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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숙 Sep 09. 2020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기억 속에서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찾다



야 너, 잠깐 따라 나와 봐.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다. 같은 반이었던 여자아이들 무리 중에 가장 덩치 큰 아이가 내게 와서 앞뒤 설명도 없이 이 한마디만을 쏘아붙이고는 나를 학교 건물 뒤편으로 불러냈다. 적막하고 냉랭한 분위기를 감지한 상태로 대여섯 되는 그 무리들 속에 빙 둘러쌓여 스스로 경계 태세를 갖추기 급급했다. 그 아이들이 당시 내게 무슨 말을 했었는지 지금으로써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한가지 확실한 건 그들 중 하나가 나에게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이 돌아가면서 나에게 쏘아붙이기를 계속 하다가 한 명이 제 분에 못이겨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강하게 밀쳐내기까지 했다. 


나는 왜 한마디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을까. 바보같이.








초등학교 졸업을 한 두달 남겨놓고 부모님에게 이사를 가야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동안 정들었던 친구들, 선생님과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어린 나에게 익숙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은 굉장히 슬픈 일이고 그런 감정이 꽤나 오래 남아있었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평소 내성적이었던 나는 반 친구들에게 선뜻 같이 놀자는 얘기도 하지 못했다. 며칠이 지난 어느날, 아침에 교실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한 남자아이가 먼저 다가와 과자 하나를 주고는 같이 먹자며 말을 걸었다.


- 오~ 올래리꼴래리~ 


옆에 앉아 우리가 하는 대화를 듣고있던 다른 아이는 킥킥거리며 놀려댔다. 과자 나눠먹는 게 여기 친구들은 놀릴 일인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반 아이들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을때 그 여자애들 무리의 시선이 느껴졌었다. 







그 순간의 적막하고도 고요한 분위기 너머로 앙칼지게 들려오는 다수의 목소리들이 한데 섞여서 그저 숨이 막혔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 온 전학생이 반갑지 않았었나. 아니면 내가 그 아이에게 과자를 받은 것 때문에 그랬었나. 몇가지 추측은 할 수 있었지만, 두려움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 못 했던 것 같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려 할 때쯤에야 교실에서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그제야 그 무리들 사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따라들어가지 못했다. 대신 화장실 안에서 혼자 한참을 앉아있다가 수업 중간이 되어서야 겨우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일을 겪었다는 것을 당시엔 아무에게도 말 할 사람이 없었다. 그 사실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결국 찰나같은 졸업 시즌동안 반 아이들은 나를 흘깃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고, 그 때문에 나도 더이상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스스로를 타인에게서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분란을 최대한 피하는 것, 

속마음을 다 털어놓지 않는 것,

부딪히지 않고 모른 체하는 것


최대한 감정과 생각 따위를 숨길 수 있는 행동들만이 나를 진정으로 지킬 수 있다고 말이다. 솔직함이라는 무기는 때로 내게 상처가 되어 돌아왔고,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간직해 둔 속마음을 이야기하면서 또 한 번 그렇게 상처는 반복되고 있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피하기만 했던 일들이 오히려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저 나는 아무 말 못 하는 사람이라고,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 투성이라고 스스로 결정해버렸다. 내 안의 자존감은 더 낮아져만 갔다.


상처받을 수 있는 용기,

피하지만 말고 부딪혀보는 태도,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지라도 소신껏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는 것.


그게 스스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갖는 마음가짐 아닐까. 모든 사람들의 얼굴도 다 다르듯이 성격도 표현하는 법도 다 다르다. 나는 그저 나다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몸도 마음도 유약했던 어린 시절에 비해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잊지 말아야겠다. 


때로는 하고 싶은 취미활동을 하고, 가끔은 가고 싶은 곳에 여행을 가면서 늘어지게 낮잠도 자고, 맛있는 것을 실컷 먹기도 하고, 한바탕 땀을 쏟아내며 운동도 하고 그렇게 삶과 연애하듯 재미를 느끼며 사는 것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한없이 낮아지는 자존감 때문에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그럴땐 한 템포 쉬어가는 것이 좋다. 인생의 마침표를 찍기 전엔 늘 쉼표가 존재하는 법이니까. 




오늘도 스스로와 연애하며 사는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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