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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숲섬 Jun 12. 2024

프랙탈의 세계 : 순간과 영원

{숲섬타로}가 보낸 여섯 번째 편지


H선생님!



 대학 신입생 때 에세이 쓰기 수업이 있었어요. 에세이 쓰기를 위해 전공 관련 주제를 정하고 그것에 대해 목차와 초록을 쓰게 되었는데 스무 살의 제가 잘 알지도 못하며 선택했던 주제가 바로 프랙탈과 우리의 일상이었어요. 프랙탈(fractal)은 ‘작은 조각이 전체의 모양과 비슷한 기하학적 형태’를 뜻하는 수학 용어로, 우리의 현실에서도 쉽게 프랙탈 구조를 찾을 수 있어요. 번개와 우리 눈 속의 실핏줄 모양, 지도상의 해안선과 실제 짧은 해안선을 확대했을 때의 유사한 모양, 나무 전체의 모습과 쏙 빼닮은 나뭇가지 하나의 닮은 모습처럼요.



 지금 와 보니 프랙탈 개념은 내 삶의 주제와 관점과도 관련이 있었어요. 삶을 살아가며 찾게 되는 세상의 질서와 아름다운 순간의 조각들이 우리 전체의 인생과 무척 닮아있고 결코 그것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시 한 편을 읽어도 우리네 인생이 담겨 있고, 내가 뽑은 타로카드 한 장에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습이 함께 깃들어 있어요. 한 장의 스냅사진 속에서 (찍은 사람과 찍힌 사람 모두의) 성격, 심리, 취향과 과거와 미래와 삶의 주제까지 한 번에 짐작해 볼 수 있듯이 타로를 읽으며 전체를 보는 연습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제 시선의 범위, 관점의 깊이도 매번 확장되는 것 같고요. 영화, 그림과 건축, 요리도 마찬가지예요.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초상화 한 장으로 나타낼 수 있듯이, 그가 뱉는 한 문장으로 보여줄 수도 있듯이,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은 우리들 인생의 단면이자 전체였어요. 거꾸로 내가 만든 글 한 편, 한 끼의 식탁, 방을 청소하거나, 프로젝트를 완성할 때조차 내가 가진 모든 능력과 지혜를 모아 최선을 다해 완성시켜야 할 이유도 깨닫게 된 거지요. 이 순간만이 내 생의 전부니까. 이렇게 최선을 다한 순간들이 모여 내 삶을 완성시키는 거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게 되는 모든 예술작품과 일상의 순간들이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요즘이에요.



 특히 예술을 사랑하고 아끼는 선생님의 영향을 그동안 많이 받았나 봐요.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친해졌지 생각해 보니 다른 이들에겐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던 에너지가 선생님과는 끊임없이 순환하는 더 큰 에너지로 발전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특히나 함께 좋은 장소에 가고 전시를 보고 좋은 책을 나눠 읽은 기억이 많아서 놀라게 돼요. 함께 읽은 책들은 책장에서 꺼내 들추기도 전에 그때의 시간들을 소환하니까요. 제게 놀라운 순간들을 자주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가끔 서울 가면 선뜻 서재방을 내주시고 좋은 것들 골라놨다가 소개해주시는 것도 정말 고맙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꾸준히 나눠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돼요. 우리가 보내는 시간은 일 년에 겨우 열흘도 채 되지 않지만, 그 시간 동안 배우고 느끼는 많은 경험들은 굵직한 터닝 포인트들이라 해도 될 정도로 즐겁고 유익한 순간들이 많았어요. 게다가 하루하루가 내 삶의 전체인 것처럼 잘 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만들거든요.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만큼 발견하고 배우는 것 같아요. 제 발견은 아직 보잘것없고 얕은 수준에 불과하지만 순간순간 느끼게 되는 감동, 환희, 기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고 화사해지네요. 그 발견이 없다면 삶은 무미건조하고 서글프겠지요? 힘들어도, 절망스럽고 울적해도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발견하며 산다는 것, 그 사실이 사람들을 지탱해 주고 다시 일으켜주는 힘이 된단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 발견과 기쁨을 마음만 먹으면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놀라운 기적 같고요. 인생은 고단하고 지루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릴 계속 나아가게 하는 힘은 우리 인간이 대자연의 축소판이자 완전한 소우주라는 사실이겠지요. 거대한 자연의 초월적인 힘을 우리 안에 지니고 있기에 다시 일어서고 절망을 넘어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날들이 기다려져요. 벌써 건강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고민하는 나이가 되었기에 노력하는 만큼 더 좋은 날을 살아낼 수도 있을 거라 믿어요. 이번에 선생님이 왔다 가시고 삶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어요. 다음에 뵙게 되면 더 깊은 이야기 나눠요. 참, 타로는 언제든 봐드릴게요. 전화 주시고요. ^-^ 


건강하세요. 많이 웃다가 우리 또 만나요. 

 



숲섬 드림




* 숲섬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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