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완벽한 계획 속에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다
항상 홋카이도의 이미지는 그런 것이었다. 해산물, 눈(+스노우보드), 러브레터, 게...인식은 단편적이고, 단편적인 인식 때문에 그런 인식이 연결될 큰 그림의 깊은 생각이나 목적을 가지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그냥 가보면 되는 것을. 그러면 무언가 큰 그림이 그려지겠지.
그래서, 그냥 갔다.
가기 전에, 예전과는 다르게 철저한 계획(철저한 계획표는 https://brunch.co.kr/@ryumiverse/5 에서)을 세웠다. 평소라면 대강 갈 곳 정도 정하는 정도였겠지만 이번에는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싶었다.
- 1차 삿포로 원정에서 경험한 시간 낭비 - 6박 7일간 삿포로-오타루만 걸어다닌 여행 - 를 하고 싶지 않았다.
- 1월 1일이 끼어있어 가고픈 곳들의 휴일이라던가, 영업시간을 미리 알아두고 싶었다.
- 대중교통과 렌트카, 패스를 사용한 전차까지 다양한 이동을 해야하니 이동시간을 계산해두고 싶었다.
- 뭔가 좀 열심히, 다양한 곳을 다녀보고 싶었다(!)
이러한 이유로 계획을 세우자-하고 시작한 것이 거의 완벽한 계획으로 세워지게 되었다. 아마, 계획을 세우려고 본 블로그와 브런치 등의 글 수만 100여개는 넘지 않을까...? 일부 블로그는 그들의 여행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여행을 간접 경험을 했다.
그렇게 떠난 홋카이도. 진정한 北海道 巡り(홋카이도 순회)가 되었다.
서울은 매우 추운 날이었다. 손가락이 떨어질 듯한 추위 속에서 캐리어를 끌고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일단 첫째는 약간의 두려움이었다.
홋카이도도 추울텐데. 서울이 이정도라면...
...하는 두려움은 생각보다 큰 걱정은 아니었다. 삿포로는 꽤나 북쪽에 있지만, 기온보다는 바람 추위가 큰 곳이었고, 가져간 패딩은 적절히 바람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었다!
<알고 있던 지식에 나무위키의 정보를 양념으로 끼얹은, 그냥 나열하는 삿포로 이야기>
1. 찰황. 삿포로(札幌)의 한자를 한글로 읽으면 '뽑을 찰'에 '휘장 황'이다. 원주민어인 아이누어 '메마른 강바닥'을 뜻하는 단어의 음차라고.
2. 홋카이도 개척(!)을 하면서 만들어진 계획도시로, 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는 공원인 오도리공원(大通り公園)은 대화재 발생시의 확산 방지를 위한 방화벽 역할을 했다고.
3. 이런저런 역사가 있지만, '삿포로 맥주'의 그 삿포로 맞다.
4. 일본 내 대도시 중 5위. 우리나라 인구기준 대전정도의 수준. (대전광역시와 자매결연이라고!)
5. 하츠네 미쿠의 고향이다.
삿포로를 도착해서는 계획대로 일단 삿포로 역에서 간단하게(?) 점심.
해산물이 유명한 동네이니, 일단 시작점은 스시로 해보도록 하자. 모든 것은 계획대로.
제법 만족스럽고, 가장 비싼(!) 점심을 마치고 숙소를 체크인.
Airbnb로 잡은 숙소는 정말 작은, 우리나라의 원룸 오피스텔 정도 규모의 작은 방이었지만 나름 안락한 곳.
그리고 계획대로라면, 3시 반에 나가서 모이와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었다.
다양한 자료를 보면서 가장 중시한 것은 '객관적'이고 '정보'가 담긴 자료였다. 많은 이들의 블로그를 보면서, 참고한 것은 가볼만한, 가보고싶은 '장소'만을 참고 했고, 영업시간이라던가 위치, 그리고 추가적인 정보들은 공식 홈페이지나 일본 관광청의 정보를 기반으로 검색을 해두었었다.
모이와산을 12월 31일의 일정으로 선택한 것도, 특별하게 해외에서 맞이하는 새해니 특별한 장소에 가고 싶었고, 12월 31일에 마지막 해넘이를 보는 것과 1월 1일 새벽에 신사를 가는 것이 삿포로의 신년맞이 방식이라 해서 선택한 것. 다만, 1월 1일의 경우 아침부터 렌트카를 빌려 이동해야하는 일정을 감안하면 무리하고 싶지 않아 12월 31일의 모이와산을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실패했고, 계획은 틀어져버렸다.
