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ㅠㅠㅛㅛ하게 하는 것들 - 차가운 것들
언젠가 사진 한 장을 보았다. 투명한 문이 달린 업소용 쇼케이스 냉장고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 냉장고의 유리문 안쪽에서는 본디 아이스크림 케이크였을 검질긴 곤죽들이 온통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들이 전면을 향해 굼지럭 기어오던 중에 용해되기라도 한 듯했다. 순전한 액체라기에는 과히 끈적해 보이고, 아직 고체라기에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진 후였다.
사진에는 짧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주력으로 하는 모 프랜차이즈 업체의 한 매장에서 마감조 직원이 냉장고 전원을 끄고 퇴근한 뒤의 상황이라고 했다. 설명이 사실이라면, 어쩌다 그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떠나기 전 냉장고의 전원을 내렸을까. 쉬이 헤아릴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그 자신에게도 불가해한 일, 의식의 지평 너머에서 동기를 찾을 수 있을 행위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의 사진을 본 후 나는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처럼 슬펐다. 그 떨어진 아이스크림이 형성한 웅덩이에 빠져 버린, 개미 새끼 한 마리의 맥없는 자맥질처럼 슬펐다. 늦은 밤 혼자서 몸을 떨고 있는 냉장고처럼 슬펐다. 그러다가 아무도 모르는 새 전력이 차단되어, 더는 몸조차 떨지 못하는 냉장고의 배 속에서 분열하는 대장균의 지수적 증식처럼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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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는 미련이 가득하다. 길게 보았을 때, 지금 먹지 않은 음식은 결국 먹지 못하게 되고 만다.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둔다는 것은 당장에 먹을 생각도 없으면서 그것을 먹지 못하게 되는 순간을 최대한으로 늦춰 보겠다는 발버둥이다. 하직의 때는 오고야 마는데, 냉장고 속에서도 느릴지언정 시간은 흐를 수밖에 없는데, 야속한 시간이나마 얼려두고 싶은 것이다.
육조시대의 학자 안지추가 쓴 『안씨가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楊朱之侶,世謂冷腸。”──양주楊朱의 무리는 세간에서 이르되 냉장冷腸하다. 직역하자면 창자가 차가운 사람들, 속이 차가운 사람들이라는 것으로 박정하고 쌀쌀맞다는 뜻의 비유다.
분명 냉장고는 문자적으로 냉장冷腸하다. 겉이 뜨거워질 수는 있으나 그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는 상태에서 냉장고의 속은 차가워야 한다(물론 고기로 된 몸을 지니지 못한 냉장고에 진짜 창자는 없다는 점에서 이는 여전히 비유적인 말이지만, 존재와 온전히 일치하는 언어가 어디 있던가). 배 속이 냉랭한 냉장고는 그 뱃속까지 냉담할까. 그럴 성싶지는 않다. 성정이 냉담한 이는 미련을 성에처럼 방치 않는 까닭이다.
아마 냉장고는 미련이 많은 만큼 촌스러운 잔정도 많은 성격일 것이다──적당한 간격이 유지될 때는 그 따스한 마음이 보기 좋지만 관계가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면 제멋대로 애착심을 쏟아부음으로써 남을 지치게 하는, 어느 악의 없고 피곤한 유형의 사람들처럼. 냉장고들이나 그런 사람들이나 툭하면 울음을 터뜨릴 듯 몸을 떨어대며, 특히 야밤에 어떻게든 타인의 관심을 받아내려 애쓴다.
나는 밤에 아이스크림 냉장고의 전원을 꺼 버린 직원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디 한번, 홀로 어둠 속에서 원 없이 질척질척 녹아 보라지.
구질구질하게 구느니 냉장하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 낫다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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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 보관한 식품에도 유통 기한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무릇 지켜야 할 고독이 있다. 친소간에 타인이라면 함부로 범하지 말아야 할 고독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의 고독을 범했다는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 제 몫의 고독을 스스로 감내하지 못할 정도로 유약하기에 남의 고독에 들어오려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반성의 능력이 없다.
위의 고독은 한자로 孤獨이고, 고독蠱毒이라는 단어가 또 있다. “뱀, 지네, 두꺼비 따위의 독. 또는 이 독이 들어 있는 음식을 먹고 생긴 병”(『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의미의 낱말이다. 국어사전의 풀이는 그러하지만 다른 뜻도 있다. 당나라 『통전』에는 “爲蠱毒者,男女皆斬,焚其家。”라는 강경한 조문이 나온다. 고독을 하는 자는 남녀 모두 참하고 그 집은 불태우라는 말이다. 이 경우 고독은 무고巫蠱라고도 하는 저주의 의식이다. 뱀이나 두꺼비, 여러 독 있는 벌레 등을 한 그릇에 모아 서로 싸우게 한 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을 쓰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한다.
『강희자전』은 『좌전』을 인용하며 蠱를 이렇게 풀이한다. “皿,器也,器受蟲害者爲蠱。”──皿은 그릇이다. 그릇에 벌레가 생겨 해롭게 된 것이 蠱가 된다. 과연 蠱은 皿 위로 蟲이 놓인 생김새다. 그릇 위에 벌레가 세 마리나 꿈틀거리고 있다.
