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섬타로} 지구 위에 두 발로 선 나와 당신을 위한, 열 번째 상담일지
3월 26일 일요일은 보름 전날이었다. 이동하는 팝업식당인 <타임키친>에서 {{마녀들의 Moon Weekend×입춘마켓}} 행사가 있었다. 그동안 많은 파티나 행사에 손님으로 놀러는 가보았지만 타임키친의 셰프 TJ님의 도우미로 참여하게 된 건 처음이었다. 몇 년 만의 나들이였기에 가슴이 두근두근 설렜다. 대체 어떤 분들을 만나게 될까 궁금했다. 봄마켓이 열리는 동안 점심메뉴인 템페샌드위치와 캐슈너트 수프, 저녁의 특별한 빠에야 메뉴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게 내가 할 일이었다.
타인의 주방에 들어간다는 건 설레는 일이지만, 동시에 무척 어려운 일이다. 손에 익지 않은 낯선 도구들과 물건들의 위치와 새로운 동선들. 그래도 생각보다 훨씬 편안한 부엌이었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원래 이 주방의 주인(타임키친은 잠시 운영하는 곳이다. 원래 이 장소는 '또또시'라는 하효동의 빵집이다)을 생각하게 하는 장소였다. 대부분의 일은 재료 손질과 칼질, 자잘한 설거지였다. 먹는 이에겐 간단해 보이는 한 접시의 식사에 불과하지만, TJ님이 선호하는 음식은 신선하고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져 풍성한 맛을 내는 방식의 음식인 듯했다.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은 모두가 좋아한다. 한입 한입이 놀라움과 감탄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편안한 마음으로 일을 도왔다. 마치 동생네 집에 온 것처럼, 친구네 주방에서 식사준비를 돕고 있는 것처럼. 이상스러운 고요함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느리고 지나치게 꼼꼼한 면이 있는 나 때문에 셰프인 TJ님이 종일 답답했겠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어딘가에 일하러 가서 그렇게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할 일들을 해낸 건 나 역시 처음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다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 분에 넘치게 바쁘게 빠르게 움직여왔던 나였기에 이런 변화는 놀라운 것이었다. 일 하는 내내 행복한 기분과 여유와 풍요로운 에너지를 느꼈다. 특별하고도 감사한 시간이었다.
살아오면서 내가 기억하는 가장 맛있었던 식사는 친구 B가 직접 가져온 잣으로 끓여준 잣죽이었다. "요즘 내 이름이 '박잣가'(잣을 까는 일에 종일 몰두한다는 뜻)야."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모두 둘러앉아 잣 까기가 시작되었다. 잣을 큰 두유상자에 가득 들고 왔는데 단단한 껍질을 까는 일은 꽤 시간이 걸리고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B는 그 많은 잣을 차근차근 칼로 다지기 시작했다. 난 나보다 느리게 칼질하는 이를 처음 보았는데, 끝까지 결코 빨라지지 않는 그 몸가짐이 너무나 특별해 보였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성스러운 칼질이 새겨지고 다져진 잣과 햅쌀로 오래 뭉근히 끓인 잣죽은 평생에 다시없을 특별한 고소함과 품위를 가진 맛을 선사했다.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잣을 깔 때부터 설거지하는 순간까지, 집중과 정성을 다한 B의 마음과 손맛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모임을 계속 나갈지 말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아이가 태어나면 우린 무조건 기뻐하기만 하지만, 그 순간 이미 나이 들고 노쇠해지는 미래도 함께 태어나듯이, 누구도 예외 없이 죽음이 예정되어 있듯이, 사람의 인연에도 생로병사가 있어요. 아무리 완벽하고 좋은 인연도 어느 한쪽이 죽게 됨으로써 끝나게 되잖아요. 중간에 헤어지거나 잘못된다하더라도 그건 Y님의 잘못도, 신의 실수도, 실패도 아니에요. 그저 자연스러운 현상의 일부일 뿐이에요. 그 사실을 Y님께서 먼저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어요.
Y님이 모임 속 그분에 대해 말씀하시는 그 안에 이미 문제와 답이 있어요. 그분은 (Y님과 다르게) 성격도 좋아 보이고 밝아 보이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해 보인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판단의 기준은 Y님 자체의 기준이 아니잖아요. 모임 속 그 분과 Y님에 대해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성격의 기준에 맞춰 보고 있고 평가하고 있으시잖아요. Y님처럼 내향적이고, 조용하고, 깊이 이해하려고 애쓴다고 해서 나쁜 성격인 게 아니잖아요?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게 나 자신에게 있어야 해요. 그런 기준에서 바깥을 바라볼 때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자신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요.
