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다녀온 후, 우리 사이는 조금 냉랭해졌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일부러 거리를 두고 지냈다.
밤이면 뒤척였고, 가끔은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이 흘렀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를 눈물이었지만, 어느 새벽엔 박정현의 ‘사랑이 올까요?’를 무한 반복 듣다 눈이 퉁퉁 부은 채 잠든 날도 있었다.
그런 내가 차가웠던 걸까. 저녁을 먹던 중,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왜 이렇게 차가워졌어~ 얼음공주야, 얼음공주.”
“응. 나 아직 얼음이야. 녹는데 시간 좀 걸릴 것 같아.”
“그래? 그럼 내가 녹이려고 노력 좀 많이 해야겠네.”
남편 특유의 능청스러운 말투였다.
며칠 동안, 나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왜 이렇게 별일 아닌 것에도 마음이 요동치는 걸까.
곰곰이 돌아보니,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고, 각자의 결핍을 안고 살아왔다. 나는 갈등을 피하는 척하지만, 남편의 말 한마디가 납득되지 않으면 그냥 넘기지 못했다. 쏘아붙이고, 맞받아치기 일쑤였다.
어렸을 적, 해병대 출신의 아버지는 항상 엄했다. 내가 조금이라도 의견을 강하게 내면, 아버지는 매섭게 혼내곤 했다. 그 경험은 내 안에 날 선 감정을 조용히 켜켜이 쌓아두었다. 그래서 누군가 내 말을 반박하거나 지적하면, 그 순간 마음이 이유도 없이 먼저 움찔해 버렸다.
반대로 남편은 대체로 조용히 참는다. 속으로 삼킨 말도 많고, 혼자 끙끙 앓다가, 어느 날 갑자기 툭 터뜨린다. 나는 그 감정을 예고 없이 맞아야 했다. 방어할 틈도 없이, 감정의 화살을 맞곤 했다.
남편은 "왜 잘못을 인정 안 해?"라며 답답해했고, 나는 "왜 그렇게 예민해?"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런 날들이 쌓이며 우리 사이엔 말 없는 거리감이 생겨버렸다.
결혼이란, 완벽한 두 사람이 만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아가는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긴 순례길 같은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꺼이 깎여가며, 결핍의 모양을 둥글게 만들어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