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섬타로} 일곱 번째, 지친 "나를 위한" 상담일지 2
TJ 씨가 유목민처럼 이동하는 팝업식당 '타임키친'을 운영한다는 소식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 집 옆동네의 빵집에서 이어가던 '타임키친'을 3월 말까지만 운영한다는 얘길 듣고 N과 친구 B와 함께 예약을 하고 찾아가 보았다. 비건식이라는 사실 하나만 알고 있었지, 어떤 음식이 나올지 어떤 시간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미리 본 타로카드는 그날의 식사가 모두의 감수성이 충만해지고 감각이 열리는 시간이 될 거란 사실을 암시해 주었다).
처음 나온 음식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따뜻한 차였다. 한라산의 여덟 가지 약초를 우린 순하고도 독특한 차의 맛과 향이 2월의 추위로 얼었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었다. 몹시 배가 고프다고 생각했는데 차를 마시는 동안 우리 모두는 숨을 좀 더 깊이 쉴 수 있었고, 마음이 느긋해져 음식을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그새 이야기와 추억의 물꼬가 터졌다. '타임 키친'이란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앉아 있자니 바깥세상과 분리되듯 조금씩 느려지는 우리들만의 시간과 마음이 오롯이 느껴졌다. '가시리'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N과 B의 인연이 표선의 중산간 마을 가시리에서 시작된 것처럼 알고 보니 주인장 TJ 씨와 제주와의 인연도 가시리에서 시작되었다. "13년 전 제주에 왔는데 **형이 가시리 산다는 생각이 난 거예요. 밤 10시쯤 버스에서 내려서 오뚜기슈퍼에 들렀어요. 어디서 잘 거냐고 물어보시는데 저는 그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타시텔레를 소개해주시더라고요. 가시리加時里, 시간을 더하는 마을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 식당 이름이 타임키친이에요. 이곳의 시간은 분명 다르게 흐르거든요."
전식 메뉴는 <두유발효크림소스를 얹은 시금치 샐러드>와 발효종 치아바타였다. 발효된 깊은 풍미가 느껴지는 진한 두유 소스와 시금치의 식감과 어울림이 훌륭했다. 메인 메뉴는 <그릴드 필라프 & 비건 로제크림 플레이트>였다. 다섯 가지 뿌리 채소와 제주 토종 콩(동부, 푸른독새기콩 등)의 채수로 지은 약밥 '필라프'와 캐슈크림이 더해진 토마토소스에 유기농 두부 스테이크, 콩고기와 처음 맛본 초록 고춧가루(소개글 출처:@time.kitchennn 인스타그램)가 곁들여져 나오는데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오는 건 물론이고 맛도 한입 한입이 새롭고 훌륭했다. 재료들이 모두 유기농이라 배가 불러오는 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식사의 마지막 메뉴는 운남성의 800년 된 나무에서 채취했다는 훌륭한 보이차였다. 한잔 한잔 우릴 때마다 또 다른 차를 마시는 것처럼 개성 있고도 조화로운 맛을 내는 차였다. 느긋하게 즐기고 가시라며 TJ는 계속 찻잔을 채워주었다. 옆테이블의 손님으로 함께 온 삽살개 쿠바와 우리의 BB도 긴 시간 동안 서로 놀다가 쉬다가 다시 인사하다가를 반복했다. 음식을 평소보다 조금 많이 먹은 편이었지만, 즐겁게 천천히 먹으며 이야기하고 나니 일어섰을 땐 몸도 기분도 가뿐해져 있었다. 오랜만에 바깥세상과 시간을 잊은 채 제대로 된 진짜 식사를 한 기분이 들었다.
