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이 목적이 되지 말자
나는 살아오는 동안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침형 인간이었다.
근데 '후천적 아침형 인간'
그리고, 그저 허울뿐인 이 '아침형 인간' 타이틀을 놓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어느 순간 스스로 '나 왜 이렇게 아침형 인간에 집착하지?, 인생 유일한 업적이 아침형 인간인 건가?'라고 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건강해지고 부유해지며 현명해진다는 것은 미신”
“더 많은 부를 가져다주는 증거는 전혀 없다”
“내 경험상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유일한 차이는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정도이다”
*뇌과학자 러셀 포스터 - 2013년 테드 강연에서
몇 년 전에 본 글인데 정말 너무나 위트 있고 많은 것을 관통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께서는 직장인 생활을 오래 하셨다. 아침에 항상 새벽 4시 반쯤 일어나 매일 경제공부를 하고 계단을 오르내리셨고,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나도 아침에 일어나는 게 당연해졌다. 이게 습관이 되니 주말에도 정말 많이 자봐야 9시에는 일어났다.
고등학교 때는 다들 일찍 일어나서 등교를 하니까 대단히 특별할 게 없었지만, 대학교 때는 아침에 6시에 나가서 턱걸이를 하고 들어왔고 수업이 없어도 항상 1교시 시간인 9시에 맞춰 학교에 도착해서 책이라도 읽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항상 30분~1시간씩 일찍 출근했다. 아무리 전날 늦게 잤어도,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시고 숙취가 심해도 일찍 출근해서 거의 제일 먼저 앉아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병적으로 1시간씩 일찍 나와서 업무를 시작했다. 요즘에는 글을 쓰니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전날 일찍 자려고 하지만, 이것저것 하다 보면 잠을 충분히 못 자는 경우가 많았다.
근데, 이제는 몸이 견디지 못하는 것 같은 신호가 온다.
우선, 집중력이 확실히 떨어진다. 빠른 마감시간 안에 여러 일들을 끝내야 하는 업종의 종사자로서 약간의 방심도 큰 업무 실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눈의 피로는 평생 적립해 주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약간의 다크서클을 달고 살았었는데 이 다크서클은 평생 누적이었다. 회복되지 못한 다크서클의 잔량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갔다. 원래도 다크서클이 심한 편이었던 터라 '원래 이래'라는 생각으로 크게 개의치 않았었는데, 요즘에 '왜 이렇게 다크서클이 심해?'라는 말을 듣는 빈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고, 나 스스로도 눈의 피로를 많이 느끼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단점은 만성피로. 정말 고개만 대면 잔다. 식곤증도 빠르게 오고 커피를 새벽에 마셔도 잠만 잘 잔다. SNS에서 스치듯이 본 게시물에 따르면 커피가 안 받는 사람은 그만큼 피로의 누적이 크다고 한다. 그래서 커피를 마셔도 바로 잘 수가 있는데 잠을 조금 자고 나면 커피가 다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고 그때부터는 양질의 수면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만큼 피로가 누적된다.
어릴 때는 그저 '아침형 인간', '성실한 사람'등의 타이틀이 좋아서 자부심에 계속 일찍 일어났었고, 전날 조금 일찍 자거나 주말에 좀 회복하면 컨디션이 또 돌아오곤 했다. 회복이 좀 덜 돼도, 그저 나는 이만큼 '성실한 사람이니까'라며 '아침형 인간'임을 즐겼다.
수년간 아침형 인간을 살아오면서 '결과가 덜 나와도 성실하니까'라는 식의 합리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서 생산적인 일을 해왔고, 아침에 루틴 하게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내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1. 무조건 2. 매일 3.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만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강박에 빠졌었던 것도 분명하다.
전날에 과도하게 운동을 했을 수도 있고, 야근을 오래 했을 수도 있고, 술을 좀 과하게 마셨을 수도 있다. 인간이라면 회복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날은 조금 더 잠을 보충해서 더 나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프로다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보는 방법이다.
무엇이든 어깨에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면 될 것도 안 된다.
분명 '아침형 인간'은 그 아침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면 훌륭한 인간상이 될 수 있지만, '아침형 인간'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같은 말이지만, 루틴을 지키는 것은 훌륭한 것이지만, 루틴을 지키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계속 '아침형 인간'으로 살긴 할 거다. 다만, 뭘 위해서 '아침형 인간'이 될지는 계속 고민해 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