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만…
2월 10일 목요일, 몇 년 만의 촬영.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시작 전 상비약을 미리 복용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촬영은 다행히 밝은 분위기로 끝났지만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잡념이 몰려왔다.
실수를 한건 아닌지 피해를 끼친 건 아닌지…
그렇게 잡념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
그날 밤은 유독 빨리 찾아왔다.
불안함,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 저녁 약을 입에 털어 넣고 잠을 청하려 누웠지만 덮은 이불은 쇠사슬처럼 차갑고 무거웠다. 차라리 시원하게 펑펑 울면 좋겠지만 눈물샘은 내 감정처럼 메말라있었다.
끈을 놓지 않게 “괜찮아, 걱정할 것 없어. 무서워하지 마” 라며 다독이다 보니 까만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 다행히 병원 예약일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사물이 두 개로 보이는 재밌는 증상이 생겨 운전대를 잡는다면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상황이 찾아올 것 같아 차키를 내려놓고 걸어가 보았다.
역시나 걸어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0분을 하염없이 걷고 병원에 도착했다.
아직 내 속 이야기를 안 했었지만 그날은 내 과거들을 다 말해드려야 치료에 도움 될 것 같아 모든 이야기를 풀었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신기하게 보시며 “유명한 가수 아니에요? 저도 아는 가수인데?”라고 말을 건넸다.
부끄러웠지만 ”네… 거기서 남자였어요.” 답을 하자 선생님은 “김루트 씨예요?”라며 재차 물어보셨다. 그렇게 숨기고 싶은 내 이야기들을 오픈하는 타임을 갖고 처방의 시간이 찾아왔다. 의사 선생님은 이전 나의 과거를 아는 선생님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손가락질만 당하는 거예요. 그게 그 사람들 목적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지금 본인 마음이 무너지고 있는데 언제까지 참고만 있을 거예요? 겁이 나서 그러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악플 달면 그거 다 캡처하시고 준비하세요. ”
의사 선생님이 아니고 변호사님인 줄 알았다.
솔직히 나는 싸우기도 싫고 입 다물고 있으면 그들이 건드리지 않을 줄 알았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나?
남들 신경 쓴다고 보살피지 못한 내 마음에게 조금씩 다가가려 한다. 남들을 챙겨줄 수 있을 만큼 내 마음도 건강해야 되니까.
언젠가 나와 같은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