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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새 Jan 30. 2024

가정을 지키는 사람, 재능을 지키는 사람

결혼생활을 27년 넘게 하다 보니 가정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많이 느낀다.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우리 부부의 아버지들은 모두 가정을 지키지 못했다. 바람과 폭력으로 이혼 후 타국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개그맨 S 씨의 사례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가정을 지킨다는 건 첫째 상대방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것이고, 둘째 경제적인 책임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친척 형을 비롯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가정을 이끌어가는 성실한 가장들을 보면 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마음이 숙연해진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성실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영업을 할 때는 순전히 내가 버는 돈이라 생각해서 수입을 알뜰히 관리하지 못했고,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직장 생활의 고통들을 잘 견디지 못해서 자주 일자리를 옮겼다. 나이가 들면 졸혼을 하리라 친구들에게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다. <지킨다>라는 것은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의지가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가정을 이루는 나 외의 다른 타인(가족)을 지키는 것은 별것 아닌(당연한) 것 같지만, 상당히 성숙한 인격과 진정성이 요구된다.


진정성 있게 가정을 지킴으로써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이라는 혜택, 평온한 분위기라는 혜택을 누린다. 이렇게 자란 자녀들은 또 다른 남을 사랑할 줄 알게 된다. 부부의 사랑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깊어져서 외로운 중년과 노년 시절, 서로에게 의지와 힘이 된다. 그래서 가정을 지키는 사람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참 대단한, 훌륭한 사람이다. '맞지 않는 사람이라도 억지로 참고 살아야 한다' 식의 유교적인 교훈을 주장하는 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기를. 세상의 여러 유혹과 육체적인 고달픔을 이겨내고 수십 년 가정을 지켜내는 훌륭한 가장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부부의 아버지들은 모두 행복한 노년을 보내지 못했다. 젊은 시절 그들이 찾아 나섰던 여자들과도 오래 행복하지 못했고, 자식들과도 깊은 감정의 교류와 추억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 때문에 가정을 버렸을까. 그 당시에는 그게 더 좋아 보였을 거다. 틀림없이 그렇다. 새로 찾아 나서는 여자가 더 신선하고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본처가 최고다' 식의 도덕적인 잣대를 떠나서 잘 버리는 사람은 소중한 줄을 모르는 사람이요, 잘 지키는 사람은 소중함을 깨달은 사람이다. 건강을 지키는 사람은 병마의 무서움을 알고, 가정을 지키는 사람은 가정파탄이 초래할 여러 불행들을 안다. 그래서 크게 보면 가정을 지키는 사람은 배려를 아는 사람이요, 인격이 성숙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타인의 불행을 미리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성실한 가장들을 존경하는 이유다.


재능을 지키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진정한 짝(재능)을 찾기 전에는 이리저리 헤매고, 기웃기웃하고, 사귀어 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어떤 분야에 정착한 후로는 이제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고통을 감내할 줄 알아야 한다. 이거 조금 하다가 힘들다고 그만두고, 저거 조금 하다가 재미없다고 그만두면 나는 내 재능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가정을 지키지 못하면 가정을 지켰을 때 맛볼 수 있는 화목한 가정의 열매들을 누릴 수 없다. 재능을 지키지 못하면 재능의 열매를 누릴 수 없음이 당연하다.


가정을 지키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무엇보다도 가족 구성원 개개인을 사랑하고, 또 가정이라는 울타리 자체를 사랑하는 힘일 것이다. 우리 부부의 아버지들이 가정을 지키지 못한 것은 어쩌면 그들의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가정의 소중함을 배우지 못한 탓일 것이다. 


재능을 지킬 수 있는 힘도 내가 나의 재능이라고 여기는 그 세계를 사랑하는 힘이다. 그 세계를 사랑하기에 힘듦과 우여곡절이 있지만 쉽게 버리지 못한다. 시간이 많고, 재능이 많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쉽게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부족하고, 내게 주어진 것이 많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은 결코 쉽게 버릴 수 없다. 그래서 그 재능과 씨름하더라도 끝까지 가 본다. 


가정을 지키는 성실한 아버지들의 소망은 소박하고 단순하다. <행복한 가정, 화목한 가정>. 재능을 지키려는 사람의 소망도 마찬가지다. 재능으로 인해 행복하고, 화목해지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해지는 것.


나라를 지키려고 애썼던 이순신 장군의 삶처럼 <지킨다>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 지키는 것이다.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가정 - 그로 인해 나의 짝과 자녀가 행복할 수 있으니  - ,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재능 - 그로 인해 내 자존감이 높아지고, 나와 남이 함께 행복할 수 있으니.


숙연한 마음으로 가정을 지키듯 나의 재능을 지켜보자. 쉽사리 포기하지 말고. <지킴>은 성숙한 인격과 깊은 사유와 겸손을 요구한다. 삶은 도전이지만 또한 지킴이기도 하다. 도전 후에는 반드시 지킴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 온다는 건 굉장히 엄청난 일이다. 그 사람의 인생도 함께 오기 때문이다.' 개그맨 김국진의 명언이다. 내게 온 그 사람을 '굉장히 엄청나게' 생각할 수 있다면 내게 주어진 재능도 '굉장히 엄청나게' 여길 수 있다. 



진정으로 가정을 지키는 성실한 가장들의 비밀은 가정을, 배우자를, 자녀를 '굉장히 엄청나게' 여기는 그 소중함이 아닐까. 그들을 본받아서 그런 마음을 내 재능에게도 주어 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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