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다음에

by 무랑

다음, 다음에. 다음엔 꼭..


이 단어를 좋아하진 않았다. 바라고 원하는 게 있어도 늘 다음으로 미뤄야 하고 그 말로 합리화되는 것이 싫었다. 어느덧 익숙해져버린 이 단어는 점점 스며들어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도 다음으로 미뤄왔던 것 같다.


이 단어는 내게 상처로 남았던 적도 있었다. 나는 늘 좋아하는 것을 적을 때면 여행을 빼놓지 않았다. 실제로 여행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해외여행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언니와 처음 태국에 가본 적이 다인데도 나는 늘 여행을 갈망했다. 기회만 된다면 시간만, 여유만 된다면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새로운 곳이 주는 풍경과 특유의 그곳만의 분위기가 좋았다. 어릴 때 부모님은 일이 바빴고 가족여행을 간 기억이 거의 없다. 다음에, 다음에 가자란 말을 자주 들었다.


애인을 만나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여행이 가고 싶다는 나의 말에 돌아온 대답은 '다음에'였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음에 가자. 일정을 세웠다가 취소된 적도 있고 기어고 여행을 가지 못하고 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겨울, 혼자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 날, 엄마는 다음에 가라고 말했지만, 나는 완강한 고집을 세우며 길을 떠났다. 날씨가 어느 정도 풀릴 때 가라는 말이 수긍이 갈 정도였지만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 속에서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 날의 나는 자신에게 한 약속을 더는 미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나는 그런 완강한 고집을 수차례 세우고 행동으로 옮긴 덕분인지 다음을 받아들이기 훨씬 수월해진 것 같다. 그렇지만 어떤 일을 할 때 다음이란 말을 핑계 삼지 않으려 한다. 특히나 나 자신과 한 약속이라면 더욱.


헤어진 애인은 다음에 꼭 그러겠다고 말했었다. 다음엔 연락을 더 잘하겠다고, 다음엔 누구보다 내편이 되어주겠다고. 앞으로는 꼭 그러겠다고.


누군가의 다음을 기다리기보다 나는 다음에 해줄 일들을 선물하기로 했다. 지금. 더 늦기 전에 말이다. 마음을 더 다치지 않으려고 내가 내 편이 되어주기위해 이별을 선택했다 나는 또다시.

언젠가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처럼, 바로 오늘 나를 조금이라도 웃게 해 줄 무언가를 찾고 행동해 본다. (눈물이 위로와 도움이 되는 시간들도 물론 있지만)

글쓰기가 전혀 집중되지 않을 것 같았지만, 한걸음 한걸음 옮겨 집 근처 무인카페에 왔고 초콜릿 쿠키를 샀고 책을 읽고 끄적이다가 노트북을 켰다. 한 문장을 적기 시작하니 글은 써졌고, 미소 짓는 순간이 있었다. 다음으로 미루지 않은 오늘의 나에게 고맙다.


함께 하는 타닥이들에게도 오늘 저녁이 따듯하고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을 보내며...


*타탁이들 : 노트북 타닥 거리는 소리를 빗대어 글 쓰는 사람들을 애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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