몇 주 전, 고작 하루 방치한 수박 껍질에 초파리가 끓었다. 그들은 플라스틱 접시 위를 바삐 기어 다녔고 날아오르더라도 접시에서 멀리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질색하며 수박 껍질을 버리러 나갔다. 수거함의 뚜껑이 닫히는 순간까지도 초파리들은 수박 껍질에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냉장고의 냉동칸에 음식물쓰레기를 보관하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냉동칸에 다른 것은 두지 않고 오직 음식물쓰레기만 넣는다더라도, 본시 먹을 것을 간직하기 위해 만들어진 냉장고에 음식물쓰레기가 들락거린다는 일이 나로서는 꺼림칙했다.
음식물쓰레기를 모아 비닐로 싸서 냉동칸에 둔다면 결코 벌레가 생기지 않을까? 냉장고를 만드는 모 전자 회사의 서비스 센터 홈페이지 게시물을 열람했다. 추운 냉장고 안에서는 통상 벌레가 살 수 없지만 간혹 외부에서 벌레가 유입되거나 청과류에 묻어 있던 곤충의 알이 부화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먹든 버리든, 들인 것을 제때 치우지 않는 게으름이나 무기력에 불운마저 겹친다면 냉장고도 얼마든지 고독의 항아리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냉장고 속의 고독──반드시 벌레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냉동칸에 음식물쓰레기를 보관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제는 알겠다. 남의 냉동칸을 불쑥 열어보는 사람은 없다(제발, 없기를 바란다). 나의 고독은 남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나 홀로 품는 것이다.
둘 다 숨기긴 해야 하지만,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미련 대신 고독을 냉장하겠다. 더 확실하게는, 나의 고독을 남몰래 냉동해 놓겠다. 세게 한 대 치면 산산이 부서지도록, 꽝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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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의아한 것은, 때늦은 미련처럼 녹아내린 아이스크림 케이크로 범벅이 된 냉장고의 사진을 보고 내가 슬퍼한 일이다. 주체스러운 타자의 질척임에 어찌 나는 서글픔을 느꼈던 것일까. 실은 배가 고픈 것도 아니면서 한밤중 허하게 냉장고 문을 열어보는 이처럼, 나는 마음속을 헤집어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발붙여 사는 땅이 부풀어 오른 바다에 끌려 들어가는 일을 감수하며 온실가스를 한껏 내뿜을 정도로, 한갓 먹을 것이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조차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참으로 미련 많은 것이 인간이구나.
고백하건대, 흔히 사회정치적 의제로 부상하는 환경보호에 나는 큰 관심이 없다. 상술하자면 환경보호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목청껏 외쳐대는 이들과의 정서적 동류항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러한 유형의 인간들과 나는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달리 말해 나는 냉장고의 냉매로 수소불화탄소가 쓰인다는 점에는 다소 무심하다. 나는 그저 냉장고가 발명되기 전까지, 그리고 냉장고가 발명된 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음식이 상하는 것을 늦추기 위해 전전긍긍했을지를 생각하면 속상할 뿐이다.
음식을 냉장하는 일이 생존의 문제, 생활의 방편이라고만 취급할 수는 없다. 심지어 먹을 수 없게 된 음식마저 내버리지 않고, 몇 년씩 냉장고가 가득 찬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러하다. 선행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미련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미련을 “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데가 남아 있는 마음”이라고 풀이하고 있으므로,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음식을 냉장하는 일이라고 기실 미련이 아닌 것도 아니다.
실은 냉장고의 속보다 인간의 뱃속에 미련이 더 그득하다. 태어난 순간부터 감각 가능한 세계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는 점을 알아 버리기 때문이다. 유통기한이 1만 년 남은 통조림이 있다고 한들, 1만 년 후에 그것은 유통 기한이 지난 통조림이 되어버리고 만다. 냉장고에 꽁꽁 보관해둔들 1만 년씩 가는 무언가도 아마 거의 없을 테다. 하물며 1만 년 동안 전원이 켜져 있는 냉장고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미련 많은 인간을 생각하면 속상하고, 나라고 종국에 미련 많은 인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해도 속상하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전원이 꺼진 채 밤을 지새우는 냉장고처럼 속상하다.
사람이라서, 속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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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 뒤, 초고를 고치는 데 제법 시간을 들였다. 정작 본문을 수정하는 일 그 자체보다는 앞서 쓴 나의 글을 멍하니 다시 읽는 일에 더 긴 시간이 소요된 듯하다.
이 또한 미련이리라.
냉장고에 있었던 음식을 음식물쓰레기 수거함에 내던지고 난 후에 그것이 오래도록 기억나는 일은 없다. 그리고 나는 이제 이 글에 대한 미련을 끊어야 한다. 단숨에 끊어내야 할 것이다. 질질 끌수록 미련은 오래 계속되니까.
이 미련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별수 없이, 이렇게 끝낼 수밖에.
──終 。
더 말을 남겨서 좋을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