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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Feb 05. 2024

재능이 꽃피는 늙은 나무

많은 나이에 음악(상업작곡가)에 도전하면서 재능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하였고, 관련 책들도 찾아보았다. 나의 도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지만, 재능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많이 바뀌었다. 그저 남보다 잘하고 앞서가는 것이 재능인 줄 알았던 좁은 식견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진심인 분들, 행동으로 나서는 분들, 오랜 굴곡을 거쳐 성취를 이뤄낸 분들을 보면서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겸손은 기가 죽는 겸손이 아니고 오히려 의욕에 불을 붙이는 겸손이었다. 수많은 실패 후에 결정한 나의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수록 가능성이라는 현실적 외면도 보이기 시작했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나는 이 일을 하겠노라'는 끈끈한 점액 같은 마음이 형성되는 내면의 모습에 스스로도 놀라웠다. '어떻게 끈기 없고 조급한 나의 마음에 이런 마음이 생성될 수 있는 거지?'


식물 애호가인 이전 가게 건물주 아저씨가 분갈이를 해줘서 쌍둥이처럼 두 화분에 나눠서 자라고 있던 아레카야자. 내가 무식하게 가지치기를 잘못해서 그중 하나는 죽었고, 하나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죽은 화분을 볼 때마다 생명을 죽였다는 가책을, 성장하는 화분을 볼 때마다 뭔지 모를 기특함, 뿌듯함, 행복감을 느낀다. 이 화분들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나의 재능을 스스로, 혹은 누군가가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내 재능의 관리자인 나는 가지치기를 잘해야 한다는 것을.


생명을 보는 것은 즐겁다. 매일 아침 성장해있는 아레카야자를 보거나 산책로에서 까치와 참새를 보고, 물가에서 오리를 보는 것은 같은 생명체로서 느끼는 기쁨이다. 이처럼 우리 각자의 삶도 어떤 형식으로든 재능이 발현되고, 자신의 색깔이 표현되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지만, 매일 수없이 찍혀 나오는 공장의 수많은 제품 중 하나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늙은 나무는 어떻게 꽃을 피울까? 죽도록 노력해서? 아니다. 오히려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고, 공기와 태양과 벌과 나비와 새들을 받아들여서 그런 게 아닐까. 우리의 재능도 그렇다. 없는 것을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에 꿈틀대고 있는 것, 늘 버리지 못한 미련 같은 것, 핑계를 대고 계속 미루고 있는 것... 그런 것들을 이젠 꺼낼 때가 되었다. 꺼낸다고 누가 당장 알아봐 주지는 않을 것이다. 나도 잘 모르던 그것을 꺼내서 물과 거름을 주고 가꾸어야 한다. 재능의 성장은 곧 내 삶의 성장이요. 내 삶의 성장은 결국 나라는 사람(인격)의 성장이다. 


내 재능이 나를 살맛 나도록 해 준다면, 사는 게 재밌게 해준다면 일단 성공이다. 우리가 원해서 온 삶도 아닌데 사는 재미도 없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러나 그 재미는 내가! 찾아야 한다. 내가 재밌고 나면 이제 다른 사람도 즐겁게, 재밌게,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50이 넘어서인지 날마다 최소 1번은 죽음을 생각한다. 물컵이 물이 반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후회 없는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후회가 적은 삶을 살려 한다. 남아있는 절반 이하의 물로 말이다. 


삶은 희한하게도 스스로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고 살면 그렇게 마감이 된다. 하지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창조하며 살아가면 없었던 의미가 부여되고, 새로운 가치가 창조된다. 그 그늘에 다른 사람들이 쉼을 얻고, 나는 자부심을 얻는다. 내가 많은 나이에, 늦었다고 생각하는 나이에 이토록 재능을 강조하는 이유다. 제발 스스로 별 볼 일 없다고, 돈이나 벌고 맛있는 거나 먹고 살다가 죽겠다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돈 벌고 맛있는 거 먹는 건 좋은 거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않은가.


배우 윤여정, 최민식, 김혜자... 감독 박찬욱, 봉준호... 이들처럼 자신의 포지션이 있는, 색깔이 있는 내가 되어 보자. 자연 속의 돌과 나무도 거기에 있어서, 그 자리에 있어서 아름다운 게 아닌가. 우리도 우리가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 우리만의 자리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고 가꾸어보자는 얘기다.




이로써 <재능이 꽃피는 늙은 나무>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말없이 제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때론 댓글을 달아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여러 현실적인 굴곡과 어려움이 있지만 묵묵히 꿈을 향해 걸어가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여러분이 닦고 있는 그 길이, 삶의 고난과 실패 속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뒤에 계신 분들의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성스레 식물을 가꾸듯 우리의 남은 삶을 재능과 더불어 잘 가꾸어 나가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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