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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Feb 24. 2021

초록바위 너머 꽃천지

杏仁의 길 담화 _ 투구봉 꽃동산 길

 산은 하나지만, 산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알록달록 봄꽃이 풍성하게 춤추는 투구봉 꽃동산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전주천을 굽이 보며 이어진 완산칠봉(完山七峰)이 도심 속의 휴식처라면, 투구봉 꽃동산은 오월 완산칠봉의 신록 속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보석이다. 

 완산칠봉이야 산줄기에 걸친 동서남북 마을 어느 쪽에서나 오를 수 있지만, 투구봉 꽃동산에 오르기로는 초록바위를 밟아 오르는 길이 으뜸이다.  

 완산칠봉은 도심공원으로 뿐만 아니라, 여기에 오롯이 담긴 전주의 역사를 되새기며 걷는 옛길 구간으로도 의미 있다. 곤지산 초록바위에서 완산칠봉 길을 돌아 다가공원까지 이어지는 길은 천년전주 마실길 구간이기도 하고, 천년고도 전주 옛길의 2코스이기도 하다.  

 남부시장에서 싸전다리 아래 징검다리를 건너 초록바위로 향한다. 5월이면 이팝나무 하얀 꽃이 군락을 이루는 산. 초록바위는 곤지산 자락의 언덕이지만, 1936년 홍수 이후 제방공사를 하면서 상당 부분이 깎여나가 본래 모습을 확인할 길이 없다. 

 원래 초록바위는 갈마 음수(渴馬飮水) 격으로 다가산 아래에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말이 풀밭을 찾는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 했다.   

 한국 천주교회사와 동학농민 혁명사에서 초록바위는 한 맺힌 언덕이다. 조선시대에 참형자들을 효수하던 나무들이 있어 지나는 이들의 등골이 오싹했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좁은 목, 숲정이와 함께 초록바위를 전주 3대 바람통이라 일컫기도 했다.  1866년 병인박해 이후 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당했으며,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에는 농민군 지도자 중 한 사람인 김개남 장군을 비롯해 많은 농민군 포로들이 처형당했다.    

초록바위 너머 투구봉 꽃동산 옆 숲속에는 '전주동학혁명녹두관'이 누운듯 서 있다. 무명의 동학농민군지도자의 유해를 안치한 무덤이자 전시관이다. 1995년 일본 북해도대학에서 발견돼 100년만에 봉환해 온 유해를, 2019년 전주시가 이곳에 모셨다.

무명의 동학농민군지도자 유해를 모신 전주동학혁명 녹두관

 초록바위 오르는 길은 싸전다리에서 공수내 다리를 향하는 2차선 구도로 초입에 있다. 이팝나무 군락지 안내판 옆 나무 층층대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작은 공원처럼 꾸며진 초록바위 정상이다. 남부시장을 비롯한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등의자와 조형벤치를 둘러싸고 심은 이팝나무, 영산홍이 자라고 있어 아직은 인공의 냄새가 난다. 초록바위 정상에서 숲길을 따라 투구봉 꽃동산으로 건너갈 수 있다. 

 초록바위 정상 쪽 등산로를 정비하기 전에는, 서서학동 주민센터 못 미쳐서 공수내 2길 계단을 따라 투구봉에 오르곤 했다. 공수내 다리 쪽으로 2차선 구 도로를 따라 200m가량 올라가면 오른쪽 좁은 층층대 골목 입구에 이정표가 있었고, 비탈길에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 있는 마을 골목 사이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올랐다. 이 계단 골목은 작년 가을 벽화가 그려져 벽화 계단으로 재탄생했다. 전주시와 KT&G의 합작품으로 진행한 환경개선사업이었다고 한다. 

 초록바위에 어린 한을 달래기라도 하듯, 완산 시립도서관 뒤 투구봉(해발 100m)은 온통 꽃 공원이다. 바야흐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철쭉꽃이 한창이다. 인근의 주민 김영섭 씨가 선친의 묘소 주변에 꽃나무를 심어 40여 년을 가꿔 온 것이 오늘날 명소로 개방됐다. 

아쉽게도 올해는, 봄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동안 비바람에 시달려서인지 꽃동산의 향연이 짧은 기간 반짝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 신록의 동산을 찾아 걷는 사람들 표정은, 마치 팔랑거리는 나비들의 춤 같다. _ 杏仁 (시인. 마실길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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