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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섬타로 Feb 21. 2024

이해받고 싶은 꼰대의 마음

{숲섬지기}의 세 번째 편지 : 내담자 B님께


  B님께,


  

  상담을 마치고 한참이나 당신 목소리가 맴돌았습니다. 가늘고 조금은 떨리던 풀 죽은 목소리. 상담이 끝나면 내담자님께서 만족하셨는지 아닌지 대부분 감이 오는데요, 이번엔 아쉽고 불편한 마음이 제게도 남아있었습니다. 그게 뭘까, 대체 왜 내게까지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생각하다 보니, 안개가 조금씩 걷히듯 보이는 게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당신이 그분들의 문제점으로 꼬집어 이야기한 '꼰대'라는 단어였지요.



  많은 이들이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안내서를 검색하고, 비결과 조언을 구하는데 어느 때보다 진심입니다. 이전 시대엔 부모, 친지, 선배들이 하던 역할을 요즘은 인터넷이 대신하고 있지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90년대 생으로서 위계질서를 가진 회사 생활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겨웠을까요. "일만 하고 싶은데 꼰대처럼 그분들은 자신들을 알아주고 위해 주길 바란다"던 당신의 푸념 속에서 그분들과 완전히 단절된 신, 구세대 간의 거대한 갈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편안하게 내 일만 할 수 없는 곳이 회사지요. 어쩌면 어떤 인간관계든 깔끔하게 내가 원하는 것만을 얻으며 지낼 수 없는 것이 관계의 기본이자 가장 큰 어려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건 그분들과 계속 얼굴 보며 협력하며 나아가야 하는 일 자체가 회사생활의 큰 부분이니까요. 어느 회사로 이직을 하든 누구와 일하든 피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인 것이 사실입니다.


  내가 요청하지 않은 충고는 늘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의 말은 대부분 잔소리로 느껴지기 일쑤지요. B님의 말씀처럼 그분들은 그저 따분하고 뻔한 말만 해대는 늙은 꼰대들일뿐일까요? (그 말씀 덕에 나 역시 꼰대 같은 조언이 깃든 상담으로 B님의 목소리를 더 작아지게 한건 아닌가 몇 번이고 돌아보았습니다)



  40대가 된 지금의 제 위치는, 아래로는 2,30대 친구들이 있고 위로는 5,60대 어른들의 삶을 두루 볼 수 있는, 두 가지 입장을 동시에 느끼기도 하고, 그들로부터 같은 질타를 받을 수도 있는 중간자적 입장이지 않나 싶어요. 앞도 뒤도 옆도 볼 수 있게 되자, 잔소리꾼이 된 어른들의 마음을 이제는 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인터넷이나 백과사전처럼 필요한 때에 필요한 조언만을 해주고 사라지고 싶지만, 위험에 처한 혹은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순간의 젊은이들에게 (그들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 대부분이지만요) 저 역시 저도 모르는 사이 꼰대스런 말을 늘어놓기 일쑤입니다.


  상담을 마치고 B님께서 조금까지 낯선 이였던 내게 조금 더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해보셨다면 어땠을까, 란 생각이 들었어요. 반대로 나 역시 좀 더 마음을 열고 당신의 마음 끝까지 가닿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젊은 시절 나 역시 일만 열심히 하고 싶었지 특히 회사에서의 관계에서 오는 모든 자질구레한 어려움이 싫고 피하고만 싶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그러나 B님이 아예 남이 아니라, 같은 어려움을 공유한 듯 가깝게 느껴졌고,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기에(상담이 끝난 후에도 이렇게 메일을 보내고 싶을 만큼) 고민하고 생각하게 되었단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많은 상사들이, 사원들이 자신을 알아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분명 사원들에게 하나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지름길을 알려주기 위해, 더 나은 방식을 알려주기 위해 지적하고, 잔소리하고, 충고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다른 의도를 가진 상황도 있을 수 있겠지만요. 이들은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라고 잔뜩 긴장하며 지내기보단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열어두고 감정 없이 그들을 대하고 만나보세요. 그들로부터 득이 될 것은 내 것으로 취하고, 배우고, 필요 없는 점은 버리고, 살피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음이 열려 있다면,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 잠시 스쳐가는 아이와 엄마, 문득 읽은 광고 메일의 한 구절, 노래 가사, 농담 한 마디에서도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고 깨달음을 얻게 되기도 합니다. 상담 시간이 좀 더 주어졌다면 이런 제 맘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지 못해 제 마음이 불편했나 봐요. 오지랖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당신께서 그 오지랖이 바로 나에 대한 서툰 관심의 표현이었구나 생각해 준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


  B님께서 마음 편안하게, 평온한 마음으로 회사 생활하시면 좋겠습니다. 누구도 당신을 대신해 이 어려움을 해결해 줄 수도 살아줄 수도 없겠지요. 오직 나만이 살 수 있는 내 인생, 주어진 하루, 오늘 당신만의 여행이자 모험을 축복합니다. 당신이 잘 이겨내고 다시 웃을 수 있기를 또 뵐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숲섬타로 드림




* 숲섬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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