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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Mar 07. 2021

민중의 삶이 있는 학산_ 보광재 길

杏仁의 길 담화_평화동 학산, 구이 평촌으로 간다

 겨울이다. 우거졌던 수풀이 시들고 나무들이 헐벗자 가려졌던 길이 보인다. 무성한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길들이 이산 저산 곳곳에 드러난 것이다.  가을 낙엽이  밤하늘의 별들이 숲 속 여기저기 떨어져 날아다니는 광경을 이 나라 안의 도시 어느 곳에서 볼 수 있을까? 청정 무주에서 만날 수 있는 반딧불이 전주 시가지의 한 끝에서 노닌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전주 서서학동의 버스종점이 있는 마을 흑석골은, 이런 면에서 전주시의 숨은 진주다. 

흑석골 버스종점에서 마을 길을 지나고 깊은 숲 속에 파묻힌 길을 따라 2km쯤 걸어 오르면 보광재다.  보광정을 지나 고개를 넘으면 널찍한 비탈길이 구이 평촌 가는 길이다.

 버스 종점을 지나 흑석골로 들어서면 조금 전 지나쳐 온 도시의 공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맑은 공기가 가득하다. 이 골짜기를 걸어 오르면 보광재에 이른다. 구이 평촌 쪽에서 장꾼들이 넘나들던 고갯마루다. 길은 내처 재를 넘어 구이 평촌으로 향할 수도 있고, 왼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남고산성과 고덕산으로 향할 수도 있다. 오른쪽으로는 학산 봉우리를 돌아 산등성이를 더듬어가며 숲 속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전주에 이렇게 아름다운 숲길이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학산 길은 소나무 숲 속으로 이어지는 고운 흙길이다.

 고덕산 서쪽 아래 뻗은 학산 줄기는 흑석골에서 보광재를 올라 학산 정상을 밟은 뒤 능선을 따라 흑석골로 돌아오는 길도 있고, 학소제나 맏내제, 덕천사 등 평화동 쪽에서 오르는 등산로도 여러 갈래로 나 있다. 걷는 이의 사정과 마음먹기에 따라 두어 시간에서 대여섯 시간까지 얼마든지 시간을 조절해 걷기를 즐길 수 있다.

 울창한 숲이 햇빛을 가려 소풍 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를 수 있는 산길이기에,  이 일대 주민들은 학산에 여간 애착을 갖는 게 아니다. 길지 않은 산길을 차고 오르면, 대개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학산 정상에 도착한다. 

 학산에서는 멀리 구이저수지가  보이고 동쪽으로 보이는 산이 고덕산이고 남서쪽으로는 길게 늘어서 있는 모악산의 웅대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 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 속으로 난 흙길이어서 발에 닿는 느낌이 아주 부드럽다. 학산 정상과 흑석골 중간쯤에는 바윗돌이 경사를 이룬 너덜지대에 정교한 돌탑들이 세워져있기도 하고, 숲 속 빈터에 운동기구들이 설치돼 있어서 많은 시민들이 운동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단히 낭만적인 공간이다.  

    

   

흑석골 버스종점의 당산나무 그늘이 넉넉하다.

 흑석골은 남쪽이 남고산과 고덕산의 봉우리들로 막혀 있다. 흑석골에서 남고산성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매봉재, 고덕산을 거쳐 모악산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보광재(普光峙)라고 한다. 

보광재는 전주천과 삼천을 내보내는 분수령의 하나이기도 하다. 정상을 분수령으로 북쪽은 흑석골로 흘러내려 남고천을 지나 서천으로 흘러들고, 남쪽은 평촌 들을 내려가 삼천으로 흘러든다.

 흑석골 버스종점에는 마을 당산나무 아래 커다란 자연석에 흑석골의 유래와  옛 시절 마을의 분위기를 그려낸 글이 새겨져 있다. 옛 시절 보광재를 넘어온 나그네들이 당산나무에 이르러 비로소 안도했다는 이야기와 흑석골에 유명한 한지 공장이 있었다는 이야기, 하늘과 땅,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며 이웃끼리 서로 섬기며 살아왔다는 아름다운 옛 마을의 정경이 그려져 있다. 

 흑석골 버스종점에서 마을 길을 지나고 깊은 숲 속에 파묻힌 길을 따라 2km쯤 걸어 오르면 보광재다. 보광재라는 고개 이름은, 근처에 백제 무왕 때 지은 보광사란 절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보광사는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상하보에 있었는데, 상하보란 마을 이름도 상보광, 하보광이라 했던 마을 이름을 합쳐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다른 이야기로는 고개의 형세가 엎드려 있는 호랑이 목의 혈, 즉 복호항 지맥(伏虎項之脈)이라고 하여 ‘복항재’라 했다고도 한다.

 보광재 고개를 넘으면 널찍한 비탈길이 구이 평촌 가는 길이다. 등산로 외에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옛길이지만, 나무꾼들이 많던 시절에는 이곳에 달구지가 지나다닐 만큼 제법 넓은 길이었다고 한다. 평촌이나 더 멀리 임실의 신덕면 사람들이 전주에 장 보러 올 때 넘어오던 주요 교통로이다. 

 싸드락 싸드락 보광재를 넘어가다 보면 이 고개를 넘나들었던 옛사람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다. 평촌에서 조금 떨어진 경각산 아래 효관재 사람들은 완산 8미(味) 가운데 하나인 열무를 많이 심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한여름 더위 속에 열무를 한 짐씩 지고 고개를 넘어 남부시장으로 팔러 다녔다고 한다.

 보광재 고갯마루에서 남고산성길과 학산길 두 길이 만나고 헤어진다. 구이 평촌으로 넘어가면 태봉마실길을 이어 걸을 수도 있으며, 보광재에서  고덕산(해발 603m)까지 오르는 등산로도 있다. 구이 평촌과 덕천리 일대에는 농촌마을의 정취와 역사문화자원을 답사할 수 있는 역사체험길이 조성돼 있기도 하다.

_김행인(金杏仁. 시인. 마실길 안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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