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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Apr 06. 2021

완산칠봉에서 용머리고개까지

杏仁의 길 담화_전주의 허파를 걷다

 완산칠봉(完山七峰)은 전주 시민들에게서 사랑받는 도심 속 휴식처다. 전주시의 중앙부로 흐르는 전주천을 따라 이어진 산줄기를 빙 둘러 전주시 효자동과 완산동, 서학동, 평화동 지역이 걸쳐 있으니 이 도시의 허파와도 같다. 매일같이 많은 시민들이 오르내리며 운동과 산책을 하고, 여름철에는 더위를 피해 숲을 찾기도 한다.  일곱 개의 봉우리가 연달아 있다고 해서 이름을 얻은 완산칠봉의 완산(完山)은 전주의 옛 지명이기도 하다. 

 산을 빙 둘러 시가지가 펼쳐져 있으니 완산칠봉 오르는 길이야 여러 갈래다. 평화동 꽃밭정이 쪽에서 오르면 순식간에 매화봉부터 밟게 되고, 평화성당 뒤편, 장승백이 쪽, 초록바위 쪽에서도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 효자동 정혜사 뒤편에서 오르면 가파른 비탈이 좀 길고 용머리 고개에서 오르는 길도 가파르다. 그중 완산칠봉의 정문은 완산초등학교를 지나 오르는 공원 진입로라 할 수 있겠다.        

 풍남문에서 완산칠봉을 향해 가려면 남부시장을 가로지르게 된다. 한때 전주에서 최고의 상권을 자랑했던 남부시장에서 시장의 풍물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전북도내의 각 지방을 운행하는 버스의 배차장이 있었고 맛있는 밥집은 여기 다 몰려 있었다. 시골에서 혼수를 장만하거나 큰 잔치를 치를 때면 으레 전주 남부시장에 나와 장을 봐 갔다. 

 아침나절의 시장은 사람들의 숨소리가 활기차다. 북적대는 콩나물국밥집, 순대집을 지나 채소가게, 청과상을 거쳐 천변 길로 나서니 어물전이다. 어물전 앞 길가와 매곡교 위 인도에도 어물, 과일, 야채를 파는 노점이 빽빽이 들어차 행인을 호객한다.


완산공원 편백숲 

 매곡교 다리를 건너 앞으로 곧장 걸어가면 완산초등학교를 지나 완산공원 진입로다. 진입로 옆 낮은 산비탈 쭉쭉 뻗은 편백숲 그늘 아래에 정자, 나무의자들과 운동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여름철 나와 앉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휴식처이기도 하고, 가까운 주민들에게는 아침, 저녁으로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잠시 숲 그늘을 둘러보며 걷다 보니 한편에 녹슨 철문으로 막힌 굴이 있어 서늘한 바람이 새어 나온다. 1968년 이후 전시상황을 대비해 조성한 방공호다. 군과 경찰, 도청의 지휘소가 들어가 지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나 지금은 사실상 폐쇄돼 있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올라 공원 입구 정자에 이르니, 길 중턱 넓은 터에 동학농민군 전주입성비가 서 있다. 완산칠봉은 갑오년에 전주에 입성한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격전을 치른 곳이다. 

 완산칠봉은 주봉인 장군봉(163m)을 시작으로 탄금봉, 매화봉, 옥녀봉, 무학봉, 백운봉, 용두봉까지 일곱 개 봉우리를 일컫는다.  완산칠봉에 일곱 개 봉우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홑산이 아닌 겹산이다. 장군봉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뻗은 양 갈래의 산줄기를 내칠봉, 서쪽 꽃밭정이로 흐르는 산줄기를 외칠봉이라고 해서 모두 열 세 봉우리가 있다. 내칠봉 북쪽 용두봉에서 용머리고개를 지나면 다가산, 다시 유연대를 거쳐 북쪽으로 파구신포에 이르기까지 낮은 산으로 이어져 전주를 감싸 안는다.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거치는 동안 무릎이 되다. 그리 높지도 않고 험하지도 않건만 내려서면 올라서고 올라서면 이내 내리막이 이어지는 길 탓이다. 완산칠봉을 걸으려거든 운동을 하기보다 산책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용두봉을 지나 긴 나무계단을 걸어 내려와 용머리고개에 닿는다. 용이 승천하다가 약속된 날에서 하루가 모자라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용머리고개. 완산칠봉에서부터 한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며 그 머리를 둔 곳이다.

 용머리고개 서쪽 효자동을 향해 난 대로가 훤하다. 2016년 초봄까지만 해도 이곳엔 육교가 있어서 다가공원 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육교 위에 잠시 서서 산비탈에 올망졸망 들어선 집들과 고개를 오르내리는 자동차들의 물결들을 바라보는 일도 이제 더는 없다.       

 용머리고개는 멀리 남쪽 목포에서 올라와 정읍, 김제를 지나 전주로 들어설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었다. 1894년 갑오년 전주에 입성한 동학농민군도 이 길을 따라 전주에 닿았다.

고개 아래에는 지금도 정읍과 김제, 부안, 고창으로 향하는 시외버스 간이정류소가 있다. 

전주에 들고나는 길목이었던 까닭에 예부터 이곳에는 당연히 주막이 즐비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꽤나 유명한 대폿집들이 자리를 잡고 나그네의 발길을 끌었다. 점 잘 본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총각 점쟁이 집을 비롯해 보살집, 점집들도 길가에 즐비했었다. 

 고개 부근에는 대장간도 여럿 있었고, 그 아래쪽 마을에는 유기전이 있었다고 한다. 전주 미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용머리고개 광명 대장간이 남아있어, 과거에 대장간이 여럿 있었다는 용머리고개의 흔적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도로를 건너가면 건너편 다가산 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 도로를 건너려면 시내 쪽으로 간이 배차장 아래까지 내려가거나, 대명까치아파트 입구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산동네 언덕배기 골목길을 올라 밭고랑을 따라 산등성이를 넘어서면 다가산에 닿는다. 

완산칠봉 중턱에 선 동학농민군전주입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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