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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섬타로 Mar 13. 2024

걷는 사람

{숲섬타로} 여덟 번째, 걷고 있는 당신에게 의미 있는 상담일지


  혼곤하고 느린, 몽롱한 꿈을 오랜만에 꾸었다. 아픈 날의 꿈은 늘 지난번 꿈의 연속이었는데, 꿈에서는 언제나 그랬듯 걷고 있었다. 무슨 항의 포구에서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하철 입구를 닮은 지하도를 빠져나와 지도를 살펴보니 내가 있는 곳이 육지와 뚝 떨어진 섬 가파도의 한 구석이라고 했다. 꿈을 꾸는 내내 바닷속의 지하보도를 닮은 통로를 통해 몇십 킬로미터를 걸었나 보다. 땀이 흠뻑 났고 힘들기도 했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쉽게 돌아서지 못했다. 이 상쾌한 바람을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하루 종일 걷게 된 일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고, 그때 남동생과 나는 서울의 외가 친척들 집에 우리끼리 머물고 있었다. 이모집 막내가 떼를 쓰고 문을 열어주지 않자, 나보다 한 살 어렸던 사촌 H가 "그래? 그럼 우린 우리 집에 간다." 하며 막내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모두 다섯 명)을 데리고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 부천시 오정동까지 걸어가는 모험을 무작정 떠난 것이다. 사촌 H는 눈썰미도 좋았다. 차만 타고 지나던 길인데도 용케 길도 잃지 않고 잘도 찾아갔다. 우리 중 누군가의 주머니에 천 원이 있었다. 중간에 작은 구멍가게에서 천 원짜리 콜라 1.5리터를 한 병 사서 나눠 마시고 우리는 또 걸었다. 오전 9시 넘어 출발했고, 우리가 부천 외삼촌 집에 도착한 건 해가 지고 나서였다. 누군가의 슬리퍼는 뚝 끊어져있었고, 우리 모두는 아프리카 난민처럼 여름빛에 그을려 새까맣게 타버렸다. 그날 저녁 어른들과 한강에 가서 치킨을 먹었다. 그때 찍은 사진이 아직도 있다. 그렇게 걸어온 사건을 외갓집 식구들은 두고두고 이야기했다. 그때부터 아프기만 하면 그 걷기 여행의 하이라이트, 고속도로 갓길을 걷다가 이제 길을 건너야 했던 순간이 꿈속에 등장했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차들을 피해 길을 건너려던 순간이 자주 꿈속에 나타났고 꿈은 반복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어쩌면 다른 차원에서 오랫동안 걷기를 선택해 끝없이 걷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양자역학을 간단히 정리하면,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루는 물질을 나누고 나누면 원자라는 최소의 물질에 도달하는데, 이 안에는 원자핵이 있어 그 안에 중성자와 양성자가 있고, 그 주변을 전자가 돌고 있다는 전제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원자핵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궤도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어서 어느 장소에 있을지는 확률로 짐작할 뿐이다. (중략) 전자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은 물질의 상태에 여러 가능성이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무한한 가능성의 확률 중에 우리가 전자를 관측하는 순간 하나의 상태로 결정된다는 것. 비물질적이던 가능성이 물질화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무수한 가능성만이 존재할 뿐 아무도 그 상태를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다.
  양자역학적인 세계에서 고양이는 내가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살아있기도 하고 죽어있기도 한 상태가 공존하고 있다. 고양이는 운명과 상관없이 '죽었거나', '살았거나' 두 개의 차원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 이는, 원자의 궤도를 돌고 있는 전자의 '확률성'에서 기인한다. 뚜껑을 열어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만이 현실이다. 운명이란 정해진 것이 아니고 그저 뚜껑을 연 현실만이 있을 뿐이다. 중첩된 두 개의 차원에서 살던 고양이는 상자의 뚜껑을 여는 동시에 삶과 죽음의 차원 중 하나로 현실이 되는 것이다.

  타로 한 장을 선택하기 전까지의 세계는 과거 속에 갇혀 있는 즉, 수많은 가능성이 중첩된 다차원의 세계다. 그러다 카드를 뽑아 여는 순간 가능성으로 열려 있던 미래가 3차원의 현실로 들어오고, 내가 존재할 우주를 선택하는 것이다. 현재는 정해져 있지만, 미래란 아직 물질화되지 않은 무한히 가능한 우주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 <타로 스퀘어> 민혜련 지음, 의미와재미(2020) 181~187쪽에서 발췌


 

  타로를 곁에 두고 펼치다 보니 참 많은 것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확장된다. 특히 타로를 만든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알고 싶다. 그들이 전하고 싶어 한 무의식, 혹은 상징의 원형들과 삶의 비밀들을 얼마나 잘 복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인생과 세상을 보는 시선의 깊이가 달라지고, 마음이 열린다는 점에는 크게 감사한다. 인간이 가고 있는 영적인 세계의 여정을 상징으로 나타낸 타로의 힘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크게 느껴진다는 점도 신비롭다. 수많은 가능성이 중첩된 다차원의 미래를 상상하다 보면 점점 내 관점과 행동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둘 수 있게 된다는 점도 신기하다.



21번째 메이저 카드 The World. 끝은 시작점 없이 만들어질 수 없으며 시작점 역시 끝이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길을 따라 타로도, 수많은 것들처럼 코로나도 전파되었을 것이다. 코로나 역시 최초의 발원지가 있었고, 수많은 인간들의 몸을 거치고 거쳐 결국 내게까지 왔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구경만 하던 내가 이제야 진정한 삶 속에 풍덩 뛰어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특히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지난 여행으로부터 이어진 여행이라는 특별한 차원의 시공간을 이어 살고 있다는 느낌에 빠져든다. 아플 때의 감각, 끔찍한 피로와 아득히 몸이 꺼지는 감각과 약에 취했을 때 느껴지는 혼곤한 몽롱함이 어려서부터 경험해 온 아픈 시간의 차원으로 나를 데려간다는 느낌도 든다. 언젠가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 일곱 살의 나와 열두 살의 나와 열여섯의 내가 서로의 손을 잡고 부천시 오정동을 지나, 대전시 대덕구 오정동을 지나, 김제시 오정동까지 씩씩하게 끝까지 무사히 걸어가는 그런 시. 끝이 없이 지속될 것 같던 많은 일들이 결국은 끝이 났지만, 이 꿈속에서만은 달랐다. 무한히 즐겁고, 무한히 뜨겁고, 그러나 웃으며 무한을 향해 걷고 있는 세계, 난 분명 걷는 세계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차원을 통해 걷고 있을 것 같다.




  * 그동안 잘 버텨왔는데 처음으로 코로나에 걸려 확진되었네요. 4일째 꼼짝없이 쉬고 있습니다. 오늘 연재는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써보았습니다. 모두 감기, 독감, 코로나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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