 싫어 보이지 않는 곳에 쌓아둔다. 직시하는 것은 버린다는 말이다. 집안 어딘가에 두지 않고, 바로 들고나가 밖에다 버린다.
직시해야 버릴 수 있다.
직시한다는 건 나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왜 불편한지를 끊임없이 묻다 보면 그 시작점이 발견된다. 사실 거의 모든 시작점은 매우 작다. 볼펜으로 찍은 점 하나가 시작점일 때가 많다. 그 점은 내가 충분히 지울 수 있다. 그렇게 지워야 버리는 거라 말할 수 있다. 한 번에 되진 않는다. 이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계속하다 보면 나만의 방법이 생기게 된다. 진짜 청소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