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소용

by 청리성 김작가

『내가 판단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만들어지는 역할』

거리를 다니다 보면, 구호단체를 홍보하는 청년들을 만난다.

‘유니세프’나 ‘세이브더칠드런’처럼, 아이들을 위한 구호단체가 대부분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테이블 쪽으로 안내하는 사람과 테이블에서 설명하는 사람으로, 보통 2~3명이 한 조를 이룬다. 테이블로 가면 보드를 가리키며, 스티커를 붙여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둘 중의 하나 아니면 넷 중의 한 곳이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에 관한 문제다.

알고 있던 내용도 있지만, 전혀 알지 못한 사실도 있다. 틀린 답에 스티커를 붙이고 답을 듣는데, ‘어?’라는 반응을 보이면, 파일에 꽂혀있는 사진들을 가리키며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한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세상에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간다기보다, 숨을 버티고 있는 아이들이 참 많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확 느껴오는 현실감으로 주춤하기도 한다. 한번 후원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정기후원이기 때문이다. 돌아서서 가는데 ‘그거 얼마나 된다고!’라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초라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바쁘거나 여력이 안 되면, 피해 가기도 한다.

전화 통화를 하는 척하거나 한쪽 끝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그렇게 지나간다. 지나가면서 항상 느끼는 사실이 하나 있다. 교육을 받아서 그렇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표정이 참 밝다. 억지웃음과 표정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표정도 아니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으로 일하는 날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평소에는 표정이 안 좋다가, 퇴사하는 날 표정이 매우 밝은 직원들처럼.


보상을 어떻게 받는지는 모른다.

무상으로 봉사하는 건 아닐 거라는 추측을 할 뿐이다. 그 액수가 그리 크진 않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 수준 정도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그렇지 않다. 넉넉한 보상을 받는 표정이다. 어쩌면 그들은 누군가 주는 보상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는 보상에 더 마음을 두지 않나 싶다. 금전적 보상이나 다른 사람의 격려가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그들의 표정을 만들었다고 본다.


나뭇가지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 스승이 나뭇가지를 모아놓고 제자들을 불러 앉혔다. 각자 하나씩 들고 부러트리게 했는데, 너무 쉽게 부러트렸다. 제자들은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여유 있는 표정을 지었다. 스승도 제자들을 보고 미소를 짓더니, 한 손에 꽉 쥐어질 만큼의 나뭇가지를 들어 한 제자에게 건넸다. 제자는 받아들고 부러트리려 했으나 나뭇가지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허벅지에 대고 온 힘을 주었지만 어림없었다. 다른 제자들이 너도나도 달라며 시도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나뭇가지는 쉽게 부러지지만, 그 나뭇가지가 여러 개 모이면 매우 강한 힘을 가진다. 너희도 그렇게 하나로 뭉치면 못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

이런 생각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한다면, 나무 뭉치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이 아닌 나부터라는 생각이, 부러지지 않는 나무 뭉치를 만들 수 있다. ‘나비’라는 모임이 있다. 내가 직접 참여하진 않지만, 그 의미가 매우 좋다. ‘나로부터 비롯되는 변화’라는 의미다. 타인이 아닌 내가 먼저 변화되면, 그렇게 나비효과처럼 번져나간다는 의미로 보인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선한 영향력의 힘을 믿는다.

그 힘을 믿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나 역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금전적인 후원이 다가 아니라, 다른 방법도 많이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그동안 지나쳤던 구호단체 청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 친구들에게 힘을 보태는 최선은 후원 가입이겠지만, 전부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설문에 참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 나로 시작되는 나비효과의 힘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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