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프링버드 Nov 04. 2023

12. 은하 대백과사전

<코스모스> 12장



이제 <코스모스>의 두 장만 남았습니다. 전 장인 11장은 우주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적 문명에게 전달하고 싶은 우리 인류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고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다음의 질문은 당연히 상대방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겠지요. 따라서 이번 장에서 저자는 외계 문명에 대해 다양한 추정을 해봅니다. 그 추정은 우리 지구인들에 대한 객관적 성찰에서부터 시작되고요. 모르는 존재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아는  유일한 존재 즉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니까요.    


칼 세이건은 각 장을 매번 인용문들로 시작합니다. 12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5개의 인용문이 실려있는데 저는 그중 하나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콜린 맥클로린이 쓴 글입니다:


대자연의 창조주께서는 현재 수준에서 지구인들이 다른 그 어떤 거대 천체들과도 교신할 수 없도록 해 놓으셨습니다. 지구뿐만 아니라, 지구 이외의 행성들이 다른 행성들과, 또는 하나의 행성계가 다른 행성계들과도 정보를 교환할 수 없도록 창조주께서는 자연에 특별히 손을 써 두셨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은 우리에게 호기심만 일게 할 뿐, 이미 발동된 호기심의 갈증은 식혀 주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연을 환히 꿰뚫어 볼 만한 큰 지혜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겨우 여기까지만 볼 수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호기심만 잔뜩 키웠다가 결국 실망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현시점은 인류에게 있어 존재의 여명기이거나, 그도 아니면 존재의 겨우 단초에 불과하다고 믿습니다. 현시점은 더 먼 미래를 향한 준비 단계와 수습의 기간일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겨우 여기까지만 볼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언제 쓰인 글이라고 생각되세요? 1748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에 살았던 이 인물은 우리 인류가 이제 여명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새벽 시간은 느리게 흐릅니다. 동은 텄지만 해가 뜨려면 아직 기다려야 하는 어슴푸레한 시간. 인류의 지성사에 있어서도 여명기는 깁니다. 500년 사이에 우리의 지성은 얼마나 밝아졌을까요? 칼 세이건은 지구 문명이 그렇게 선진적인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선진 문명이었으면 이미 우주로 나가 외계 문명과 접촉을 했겠죠.  그렇다면 반대로 우리보다 뛰어난 문명을 가진 외계인들이 혹시 우리 지구를 방문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가져볼 만합니다. 과거 어느 때 그들이 몰래 조용히 우리를 찾아왔던 적은 없을까요? 아니면 지금 우리가 모르는 모습으로 어딘가에서 우리를 관찰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은하수 은하에는 지구보다 나이가  수백만 년은 더 된 행성들이 틀림없이 많이 있을 것이다. 지구보다 심지어 수십억 년 이상 나이를 먹은 행성들도 상당수에 이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지구가 이 행성들에서 온 여행객의 방문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겠는가? 그동안 외계 문명권으로부터의 지구 방문이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믿기에는 지구의 나이 45억 년은 너무 길다.


혹시나 외계 문명이 우리를 방문했거나 우리에게 메시지를 남겼다고 하더라도 그 흔적이나 메시지를 해독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지도 문제입니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 먼저 칼 세이건은 1800년대에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했던 언어학자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가 이집트의 로제타석과 오벨리스크에 쓰인 글을 바탕으로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과정은 참 재미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소리를 나타내는 표음 문자와 기호에 뜻을 담아내는 표의 문자가 섞여 쓰인 것이었다네요.) 샹폴리옹의 해독으로 수천 년 동안 잠들어있던 엄청난 문명이 마침내 찬란하게 드러나게 됐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류에게 엄청난 유산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인류의 정신사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가치 있는 유산 말이죠.  외계 문명으로부터 (전파 신호 형태로 올 것으로 예상되는) 메시지를 우리가 받아서 해독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집트 문명이 우리에게 열린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더 굉장한 사건이 될 겁니다. 인류가 지구라는 좁은 인식 마당에서 광활한 인식의 단계로 비약할 수 있게 하늘의 문을 열어주는 일대사가 될 겁니다.  


