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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섬타로 Feb 14. 2024

이렇게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숲섬지기}의 두 번째 편지 : 美, 고향에 계신 아름다운 당신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짧게 보낸 안부문자에 연휴가 끝나고야 긴 답신이 왔네요.

  어제부터 이 문장들을 읽고 또 읽어요. 은아! 건강하자!

  10여 년 전 선생님의 장례식에서도 떠나는 내게 웃으며 당신이 건넸던 한 마디, 은아! 건강하자!

  그 한마디가 커다란 주문처럼 늘 나를 에워싸고 보듬어준 걸 기억합니다.



  언젠가부터 당신과의 안부전화 내용도 주변 어른들의 건강상태, 또 우리들의 건강에 대한 이슈가 주가 되었네요. 그게 현실이기도 하고, 매일이 다르게 약해지는 내 몸에 대해 이제는 적극적으로 챙겨야 할 나이가 된 탓도 있겠지요. 저는 2019년부터 해마다 큰 수술도 하고, 회복하는 과정도 길었고, 수술이 반복되면서 체력이 무척 약해졌어요. 자세히 말씀드리진 않았지만, 자주 노인이 된 내 모습을 심각하게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좋지는 않다,라고 하면 정확하겠어요. 몸의 여기저기가 낡아가고 쇠약해진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두렵기도 해요. 그런데 아픈 동안 뭔가 많이 달라지긴 했어요. 어린 시절의 한때는 일찍 죽어야겠다 적극적이던 때도 있었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건방지게도) 심근경색으로 죽고 싶다 주문처럼 읊고 다니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하나씩 목표하던 일을 놓아버리고, 하고자 욕심내던 마음을 내려놓게 되면서 내가 가진 마음의 불안, 무거움 들도 덩달아 가벼워졌던 것 같아요. 난 언제부터 이리 무거운 존재가 되어 살아온 건지, 이렇게 짓눌리면 몸도 마음도 힘든 게 당연하잖아요. 마음의 무거움을 조금씩 벗어내도록 돕는 일 중에, 운동과 산책도 있고, 글쓰기도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이렇게 당신과도 무엇에 대해서든, 특히 죽음에 대해서도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행복한 미래의 어느 날 중 하루의 모습입니다.




  고향을 지키고 계신 당신에게 이번 명절 역시 많이 힘드셨나 봅니다. 늘 생각 없이 받던 밥상, 입고, 마시고, 이동하고, 무언가를 사용하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일 모두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희생으로 이루어진 걸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아직도 너무 많네요. 우리 앞의 현실은 늘 무겁기만 하고, 사링하던 이들의 노화, 질병, 죽음도 부담스럽지만, 그런 많은 것들은 실재하니까,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는 게 진짜 삶을 살아가는 어른이겠지요. 내가 열아홉에 처음 만났던 어른답던 두 분, 선생님과 당신. 이제 선생님은 우리 곁에 없지만, 소중한 당신과 일상의 힘겨움, 굴곡과 그림자, 빛과 어둠에 대해서 얘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더 자주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만나면 타로 봐드리려고 했는데, 직접 만날 때까진 조금 더 기다려야겠지요. 지금 당신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카드 세 장으로 뽑아보았어요. 카드상으로는 당신이 주변 사람들의 화합과 평온에 큰 역할을 하시는 것 같아요. 명절의 부담감 또한 이런 것에서 오는 것이겠지요. 다만 너무 오래 이 같은 일상이 지속되면 주변인들도, 나 자신도 당연한 일인 것처럼 안일해질 수 있고, 내가 무의미하게 희생만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홀로 소외된 듯 느낄 수도 있고요. 잠시 좁아진 시야로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는 듯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그런 힘겨움에서 곧 회복되실 걸로 보여요. 절제 Temperance, 열네 번째 메이저 카드가 당신께 필요한 에너지를 보여주네요. 분명 현실과 이상의 적절한 지점을 찾아가는 중일 거고, 당신은 결국 나 자신과 모두를 만족시킬 최적의 비율과 방식을 찾아내실 거예요. 중용은 당신과 잘 어울려요. 가끔 지나치게 업되고 다운되는 걸 알고 있지만, 그렇기에 당신에게 중용은 더 큰 의미가 있고, 그 모든 순간이 다 당신이니까. 난 그 모습이 정말 좋아요. 그만큼 열정도 사랑도 넘치는 분이시니까요.



절제 카드 : 내면의 에너지와 당신 주변의 에너지를 알맞게 조절하고 균형을 이루는 방법에 정답은 없다. 때에 맞는 창조적인 방법을 찾아라.



  10대, 20대 내내 선생님이 저에게 좋은 주문을 던져준 감사한 존재였다면, 이젠 그의 동반자였던 당신이 제게는 선생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되었네요.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이제는 조금씩 가까워져 안부도 묻는 사이가 되었으니 저는 더 바랄 것 없이 그저 감사합니다. 한 사람의 존재가 죽고 나면 끝인 것 같더니, 이렇게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 눈 속에 영영 빛나는 거로구나,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원래로 돌아가는 것. 그가 남긴 추억과 존재의 기억을 남은 이들이 간직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 생각하게 돼요. 언젠가 여기까지 찾아준 당신과 따님 S와 헤어지며 포옹할 수 있어 정말 고마웠어요. 그때부터 내 마음이 더 든든해진 것 같거든요. 오늘이 S의 생일이니까, 당신이 고생해서 첫아이를 낳은 날이네요. 그 얘기도 언제 실감 나게 듣고 싶어요.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는 길을 걷고 있단 사실이 늘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가다가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면 이젠 더 건강한 쪽으로, 빛이 있는 곳을 선택해 나아갈 거예요.

  정말 건강해요 우리. 건강하게 곧 만나요.

  그리고 힘들 때 문득, 그냥 오세요.

  숲섬에서 기다릴게요.



  숲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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