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같은 조연’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로 언급되는데요. 실제 역할은 조연이지만, 주연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의미입니다. 드러나는 역할을 적지만, 그 사람이 빠지게 되면 맛이 살지 않게 됩니다. 음식에서 양념 같은 거죠. 주재료가 다 담겨있어도 양념이 잘 배지 않으면, 맛이 어떤가요? 이도 저도 아닌 맛이 납니다. 무언가 부족한 맛의 출처를 찾아 필요한 양념을 치고 나서야, “그래, 이 맛이지!”라며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는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있을 때는 모르지만, 없으면 티가 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주재료의 맛을 살리는 양념처럼, 없으면 주재료도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됩니다.
주연 같은 조연은, 삶에도 있습니다.
묵묵하게 자기 일하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티가 나지도 않고, 티를 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 역할을 하지 않으면, 금세 티가 납니다. 공동체에 이런 사람 한 명쯤은 꼭 있습니다. 있을 때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데, 없으면 바로 티가 나는 거죠. 당연하게 생각한 일들이 처리되지 않으면 그렇습니다. 당연하게 청소가 되어있고 정리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거죠. 당연히 비품이 있어야 하는데, 없고 찾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면 그렇습니다. 가벼이 여겼던 일이 무겁게 느껴져야, 존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엄마나 아내의 존재도 그렇습니다.
있을 때는 모르는데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금방 느낍니다. 밥을 해 먹는 것과 설거지가 그렇고, 빨래하는 것과 정리하는 것들이 그렇습니다. 작은 용품 하나 어디에 있는지 몰라 헤매기 일쑵니다. 당연하게 여기지 않아야 할 것을 당연하게 여긴 대가를 치르면서야, 역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고 금방 잊어서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죠.
주연 같은 조연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변에서, 존재의 가치를 높여주는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겸손함입니다. 주연 같은 조연이라고 칭송받는 이유는, 그들이 주연이 되려고 욕심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야망이 없다고 비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현재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그 역할에 충실했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주변에서 부추긴다고, 우쭐하거나 자만해서 역할을 잊고 선을 넘지 않은 것이죠.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닐 텐데 말이죠.
인정은 스스로가 아닌 타인이 해줄 때 빛이 납니다.
자기 스스로,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잘 됐다는 둥 이야기하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정말 잘했다고 인정할 수도 있지만,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인정해 주고 싶은 거죠. 왜 그럴까요? 겸손한 태도도 있지만, 타인의 역할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자기의 역할을 했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의 역할을 했다는 거죠. 나만이 아닌 우리가 한 거라는 겁니다.
공동체에서 나의 역할을 살펴야 합니다.
내가 원하고 내가 필요하고 내가 편안한 것만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먼저 헤아려야 합니다. 주연의 역할을 할 때도 있고 조연의 역할을 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역할이든 다 중요합니다. 주연이라서 중요하고 조연이라도 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죠. 역할이 다를 뿐, 똑같이 중요합니다. 조연의 역할을 소중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할 때, 주연 같은 조연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주연 같은 조연이든 다, 내가 어떤 태도로 임하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좋은 몫을 결정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