우리는 성간 로제타석이 있다고 믿는다.


칼 세이건이 이렇게 믿는 데에는 근거가 있어요. 아무리 다른 문명권들이라고 해도 자연의 법칙은 우주 어디를 가든 동일하며, 자연의 법칙을 설명해 주는 과학과 수학이 그들과 우리의 공통 언어라고 그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 멀리 있는 별이나 은하의 스펙트럼은 태양의 스펙트럼과 비슷하다.

- 우주 어디의 물질이든 같은 종류의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자의 빛 흡수, 방출 과정은 우주 어디를 가든 우리가 알고 있는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

- 멀리 있는 은하들도 적정 궤도를 따라 상대방 주의를 서로 맴돌고 있다. 그 은하들도 바로 중력의 법칙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지구에서 발견된 자연의 모든 법칙이 우주 어디에서나 성립하므로 별들 사이를 가로질러 온 메시지를 우리는 반드시 해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렇다면 외계 문명과 어떻게 통신을 할까요? 통신 방법은 행성들 사이가 아니라 별들 사이의 공간을 뛰어넘는 것이어야 하고, 싸고 빠르고 단순 명쾌해야 합니다. 문명의 진화 단계에 따라 수신 기술의 수준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초보 단계의 문명도 쉽게 수신할 수 있으려면 아주 간단한 방법을 써야 할 겁니다. 이 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방법은 바로 전파천문학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전파는 빛의 속도로 공간을 움직이며, 가장 빠른 우주 탐사선에 실어 보내는 정보보다 1만 배 정도 빨리 전달됩니다. 전파 망원경들은 아주 좁은 주파수 대역을 통해 강한 전파 신호를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 광활한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외계 문명으로 우리도 우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고 칼 세이건은 말합니다. 단, 전제가 있어요. 우리와 교신할 수 있는 외계 문명이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정확하게 알기만 한다면.


외계 문명의 위치를 막연하게나마 가늠하기 위해서는, 지구문명권과 교신이 가능한 고등 문명권이 은하수 은하에 얼마나 있는지부터 알아야 하겠죠. 과학자 프랭크 드레이크가 창안한 드레이크 방정식이라는 재미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정식에 따르면, 교신 가능한 고등 문명권의 수는 다음의 인수들을 곱해서 나오는 값입니다:


1. 은하수 은하 안에 있는 별들의 총수

2. 행성계를 가지고 잇는 별들의 비율, 또는 행성계를 동반할 확률

3. 주어진 행성계에서 생명이 서식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행성들의 평균 개수

4. 생명이 실제로 탄생할 수 있었던 행성들이 차지하는 비율 또는 생명 탄생 확률

5. 태어난 생명이 지적 능력을 갖출 수 있기까지 진화할 수 있는 확률

6. 지적 생물이 우리와 교신할 수 있을 정도의 고도 기술 문명으로 진화할 확률

7. 행성의 수명에서 고도 기술 문명의 지속 기간이 차지하는 비율


칼 세이건은 동료 학자와 각 인수들의 수치를 추정해서 실제로 값을 얻어냅니다. 문제는 그것이 추정값이라는 것이죠. 위의 모든 인수에 대해 우리는 어떤 것도 정확하게 답할 수 없습니다. 은하수 은하 안에 있는 별들의 총수는 물론이고, 행성의 수명에서 고도 기술 문명이 지속할 수 있는 기간까지,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칼 세이건이 이렇게 저렇게 추정해서 결국 얻어낸 값은, 은하수 은하에 존재하는 문명사회는 적어도 수백만 개는 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중요한 지적을 해요. 이 방정식은 항성천문학, 행성과학, 유기화학, 진화생물학, 역사학, 정치학, 이상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그 안에 더 중요한 사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학문들이 관여된 이 불확실한 추정값의 인자들 중에서 가장 불확실한 요소는 바로 인간 본성이라는 인자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저는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객관적으로도 그렇고 때로 암담함을 느낍니다.


은하 문명권의 거의 대부분이 자기 파멸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부드럽고 달콤한 별들의 메시지가 온하늘을 가득 채울 것이다.


