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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꼬르륵 Feb 21. 2024

선배님이 해고를 당했다 2

두 달 뒤 회사가 문을 닫습니다.

  

신호음이 들리고, 선배님이 곧 전화를 받으셨다.      


“어!”      


전화기 너머 선배님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담담하고 힘이 넘쳤다.      


“....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전화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렵게 꺼낸 나의 말에 본부장님은 오히려 가벼운 목소리로 답하셨다.     


“뭐, 나는 나의 길을 가고, 후배들은 후배들의 길을 가는 거지”     


그리고 O 전 본부장님은 웃음기 띤 목소리로 답하셨다.      


“나는 잘 살 거야. ㅎ”     


“....”     


오히려 정처를 잃고 방황하는 나의 다음 말을 배려하시듯 본부장님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가셨다.     


“아니 내가 카톡에도 썼지만 진짜 힘이 많이 됐고, 특히 회의 때마다 내가 대 놓고 못 하는 말을 해줘서 고맙더라고. 그래서 내가 O 부장한테 꼬르륵이 좀 변한 것 같다고 그랬더니 O 부장이 그러더라고. 원래 꼬르륵이 훌륭했다고”      


나도 전해 들은 일화였다. 사실 O 부장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야, O 본부장이 네가 변한 것 같다(좋은 쪽으로)고 그러기에 내가 그랬다. 걔 원래 그랬어.”     


그 순간에도 O 전 본부장님은 “걔 원래 그랬어”라는 라이브한 표현을 “꼬르륵은 원래 훌륭했어”라고 순화해 전달하시고 있었다. 다시 한번 뜨거운 뭔가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내가 눈물을 보이는 순간 그분의 상황이 더 서글퍼질 것 같았다. 나는 애써 웃었다. 그 뒤로 무슨 이야기가 더 오갔는지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감정의 소용돌이를 감추기 위해 서둘러 전한 인사였다는 것, 그리고 O 전 본부장님께 끝까지 나의 말을 다 들으시고, 나보다 나중에 끊으셨다는 것만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그 뒤로 회사 동료를 통해 간간이 그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음껏 아침잠을 잘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더라. 낮술 하면서 무슨 프로 방송 들으시다가 문자를 보내셨더라. 등등. 그러다 한 동료가 내게 말했다.      


“아, PD님 이야기도 하시더라고요. 그날 전화하셨다고. 그날 전화하신 분이 PD님밖에 없었대요” 

....     


그분의 성정상, 그건 내게 고마움을 표현하신 거였다.      


언젠가 을지훈련을 하는 날(그 당시 회사는 조를 짜서 야근하며 훈련에 참여했었다.) 사무실에 직원들이 모여 다 같이 통닭을 뜯으며 야근할 때 그분이 하신 말이 있었다. 직장생활은 마라톤 같다고. 지금은 저 사람이 앞서는 것 같아도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거라고. 아직 모른다고. 신입 시절, 어쩐지 맞지 않는 나사를 돌리듯 다른 동료 비해 내가 적응이 더딘 것 같아 답답하던 차에 그 말이 위로가 됐던 게 기억난다. 그 뒤로 내게 “피비 게이츠를 닮았다”라고 하셔서 내가 ‘저분이 콜라에 취했나. 그만 드셔야 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것도. ㅎ

     

그분의 말대로라면 나는 마라톤 중반부쯤 오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분은 ‘해고’로 마라톤을 끝낸 것일까? 아니면 아직 다른 결말이 있는 것일까? 렇다면 분의  엔딩에 30년 넘는 그분의 직장생활에 대한 존중이 조금이라도 보태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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