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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Feb 01. 2024

심심을 지나 결심을 넘어 호기심으로

심심하다 :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심심(甚深)하다 :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

심심하다 : 음식 맛이 조금 싱겁다.


결심(決心) : 할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굳게 정함. 또는 그런 마음.


호기심(好奇心) :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어릴 때는 심심할 때가 많았다. 심심해서 친구네 비닐하우스 거적을 덮기도 하고, 교회 누나들이랑 짐자전거 끌고 을숙도로 하이킹도 가고, 방학 때는 눈 올 때 산에서 비료포대도 타고, 큰아버지 경운기도 몰아보고 했더랬다.


어른이 되고 보니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여유가 없어지고 결심할 일들이 많아졌다. 직장 생활을 꾸준히 해야 하고, 돈을 아껴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부모와 아내와 자식에게 잘해야 하고... 의무가 많아지면서 결심할 일이 많아졌다. 결심의 결(決) 자는 결박의 결(結) 자가 아니지만, 왠지 마음을 결박하는 느낌이 있다. 결심은 좋은 것이지만 그렇게 차원 높은 마음은 아니다.


젊은이에서 늙은이가 되어갈수록 대체로 호기심이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삶을 뻔한 것으로 단정해 버린다. 그도 그럴 것이 표면적 현실은 뻔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고, 로또 당첨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인간이 결심만 하고 살면 몸이 먼저 굳어지고 마음도 굳어진다. 나는 컴퓨터 관련 직업병이기도 하지만 거북목증후군이다. 목과 어깨 근육이 뭉쳐 있은 지가 꽤 오래됐다. 내 몸이 긴장한 채로 20년 넘게 살았다는 얘기다. 완전히 이완되어 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긴장한 상태인 줄도 모른다. 마치 숙련되어서 손가락 힘을 완전히 빼고 자연스럽게 악기를 다루기 전까지는 손가락과 팔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는 줄 모르는 연주자와 같다. 공연장에서 악기와 혼연일체가 되어서 춤추듯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와 드러머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면 보통의 사람, 보통의 상태는 경직에 더 가깝지 않을까.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자신도 알게 모르게 몸과 마음이 경직된 상태로 - 그 경직을 제대로, 절실히 인식하지 못한 채로 -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그런 경직을 깨어 주고, 결심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 호기심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좋을 호(好)에 기특할 기(奇) 자다. 호기심의 대상을 통해 내가 좋아지고 기특해진다. 또한 대상이 좋아지고 기특하게 여겨진다. 샛강의 오리가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이 생각나는, 엉덩이를 치켜세운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물속에 대가리를 처박고 뭘 먹는지 구경하면 오리가 좋아지고 내 기분도 좋아진다.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해 떠나는 마음은 언제나 설렌다. 화음을 공부하고 멜로디를 만들어보면 특정한 연결에서 어떻게 이런 오묘한 느낌이 나는지 음악이 기특하고, 그것을 하고 있는 내가 기특하다. 


50이 넘어서 내가 추구해야 할 마음은 호기심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 호기심은 모든 예술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4차원 배우 최강희가 최근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환경미화원 1일 체험을 한 <환경미화원이 되고 싶어요>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녀는 이런 체험을 한 이유를 '그분들이 어떤 시간들을 보내는지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호기심을 나는 존경한다. '마약을 하면 어떤 기분일까' 같은 호기심과 비교할 수 없는.


그래도 어릴 때 행복했다고 추억하는 건 그때는 호기심이 왕성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어른의 호기심은 돈키호테 같은 충동적인 모험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괄목한 만한 성과를 낸 과학자들의 연구도 지치지 않는 호기심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호기심은 우주와 세상만사, 만물이 뻔하다는 자만에서 내려오는 마음이다. 우린 매일매일 살지만 죽을 때까지 삶을 잘 모를 것이다. 당연히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질병과 우울 같은 부정적인 대상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가져보는 게 좋다. '왜 그럴까', '왜 그것들이 나를 괴롭힐까, 내게 요구하는 게 무엇일까?'


'밥 먹어라', '여보, 같이 밥 먹어요', '좋게 말할 때 밥 처무라', 'OO 씨, 배고프죠? 얼른 와요'... 말 한마디도 모두 느낌이 다르다. 하물며 인생이랴. 호기심을 가지고 대하느냐, 죽은 물고기 쳐다보듯 인생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당연히 내 마음속 제2의 우주는 달라지고, 다르게 발현될 것이다.


심심한 것도 좋다. 현대인은 심심한 겨를조차 없으니까. 결심도 좋다. 결심이 없으면 우리 마음은 너무 쉽게 흐트러진다. 하지만 너무 각 잡힌 삶은 우리 본성에 어긋나므로 스스로를 해친다. 유익한 호기심이 우리 삶을 더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내 배우자는 어떤 사람일까',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어떤 여자일까', '지렁이는 비만 오면 왜 밖으로 기어 나올까', '새의 지저귐은 노래일까, 악다구니일까, 수다일까', '피아노를 치거나 공을 차거나 노래를 하는, 생산성과 무관한 일에 인간은 왜 이다지 몰두할까'


호기심은 '관심'에서 시작한다. 홈쇼핑 중독 같은 유해한 호기심보다 삶 자체에, 나 자신에, 내 재능에,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호기심을 가져 보자. 도대체 너는 누구고, 나는 누군지 말이다. 호기심으로 점점 더 성숙한 인격과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나아가서 내가 봐도 좋고 남이 봐도 진정 마음으로 흐뭇한 그런 일을 하고, 내가 해서 기특하고, 남이 봐도 기특한 그런 삶을 살아보자.




심심을 지나 결심을 넘어 호기심으로 나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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