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새 Jan 18. 2024

시간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공포영화를 좋아한다. 'OO 전기톱 살인사건' 같은 자극적인 영화는 무척 싫어하지만, 은근하게 조여오는 심리 스릴러나 공포 영화는 좋아한다. 두려움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으로써 우리는 평생 이 감정과 동고동락하며 살아야 한다. 건강염려증이 아니라도 '내가 암이면 어떡하지', '오늘 밤 심장마비로 죽으면 어떡하지'부터 '길 가는데 갑자기 차가 나를 들이받으면 어떡하지', '신호 대기 중인데 뒤차가 내 차를 밀어버리면 어떡하지' 등 생각이 새끼를 치는 만큼 두려움도 끝없이 펼쳐진다. 그나마 우리의 주위를 뺏는 생활 속의 잡다한 일들이 있기에 두려움의 순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직장 동료들이 나를 비웃으면 어떡하지', '자식이 나를 무시하면 어떡하지', '이대로 출세 한번 못해 보고 별 볼 일 없이 죽으면 어떡하지', '핵 전쟁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푸틴이나 김정은이 돌아버리면 어떡하지'...


하지만 두려움은 현실적으로 우리를 부지런하게 만들기도 한다. 악취가 두려워 제때 음식 쓰레기를 버리고, 불성실한 자가 되기 싫어 약속을 지키려 애쓴다. 망자 앞에 후회하는 게 두려워 조금이라도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려 애쓰고, 초라한 노년이 두려워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은다. 


반면 두려움은 그 정도가 심해지면 자신을 포기하게 만든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은 교주를 두려워한 나머지 저항력을 잃어버리고 마음을 통째로 내줘버린다(함락당한다). 일명 가스라이팅. 사람은 지능이 높은 동물이지만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다. 그곳에는 명문대 출신 등 일명 똑똑한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그들이 논리적이지 않아서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두려움은 이렇듯 사람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시간은 우리와 애증의 관계다. 도통한 부부 사이처럼 시간에 대해 진심으로 '애'만 남아있는 분이라면 나는 그저 말없이 존경의 눈길을 보낼 것이다. 시간은 금처럼 소중하지만 세월은 덧없이 흘러 우리 몸을 아프고 병들고 힘없게 하며, 부모님이 자식을 못 알아보면서 OOO에 똥칠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시간은 또 얄밉고 얄밉다. 병들고 늙어가는 자기의 육체를 부여안고 '나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고 태연자약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간이 간다'라는 현실은 한계가 명확한, 생명이 유한한 인간에게는 참 두려운 사실이다. 넷플릭스 다큐 <나는 신이다> OO동산 편을 보니, 사이비 교주에게 속아 어리고 죄 없는 자식을 죽인 부모도 있었다. 이제야 뒤늦게 자기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부모는 평생을 얼마나 후회와 죄책감 속에 살까. 우리가 시간을 두려워해야 하는 이유는 이 어리석은 부모처럼 사이비 교주 같은 거짓 가치에 평생을 바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일생을 바친 수령님의 정체가 실은 간사한 한 마리 쥐새끼에 불과했다면... 내가 일생을 헌신하여 만든 내 모습이 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식적이고 허망한 모습이었다면...


시간은 동영상처럼 되감기를 허용하지 않기에 우리가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진실하게 살고 있는지 날마다 두려워해야 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한다. 이것이 시간을 두려워하는 삶이다.


사이비 교주에게 마음을 빼앗겨 자신을 포기해 버리는 사람처럼, 우리는 한편 시간이라는 이길 수 없는 존재에게 져서 자신의 삶을 자포자기해 버리기도 한다. '이번 생은 글렀어', '이대로 무채색의 직장인으로 인생 마감하나 보다', '잘하는 것도 없고 나이도 많은데 이제 와서 뭘 하겠어'... 신은 한 번도 당신에게 '너의 이번 생은 글렀다'라고 선포한 적이 없다. 당신 스스로 한계를 짓고, 한숨을 쉬고, 의젓하고 표정 없는 시간에게 어린아이 떼쓰듯 망나니 짓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국종 교수의 책 <골든아워>를 읽어보니 사고가 나면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다고 한다. 이 순간에는 의료진이든, 구급대원이든, 소방관이든, 착한 이웃이든 사람을 살리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삶의 부족한 시간 - 골드타임 - 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뭘 하려고 해도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이놈의 팔자 먹고사는 것 때문에 뭐 다른 걸 해보려 해도 시간이 없다고 늘 불평불만이다. 왜 그럴까? 우리 잠재의식 깊숙한 곳에 이미 시간과의 싸움에서 패배해 버려 나를 놓아버린 건 아닐까? '가는 건 세월이고 느는 건 빚'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늘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2023년에 300일 가까이 하루 한 시간씩 친 피아노 연습은 내게 새롭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나도 무언가를 진심으로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최초의 발견이었다. 나는 어떤 관심 분야든 언제나 시작은 뜨거웠으나 빨리 식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 300일 넘는 피아노 연습의 연장선상에서 지금은 12키 스케일 연습 방법도 알게 되고, 클래스 101에서 체계적인 강의도 찾아 듣게 되고, 조금 더 자신감 있는 실행력을 갖게 되었다. 그 실행력은 독서로, 글쓰기로, 돈벌이로 확장력이 생겨 내 속에서 꿈틀대고 있다. 삶은 2023년도, 2024년도, 어제도, 오늘도 언제나 바쁘다. 1월도 벌써 보름이 지났지 않나. 


시간에게 진다는 건 미인을 보고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미인과 이야기를 나눠보지도 않고, 그녀의 취향을 들어보지도 않고 내 짐작만 믿고 먼저 포기하는 것. '에이, 내 주제에 무슨!'. 시간은 미인보다 훨씬 고귀한 황금 덩어리다. 그 미인(황금)을 그냥 포기할 텐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5분 늦었다고 출근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PPT가 부족하다고 강의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시간은 내가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므로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상당한 용기이다. 삶에 나를 드러내 놓는 기백이다. 이것이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이다.


시간 대신 '돈'이란 단어를 넣어봐도 이 논리는 성립한다. 돈을 두려워해야 함은 검소한 삶과 절약을 의미하고, 돈을 두려워하지 않음은 '월급'이라는 한계 속에 나를 규정짓지 말아야 함을 뜻한다. 즉 절약할 수 있고 하겠다는 의지와 월급 이상을 벌 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다.


어차피 우주를, 현실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이라면 두려워해야 할 것을 제대로 두려워하고 과감하게 용기를 가져야 할 때 제대로 용기를 가지자. 아무리 겁 많은 남자라도 애인이 괴한에게 끌려가는데 가만히, 멍청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진정 사랑한다면 말이다. 자신의 삶을 진정 사랑하는가?




무채색의 절대자, 은둔의 고수, 표정 없는 독재자 <시간>은 우리에게 묻는다. '내가 두려우냐? 그렇다면 반드시 나를 두려워하고 또한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이전 24화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타인의 이야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