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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 Mar 26. 2021

중바위 아래 바람 쐬는 길

杏仁의 길 담화_성지를 걷다

 커다란 돌들이 듬성듬성 드러난 후백제 왕궁 터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숲 속에 서 있었다. 이곳에 궁터를 닦은 견훤은 37년 만에 쓰러졌으나 천년이 지나서도 남아있는 흔적은 역사를 말해준다. 천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후백제의 한이 이 숲에 잠들어 있다.

 견훤은 서기 900년 신라 효공왕 4년 완산(전주성)에 입성한 견훤은, 고려 태조 19년 후백제가 멸망하기까지 37년 동안 전주를 도읍지로 삼아 후백제를 다스렸다.        

 중바위승암(僧岩)     

 왕궁 터에서 남쪽으로 몸을 돌려 천년고찰 동고사의 운치를 뒤로 하고 승암산 정상을 향한다. 등성이를 조금 올라서니 기묘하게도 구불구불한 소나무 숲길을 만난다. 운치 있는 숲 속에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승암산 줄기를 따라 걷는다.  

 문득 눈앞에 암봉이 우뚝 막아서고 그 왼쪽으로 설치된 목책계단을 돌아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다. 중바위 고스락이다. 험한 바위 등성이가 200m쯤 이어진다. 두루뭉술한 바위가 아니라 끝이 창날처럼 뾰족한 바위들이 대포처럼 하늘을 향한 암릉 구간이다. 

 중바위의 한자 표기는 승암산(僧巖山)이다. 벼랑의 모양이 마치 고깔을 쓴 중들이 늘어선 것같이 보인다고 해서 ‘중바우’라고 불렀다.     

 그냥 전주에서 가깝고 편한 산이라는 생각은, 승암산에 오르는 순간 여지없이 깨진다. 중바위에 올라서서 보면, 승암산은 전주 사람들에게 성지 1호로 정해도 손색없을 만한 명산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건너편 완산칠봉 앞을 흐르는 전주천 물길을 내려다본다. 사학자들의 말마따나, 천년쯤 전에는 물길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초록바위에서 남부시장 쪽으로 뻗친 산 기운이 아마도 전주천을 지금처럼 서쪽으로 곧게 흐르게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의 전주천은 한벽당과 오목대 앞을 돌아 금암동 일대에서 모래내와 합류하였으리라. 

 왕궁의 터를 품고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승암산의 기운이 그 한을 가눌 수 없어 못다 한 지기(地氣)를 내뿜은 것일까? 세월이 지날수록 주천은 점점 완산칠봉 쪽으로 밀려갔고 물길은 다가산에 부딪혀 심하게 북쪽으로 굽어 흐르게 되었다.


가톨릭 치명자(致命者성지     

     조심조심 바윗길을 통과하니 수평으로 길게 이어지던 등성이가 아래로 기울어지며 바위 끝에 커다란 돌십자가와 천주교 성지 안내판이 서있다. 돌 십자가 위에 높이 선 천연바위가 마치 성모 마리아상 같다. 천주교 순교자 유항검 일가 합장 묘역이 들어 있는 치명자(致命者) 성지(전라북도 기념물 제68호. 공식 명칭 천주교 순교자 묘)다. 

 한국 천주교 사상 호남의 첫 사도요 순교자였던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부인 신희(申喜), 둘째 아들 유문석(柳文碩) 요한과 조카 유중성(柳重誠) 마태오, 제수 이육희(李六喜) 그리고 동정부부 유중철(柳重哲) 요한과 이순이(李順伊) 루갈다 등 7명의 순교자 유해가 모셔져 있다. 유 요한과 이 루갈다를 추앙하는 천주교 신자들은 ‘루갈다 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유박해 당시 김제군 재남리(현 전주시 덕진구 남정동)에 가매장됐던 이 순교자들은, 다가 전동 본당 초대 신부인 보두네(Baudounet) 신부를 비롯한 신자들이 1914년 4월 19일 이곳으로 옮겨 모셨다. 이어 1949년 전동 성당 신자들은 치명자 성지에 십자가 기념비를 세웠다.