첫째로, 삿포로는 해가 빨리 저문다.
고려는 하고 있었다. 북쪽에 있어, 4시~5시면 해가 진다는 것을 감안해서 '음 3시반 쯤 출발해서 가면, 4시쯤 도착하니...'가 계획이었지만 출발 자체를 4시에 하게 되었다. 역시 여행의 피곤함을 이기기엔 사람은 미약하다.
둘째로, 눈이 왔다. 바람이 불었다. 이것은 블리자드인가.
워낙에 유명한 공간이고 특별한 날이니만큼, 사람이 몰릴거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12월 31일이 아닌가. 위험하고, 피곤해도 사람들은 종각에 가거나 코엑스 영동대로에 모여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 그렇기에 사람이 많아도, 함께만으로도 좋은 두 사람이 새로운 신년을 맞이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눈이 왔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모이와산은 케이블카로 올라가야하는데...?
이래저래 트램을 열심히 타고 케이블카 역으로 가는 셔틀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해가 졌고, 무엇보다 눈과 바람 + 사람 밀집의 안전 상 이유로 마지막 셔틀이 출발한 지 10분 뒤였다. 셔틀버스 정류장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함께 도착한, 이미 티켓을 예약해서 구매한 외국인에게도 올라갈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 선생님...? 어찌 이럴 수 있나요?
계획은 틀어졌다.
원래의 계획은 해넘이를 보고 어둠이 완연해지면 내려와서 > 숙소 근처의 에비 소바를 먹고 > 오오도리 공원과 스스키노 주변을 보다가 > 스프카레를 먹고 > 이자카야서 한 해를 보내는 조촐한 파티를 한 뒤에 > 집에서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감을 맞이하는 일정.
...그래, 역시 계획 안세우던 사람이 계획대로 움직이려니 쉽지 않지. 어차피 오늘은 두뇌 언어 모드를 바꿔야하는 적응일이니 숙소 주변을 돌아보기로 한다.
눈오는 거리, 일루미네이션이 장식된 거리. 일단 우리가 이곳에 왔고, 2019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으니- 주변을 돌아보면서 적응(?)을 하고 마지막 계획대로 숙소에서 조촐한 자체 파티를 진행하기로 했다.
역시 '포기하면 편해'
조촐한 파티의 준비는 역시 돈키호테와 편의점. 돈키호테의 술 코너는 꽤나 '환상의 나라'같은 느낌이다. 이런 게 있어? 저런 게 있어? 정신없이 구경하게 만드는 개미지옥. 그리고 나서, 소주 코너에 섰다. 꼭 이렇게 지역 소주를 전시해놓은 곳이 있단 말이지.
일본하면 보통은 사케(청주)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나에게 일본은 '소주'의 나라이다. 우리나라 전통 소주는 거의 쌀로만 만드는 것에 비해, 일본은 고구마, 감자, 보리, 쌀...뿐만 아니라 시소(차조기)나 다시마로 소주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삿포로에서 발견한 것은 바로...'유청'으로 만든 소주. 가격도 1병에 1,000엔도 안하는 가격이라 선택! 특히 저 가운데 녹색병의 아이는 디자인도 무언가 8090 스타일 같아보여 예뻤다. 그래, 무언가 '레트로' 갬성이 녹아든 저 아이를 고르자.
주섬주섬 소주를 사고, 편의점에 들러 간편한 안주류 - 계란찜, 우엉조림, 에다마메, 김치(?) - 와 추가로 맥주까지 구입해서 들어온 시간이 저녁 8시. 편히 쉴 준비를 하고,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소주를 마시며 신년을 맞이.
신년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 술을 한 잔 하시면서, 졸기도 했지만 신년은 맞이했다.
Happy New Year! 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
드디어 신년, 2020년을 맞이한 삿포로의 첫날 밤.
역시, 홋카이도란 그런 곳이었다.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없는 그런 곳.
난생처음 세워본 '완벽한' 계획은 예측할 수 없는 홋카이도를 넘어설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반대가 될까.
내일은, 아침일찍 일어나 렌터카를 픽업하러 가야한다. 그래, 이건 계획대로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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