<숨은 창의력을 깨우는 구체적인 방법>이란 유튜브 영상에서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는 창의력을 깨우는 첫 번째 방법으로, 나에게 필요한 요소들을 모아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로우컨셉Low concept 방식보다는 하나의 대주제나 질문에서 시작해 보는 하이컨셉High concept 방식이 알맞다고 소개했다.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세상에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내가 최초로 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로 세우고 지켜야 할 원칙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식당 타임키친에서의 특별했던 시간은 지금 내가 운영하는 <숲섬타로>와 나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타로를 보고 사람들에게 읽어주는 일이 즐거워서 시작했다. 상담은 작은 이벤트에 불과하지만 누군가의 실제적인 삶에 도움이 되고 싶었고, 이왕이면 상담하는 그 시간이 상대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되도록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난 세상에 처음 생겨난 타로리더의 모습이었다기보다는, 지금 현재 영업 중인 타로리더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거기에 맞춰 나를 갖추는 데에 열중했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 그저 많은 타로샵들이 하는 만큼의 능력을 갖추고, 그들보다 나아 보이려고 경쟁하는데 열을 올리고, 어느새 결과로 하루하루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모습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루틴들 중 많은 것들이 어쩐지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원하는 삶, 하루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시간이 얼마나 되나. 내가 먹고 사용하고 입고 쓰는 많은 물건들에 대해서도 생각할 겨를 없이 바쁘게 소비하기에만 급급했다. 깊이 있는 결과물을 바라면서 실제로는 그 일을 위해 두세 시간도 깊이 바라보거나 고민하거나 관계 맺은 적이 거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구나, 진짜 내 모습을 찾으려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그 모습으로 존재하려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란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확히 알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상담을 하며 나는 고객들에게 그런 말을 자주 해왔다.
"뭔가 잘못되지 않기 위해 행동하는 경우가 있어요. 회사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상사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사고 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눈치 보며 겨우겨우 일 하는 거지요. 반대로 정말 일 하기 위해 일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일을 통해 성과를 얻기 위해, 이 일을 해결해 나가며 내가 성장하기 위해, 내 커리어를 쌓고 진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매일 일 한다면 과연 삶은 어떻게 바뀔까요? 감정을 억누르고 눈치 보고 조바심 내는데도 너무나 큰 에너지가 들어요. 만약 그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일 하는데 온전히 사용한다면 회사 생활이 지금보다는 즐겁지 않을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요?"
적극성을 띠고 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되면 그 일은 이미 해 볼만한 일이 되며 고민의 시간은 오히려 경쾌하고 즐거운 시도나 도전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관점을 바꿔 원래의 내가 나의 중심에 설 때가 되었다. 내가 이고 지고 있는 이 많은 무거움은 처음부터 내가 가진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TJ 씨의 작은 부엌과 타임키친의 캐릭터 츄추를 응원한다. 그의 우리 먹거리와 토종씨앗에 대한 사랑, 채식과 환경보호에 대한 나름의 장기적인 목표와 프로젝트들, 좋은 사람들과의 부지런한 연대가 아름답다. 작은 공간에 나름의 색과 취향을 입히고 그곳에 와 자신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로 인해 자신의 요리가 완성되고 성장한다는 걸 깨닫고 있다는 TJ 씨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3월 말까지 두 번째 시즌을 마무리하고 다시 어디론가 길을 떠나 다음 시작을 하게 될 타임키친을 상상해 본다. 그즈음엔 나 역시 나만의 색과 향을 가진 <숲섬타로>를 운영하고 있길 바란다. 지금도 그런 날을 향해 가까이 가고 있는 중일 거라 믿는다. 이 글은 아주 오랜만에 하루의 시간을 들여 천천히 작성했다. 나만의 시간과 속도는 실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만치 느린 편에 속한다. 그걸 떠올리게 하고 잊지 않게 해 준 타임키친의 마법 같은 시간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 타임키친 (출처 인스타그램 : @TIME.KITCHENNN )
타임키친은 제주 마을을 정주 유목하며 운영되는 채식 팝업식당입니다. 여행하는 식당이랄까요?
타임키친은 '시간을 더하는 마을 부엌'이란 뜻으로 몸과 마을 지구의 시간을 더하는 식탁을 차립니다.
'유연한 채식, 비건 Fun'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제주 마을에서 난 '토종작물'과 제철채소, 국경 밖 여러 향신료를 활용해 향기 나는 밥을 짓고 여러 단계의 채식 음식을 소개합니다.
식사는 예약제, 시즌2 운영은 3월 31일까지 영업을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