 치명사성지 아래 전주천 옆으로 웅장한 건물이 내려다보인다. 2021년 문을 연 '세계 평화의 전당'이다. 집회·문화·숙박시설, 전시장, 산책로, 평화화합 광장을 갖춘 이곳은, 천주교 순례객은 물론 관광객들도 이용할 수 있는, 명상·교육·문화·체험의 공간이다.

 성지 아래로 화강암 산상 성당을 스쳐 내려오는 산비탈 길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최고의 성지로 꼽혀 ‘골고다 십자가의 길’이라고 한다.   

 가파른 비탈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니 너른 잔디광장과 산비탈 사이에 고즈넉한 산책로다. 전주천 상류 방향으로 색장동까지 닿는 길이다. 전라선 열차가 다니던 철길을 옮긴 폐선 구간이 마을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바뀌어 ‘바람 쐬는 길’이라고 부른다. 이 근동의 행정구역 명칭이기도 하다. 색장동까지 마을을 잇는 이 길은 사람, 자전거, 차량까지 모두 다니지만, 광장 너머 전주천 둑방 위로는 차량은 못 다니는 길이 또 있다.      


바람 쐬는 길한벽루와 승암사     

 봄기운 가득한 몽마르트 광장을 지나 전주천 상류 목책 길로 들어선다. 맑게 흐르는 냇물에 햇살이 부딪쳐 반짝이며 튀어 오른다. 건너 저 편에 동서학동 약수터가 보이고 마주한 이 편 산비탈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작은 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 제법 넓은 자리를 차지한 승암사가 있다. 

 태고종 사찰 승암사는 여러 고승들이 주석하여 스님들의 법력이 강한 곳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전북지방에서 가장 이름난 고승인 진묵 스님이 이곳에 머물며, 약수를 마시며 수도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용담, 조관 스님이 중창했고, 근대에는 만응스님이 중창을 했으며, 해안, 봉수 스님과 더불어 한벽 선원과 승암 강원을 열어 이 지역을 불교계를 육성하는 등 그 법력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스님을 닮은 승암산 아래 위치한 승암사는 자연히 스님들의 법력이 강해 오늘날에도 이곳에 가면 도광 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와 설법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시내에서 가깝고, 길에서도 훤히 보이는 곳에 위치하여 누구에게나 가깝게 다가오는 승암사다.     

한벽루 옆으로 전라선 철길이 뚫렸던 한벽굴. 지금은 한옥마을과 승암마을을 잇는 보행자 통행로다.

  전주천을 따라 한벽루 쪽으로 내려가니 마을 앞마당에 자연생태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더 나가면 한벽굴이다. 지금은 기린대로가 뚫려 큰길로 나가는 굴이지만, 전라선 열차가 다니던 시절 철로가 지나던 터널이었다.  

한벽굴을 빠져나가면 기린대로를 건너 한옥마을로 건너갈 수도 있고, 오른쪽 산비탈의 자만동 벽화마을과 옥류동으로 향할 수도 있다. 

 산책객들은 대개 한벽교 아래로 내려서서 전주천 고수부지를 걷는다. 다리 아래 찰랑거리는 물은  수심이 깊다. 40년 전만 해도 이 동네 사람들은 여기서 물놀이를 즐기곤 했지만, 지금은 풍경만 즐길 수 있다. 바로 한벽청연(寒碧晴烟)의 무대다. 

 전주천 상류를 걷는 ‘바람 쐬는 길’은 어느 철이건 바람이 세다. 승암산, 기린봉과 고덕산이 동서로 마주 보며 이어진 산줄기 사이로 쏟아지듯 오가는 바람 때문일 것이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맞으며, 이 바람 쐬는 길을 걷는 발길이 한가롭다. 

_김행인(金杏仁. 시인. 마실길 안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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