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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an 25. 2024

다시 천천히, 다시 천천히

아침, 점심을 스스로 해결하고 저녁밥은 아내에게 얻어먹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쉬는 날 친구들을 만나고 온 아내는 피곤한지 안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7시 반을 넘기고 시장기가 상승하니 슬슬 짜증이 났다. 이전 같았으면 한참 후 거실에 나온 아내에게 욱했을 것이다. 글을 계속 쓰면서 좋아진 점은 어느 정도 자기 객관화가 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 배가 고픈 상태다.', '아내는 주 5일 서서 힘들게 일하다가 하루 쉬는 날, 외출 후 피곤해서 쉬는 것뿐이다.', '우린 둘 다 잘못이 없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부엌에 가서 냉장고 안 식재료로 대충 요리해서 한 끼를 해결했다. 만족스러운 식사는 아니었지만 배고픔이 일단락되고 나니 짜증도 가라앉았다.


살면 살수록 생각도, 행동도 '다시'하고 '천천히' 하는 게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걸 깊이 느낀다. '다시'와 '천천히'는 애정과 비례한다. 애정이 없는 대상에 대해 다시, 천천히 생각하고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다시, 천천히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아내의 연약한 체력, 5일간의 고된 노동, 그날의 피곤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아내 앞에 나의 한 끼 배고픔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에게는 스스로 차려먹을 수 있는 체력과 능력이 있으니까.


연락도 잘 하지 않고, 톡에도 답이 거의 없는 친구가 있다. 오래된 친구지만, '친구의 소중함을 잘 모르나? 나이가 드니 변했나?'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얼마 전 만나서 얘기해 보니 그 친구는 '오래된 친구는 연락 잘 안 해도 이심전심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 친구의 행동은 그냥 자신의 스타일이었던 거다. 다시, 천천히 생각해 보면 이 친구 역시 이해할 수 있다. 나와 다를 뿐이다.


피아노 스케일 연습을 하고 있다. 한 키(key)에서 코드당 3가지의 자리바꿈으로 자연스럽게 코드를 이어가는 연습이 주다. 당연히 한 번에 잘되지 않는다. 머리로 알아도 손가락이 자동으로 움직일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 왜냐하면 음악을 표현해야 하는데, 손가락 위치 계산하고 음이름 계산하고 있다가는 다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음악은 기다려주지 않는 시간의 예술이다. 지금은 Ab 키를 연습하고 있다. 잘 안되는 코드 연결을 다시, 천천히 반복하는 이유는 Ab 키와 친해지기 위해서다. Ab 키의 곡을 연주하거나 곡을 쓸 때 부담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다. 전공을 해서, 어릴 때 배워서 이미 잘 알고 잘 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 그럼에도 내가 다시, 천천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소중하다. 내가 느끼는 음악은 나만이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습(반복)의 느낌은 아내를 이해하는 느낌과 매우 흡사하다. 낯선 Ab 키(스케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천천히 생각하고 터치하는 방법밖에 없다. 


삶의 유한한 시간이 매우 짧고 허망하기 때문에 '다시 천천히'라는 가치관은 답답하고 바보스러운 것 같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데 어느 세월에 '다시 천천히' 하란 말인가. 하지만 '다시, 천천히' 하지 않으면 진정성을 획득할 수 없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의 작가 조원재는 미술관을 슥 한번 둘러보는 것으로는 그림에서 어떤 감흥을 얻을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림으로 작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시 천천히' 보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속도전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시 천천히'는 손해 보는 장사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삶이 작고 소박하게 끝난다 할지라도 '다시 천천히'라는 가치를 놓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해 본다. 피아노를 300일 가까이 연습해 본 결과 '다시 천천히' 할수록 애정과 애착이 생긴다는 묘한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재능이 출중해서 피아노를 빨리 배우는 사람도 그 나름의 애정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내가 안 겪어봤으니. 하지만 잘 안되는 와중에 '다시 천천히' 하면 또 이 세계 안의 애정이 있다. 마치 초보 농부의 작물도 모양은 못생겼지만 날마다 자라는 느낌이랄까. 볼품 없지만 농약을 안치고, 대량 생산의 기계적 느낌이 아니라 주인의 애정 어린 손길이 듬뿍 갔으니 더 소중한 수확물인 것처럼.


내일 또 새로운 하루가 주어진다면 나는 다시, 천천히 살아보기로 한다. 올해는 내 고질병인 위장병에 대해 화내지 않고, 다시 천천히 음식으로 화해해 보려 한다. 부지런히 관련 정보도 찾아보고, 나쁜 음식 가리고, 좋은 음식 찾아 먹으면서 말이다. 


그러니 보니, 따지고 보면 사실 급할 건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위한 무엇보다 무엇 자체가 소중함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밥을 잘 차려주는 아내보다 아내라는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 인정받기 위한 음악 이전에 음악 자체가 소중하다. 출세한 삶 이전에 삶 자체가 간절하다. 그래서 '다시 천천히'가 중요하다. 내 앞의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다시 천천히' 들어보고, 내가 왜 화가 나는지 '다시 천천히' 생각해 보고, 잘 안 되는 일을 '다시 천천히' 해 본다.


그러면 우리는 조금 더 깊어질 것이다. 허울만 좋게 살다 간 인생이 아니라 스스로와 깊이 대화하는 삶에 조금 더 다가갈 것이다. '다시 천천히'는 어떤 목표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라기보다는 대상을 애정하는 마음으로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자기 확신이다.




조급한 자기 기만으로 하루가 실패로 여겨지고, 1년이 허망하다면 '다시 천천히' 내 삶을 또렷이 정면으로 바라보자. 그런 다음 '다시 천천히' 행동해 보는 것이다. 잘 안돼도 너무 실망할 필요 없다. 우리는 언제나 '다시 천천히'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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