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수확

by 청리성 김작가


『앞으로든 뒤로든 같은 것은 거둬들이고, 아닌 것은 던져 태워버리는 행위』

겉모양은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 있다.

식당에서 보이는 요리된 음식 모형이다. 때로는 한참을 바라보며 동행한 사람과, 진짜니 가짜니 하면서, 옥신각신할 정도로 분간하기 어려웠던 적도 있었다. 모양은 음식이나 모형이나 같지만, 음식은 먹을 수 있고 모형은 먹을 수 없다는 차이가 있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그냥저냥 한 차이가 아닌, 근본적인 차이다. 진실과 거짓처럼.


사람도 그렇다.

겉으로 봤을 땐 ‘선의(善意)’인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악의(惡意)’일 때가 있다.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게 된다. 마치 자신이 희생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본인의 실속을 차리기 위해서였다는 걸 아는 순간, 참 허망하다. 때로는 선의로 한 말이나 행동을 악의로 받아들일 때도 있다. 상대를 생각해서 마음을 썼지만, 내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자신의 감정이나 단편적인 생각으로 마음에 바리케이드를 쳐버린다. 이 또한 허탈하다.


동전의 양면 같은 모습도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앞과 뒤의 차이일 뿐이라 생각하지만, 전혀 다르다. 선의와 악의처럼 비슷한 모습이지만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말도 그렇다. 어떤 순서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말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가 잘 전달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전하는 순서가 그렇다.

좋은 소식은 결과를 먼저 알리고 히스토리를 나중에 말하는 게 좋고, 나쁜 소식은 히스토리를 말하고 나중에 결과를 알리는 게 좋다. 듣는 사람으로서는, 처음 들은 내용이 뒤에 듣는 이야기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좋은 소식의 결과를 들으면, 뒤에 나오는 자잘한 문제는 문제로 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나쁜 소식은 결과를 먼저 듣게 되면, 뒤에 나오는 좋은 부분은 들리지 않게 된다. 같은 내용이라도 순서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완전히 달라진다.


서울 시장 선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 <특별 시민>에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의도를 완전히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선거 방송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하던 광고 담당자가 상대 광고를 자세히 살펴본다. ‘지피지기 백전불패’. 상대를 알아야 좋은 전략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상대 광고를 역이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상대 후보가 광고한 본래 내용을 역으로 돌려 의도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생각이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바꿔야 합니다.

기호 2번 양진주

그동안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부정과 부패로 가득 찬 서울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서민이 우선인 사회

미래 서울의 핵심입니다.

지역 경제의 불균형이야말로

있어서는 안 될 절대 악입니다.』


이 내용을 거꾸로 돌려 이렇게 만들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바꿔야 합니다.

기호 2번 양진주

있어서는 안 될 절대 악입니다.

지역 경제의 불균형이야말로

미래 서울의 핵심입니다.

서민이 우선인 사회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습니다.

부정과 부패로 가득 찬 서울

그동안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변종구는 다릅니다.

기호 1번 변종구』


달라진 문장은 없다.

순서만 바꿨을 뿐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천지 차이다. 섬뜩할 정도로. 말하고 행하는 사람은 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떨지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말한 것을 내 의도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원망하기보다, 내 의도를 잘 이해할 수 있게, 상대방의 처지에서 잘 풀어줬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러지 못했던 많은 상황이 떠오른다. 앞으로 말해도 거꾸로 말해도 같은 의미로 전달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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