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섬타로 Mar 20. 2024

"당신이 찾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

{숲섬타로} 아홉 번째 상담일지


 

  작은 명함을 몇 장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루미의 시구절 "당신이 찾는 것이 당신을 찾고 있다"를 적어 넣었다. 누군가 타로에 관심 있어 보이면 건네주려고. 작은 책갈피에 간단한 소개글을 넣는 일은 의외로 즐거웠다. 회복되어 가는 동안 어느새 따뜻한 바람이 솔솔 부는 봄이 되었다. 두 번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때마다 가슴이 뿌듯해지고 온몸이 따뜻하게 충전된 기분이 든다. 이게 몇 번째 제대로 맞는 봄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겪은 봄 중 가장 느리게 다가오는 봄이다. 봄이 깊어지는 만큼 내 속도 좀 깊어졌으면! 올해는 구석구석 이 봄을 느껴보고 싶다.




 

  봄날, 고요한 일상에 어울리는 음악 한 곡을 소개한다.

  Quiet your mind - Vontmer


  인스타그램에서 신고전주의 작곡가 Vontmer의 계정을 찾아보니, 오래된 옛날 방식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련한 풍금을 닮은 그의 피아노 소리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심지어 건반이 눌러지는 투박한 소리마저 들리는 진짜 아날로그 감성이다. 이 음악을 있는 줄도 모르게 틀어놓고 조용히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싶다. 그리고 나가서 쏟아지는 햇살 속을 걷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XoB6tKeYgjA





  올봄 낭독하기에 좋은 시집 한 권도 소개한다.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 고명재



  지난겨울 내내 천천히 이 노란 시집을 읽고 덮었다. 겨울에 꼭 맞는 시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좋은 시집이란 역시 계절 같은 걸 타는 건 아닌가 보다.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는 부작용이 있을만치 심각하게 좋다. 아직도 기침이 콜록콜록 나오지만, 나는 기꺼이 몇 번이고 이 시들을 소리 내어 읽기를 원한다. 낭독 속에서 시심은 살아나고 내 속의 시심 또한 피어난다. 시는 반드시 소리로 만나져야 하는 생명체와 같다. 활자로 있을 땐 그저 2차원에 지나지 않는 평범한 문장들에 불과하지만, 낭독하는 자와 듣는 이의 감성까지 더해지면 아름다운 홀로그램처럼 새로운 차원의 세상으로 펼쳐진다.


"누가 울 때 그는 캄캄한 이국異國입니다
 누가 울 때 살은 벗겨집니다
 누가 울 때 그 사람은 꽃이 됩니다
 꽃다발을 가슴에 안아야겠지요" 

- 고명재 시인의 시 '그런 나라에서는 오렌지가 잘 익을 것이다' 중에서



정원 구석에 핀 이름 모를 꽃, 키가 12cm 정도라 납작 엎드려야 제대로 보이고 향도 맡을 수 있다.



  올봄 나에게 가장 뜨거운 이슈 : 가드닝


  제주의 많은 집들은 매번 올라오는 풀을 차단하기 위해 마당에 회색 시멘트를 부어둔다. 몇 해 살아보니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텃밭을 가꾸며 전혀 약을 치지 않았더니, 3년째 되니 메뚜기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마귀와 개구리들이 살고, 새들이 브로콜리 잎사귀를 먹으러 아침마다 오게 되었다. 벌레를 잡는 일도 일이지만, 이제는 잔디 가꾸고 잡풀(이라 여겨지는 예쁜 풀들)을 관리하는 일에 더 재미가 느껴진다. 다른 나라 여행을 하며 언젠가 가드닝 하며 사는 게 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살아보니, 그것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늘 나는 시간에 쫓기기만 하고 집안일과 의무들에 허덕였다. 마음속 욕심을 버리고,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보니 올해엔 가드닝을 제대로 시작해보고 싶다. 언제나 치워도 치워도 더러워지고 표도 안나는 집안일이라는 생각에 몸과 마음을 무겁게 하며 살아왔던 걸 깨닫게 된다. 내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원래 더럽고 무질서한 것이 정상이다. 내가 움직이고 정리 정돈하면 그제야 질서가 생기는 일이고, 그 자체로 힐링이 되는 것이다. 


  틈날 때 부지런히 풀을 뽑고 있다. 올라오는 새싹들은 모두 예쁘다. 그러나 이 지구상에 작지만 한 곳, 내가 살아가는 터전만이라도 질서 있게,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몇 년 전 몇 번인가 쓰레기를 줍기 위해 산책을 나서던 생각을 해보니, 할 수 있을 때 조금씩이라도 할 일들을 해내고 싶다. 살림이스트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싶다. 아직은 지구가 그래도 견디어주고 있는 지금, 지구에게 편지라도 쓰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고 싶다.





  살아가는 일은 더욱 무겁고 어려워진다. 물가는 끝을 모르고 치솟는다. 이쯤 되면 암행어사가 출두해야 되지 않나 싶은 요즘이다. 조금이라도 가볍게 살고 싶다. 하루하루 좀 더 많이 좀 더 크게 내려놓고 가벼워지고 싶다. 모두에게 각자의 휴식, 기쁨과 보람이 되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우린 그걸 나눠야 한다. 이 힘겨운 시대를 잘 건너기 위해 반드시 손잡아야 한다. 오늘,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나는 궁금하다. 그걸 알기 위해 우린 서로의 글을 눈여겨 읽고 있는 건지 모른다.


이전 11화 걷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