- {숲섬타로}의 상담일지 中에서
종일 마켓에 오신 많은 좋은 분들을 스치고 만났다. 맛있게 먹는 모습과 정말 맛있다는 반응이 가장 흐뭇했고, 자신들이 만들었거나, 가치 있게 생각하고 선택해 온 물건을 판매하는 활기찬 모습 또한 보기 좋았다. 10년이 넘게 원석을 다듬어 예쁜 액세서리를 만들어오신 타라스와티 님께 개성 있어 보이는 초록+검은색 원석의 펜듈럼을 하나 구입했다. 실은 거기 놓인 멋지고 아름다운 하나하나들을 할 수만 있다면 다 사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더피스 타로카드를 공부하는 모임을 갖고 계신 제주시의 마녀님들과의 대화도 즐거웠다. 일상의 새로운 발견, 작은 깨달음을 나누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흠뻑 빠져들어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하게 되었다. 마켓이 열리는 동안 황홀한 음악으로 모두를 즐겁게 해 준 DJ님도 멋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오늘 생일이라고 해서 더 기뻤다. 주방에서 오래 있느라 긴 시간 함께 하진 못했지만, 이 좋은 많은 분들 모두 어디선가 다시 뵐 수 있기를!
저녁에는 춤+음악 공연과 TJ님의 칼리여신에게 바치는 퍼포먼스가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모두를 위한 원팬 빠에야는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다. 칼을 가져 나와 멋진 춤을 추다가 동백 꽃잎을 흩날리며 마무리된 TJ님의 공연 후 빠에야를 나눠 먹었는데, 우와, 매콤하고도 상큼한 토마토소스와 어우러진 갖은 구운 야채들과 콩류, 정말 좋은 쌀로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 간혹 섞여있는 동백꽃잎조차 특별히 맛있었다. 모두는 그저 감탄하며 먹었다. 이제 하효동에서의 타임키친 시즌2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장소를 찾아갈 타임키친의 마무리 행사다웠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건 그런 것이다. 음식이 정말 맛있다는 인사에 TJ님은 늘 "이걸 저 혼자 어떻게 해요?! 이 좋은 재료를 농사지어주신 수많은 농부들의 손길과 더 많은 정성들이 모여 만들어진 거지요"라는 대답이 들을 때마다 좋았다. 늘 음식을 하며 난 내가 음식 하는데 드는 수고만을 먼저 생각해 왔던 것 같은데, 역시 고수는 달라! 파티가 끝날 무렵 한분 한분 찾아다니며 인사를 건네고 가시던 어여쁜 님들의 모습이 내내 마음속에 남아 기쁨과 설렘을 준다. 이렇게 서로 마주하고 연대하며 성장하는 아름다운 마녀님들 아니 어여쁜 미녀님들, 만나서 정말 반갑고 또 감사했다. 그러고 나니 봄내음과 봄볕이 완연하다. 마음부터 몸까지 완전한 봄이다.
요즘은 가만히 서 있으면, 두 발의 전체로 균형을 맞추어 반듯하게 서 있는 나 자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바깥에, 사람들의 시선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곳에 기준을 두고 있자니 끊임없이 잘못된 것만 같고, 혹은 곧 뭔가 잘못할 것만 같고, 어딘가 모자라고 부족한 나만을 발견하며 불평하며 오래 살았다. 그러나 나란 존재란 그렇게 있는 기준에 맞춰가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내 안의 목소리, 나의 취향, 나의 속도대로 움직일 때, 온전히 나 자신으로 행복할 수 있다. 온전하게 존재하는 서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마주할 때, 우리는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작은 부엌 '타임키친'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운다. 파티에 기꺼이 초대해 준 TJ님께 두 손 모아 감사드린다.
* 타임키친 소개
타임키친은 제주 마을을 정주 유목하며 운영되는 채식 팝업식당입니다. 여행하는 식당이랄까요?
타임키친은 '시간을 더하는 마을 부엌'이란 뜻으로 몸과 마을 지구의 시간을 더하는 식탁을 차립니다.
'유연한 채식, 비건 Fun'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제주 마을에서 난 '토종작물'과 제철채소, 국경 밖 여러 향신료를 활용해 향기 나는 밥을 짓고 여러 단계의 채식 음식을 소개합니다.
식사는 예약제, 시즌2 운영은 3월 31일까지 영업을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출처 타임키친 인스타그램 : @TIME.KITCHENN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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