네, 바로 이것입니다. 자기 파멸의 위험성! 우리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자기 파멸의 징후를 보여주는 사건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인류는 멸종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선한 의지도 있다는 희망과 위안을 우리에게 줍니다. 칼 세이건은 역사에서 이질적인 두 문화가 만났을 때 일어났던 두 가지 대표적 사례를 얘기합니다. 하나는 라 페루스이고 다른 하나는 코르테스입니다.


장 프랑수아 드 갈로 라 페루스 백작은 프랑스의 루이 16세가 파견한 태평양 원정대의 대장이었습니다. 라 페루스는 1786년 7월에 알래스카 해안의 리투야 만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인 틀링지트 원주민을 만났습니다. 백작이 그들에 대해 전적으로 호의를 가진 것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만남은 아주 평화적이었다고 해요. 백작은 이런 증언을 남깁니다:


여러 명의 야만인을 보았다. 그들은 우정의 표시로 흰 망토와 여러 가지 가죽들을 펼치거나 흔들었고 만 안에는 몇 척의 카누에 나눠 탄 인디언들이 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물고기를 먹으라고 내밀거나, 수달피나 다른 동물들의 모피 그리고 자기네들의 소품을 우리의 철제품과 교환하자고 했다...


정반대의 비극적 만남도 있습니다. 코르테스의 사례입니다. 16세기 초 중부 멕시코에는 고도의 문명사회인 아스텍 문명이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뛰어난 건축가들이자 예술가들이었고, 정교한 기록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천문학적 지식에 근거해서 정확한 달력까지 만들었습니다. 그 놀라운 문명을 에르난 코르테스는 철저하게 파괴했습니다. 1521년의 일입니다. 자신도 아스텍 문명의 가치를 모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아스텍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을 방문한 그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들 중 하나이다. 그들의 활동과 행동거지는 거의 스페인에서 볼 수 있는 수준으로 조직적이고 질서 정연하다. 이들이 기독교를 모르고 다른 문명국가들과 교류를 하지 못했음에 불구하고, 그들이 어떻게 이토록 훌륭한 것들을 지니게 됐는지 그 놀랍기만 하다."라고 썼습니다. 그래놓고 그 문명을 파괴한 그를 보면서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를 자문하게 됩니다. 아스텍 황제 목테주마는 다음과 같은 보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폐하, 우리는 저들만큼 강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저들에 비해 참으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자들은 황금을 보자 원숭이들처럼 날뛰며 좋아했습니다....


정복자들이 아스텍 원주민들을 무참히 죽이는 장면


범은하적 척도에서 볼 때 우리 지구 문명은 가장 뒤처진 후진 문명일지 모르는데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두려움은 우리 자신이 이런 잔혹한 짓을 저지른 전력이 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아직도 지구는 건재한 걸 보면, 외계인들은 라페루스와 같이 우호적인 존재이거나 아니면 외계의 지적 생물이 지구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덕분일 거라고 저자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지구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신생 문명의 발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어떤 윤리적 배려나 모종의 은하법 같은 규정 때문에 자신들의 존재를 우리에게서 단단히 숨기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또 이런 상상도 해볼 만하다. 우리가 배양 접시에 배양한 세균을 관찰하듯이 그들도 우리를 냉정하고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을지 모른다. 지구인들이 금년에도 자기 파멸의 구렁에서 과연 살아남는지 어디 두고 보자 하는 식으로 말이다.


칼 세이건은 만약 외계 문명과 지구 문명이 만난다면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며 낙관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와 만날 외계 문명은 틀림없이 우리보다 앞선 문명일 테고, 그들이 고등 문명이라는 사실은 그들이 동족이나 다른 문명권과 잘 어울려 살 줄 아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자기 파괴의 위험한 단계를 현명하게 넘어갔다는 것을 방증하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믿음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12장의 제목 '은하 대백과사전'은 좀 엉뚱하죠. 이것은 저자가 다른 동료와 만들어본 가상의 사전입니다. 지구와 이런저런 행성들에 대한 정보를 백과사전처럼 작성한 것이에요. 외계 문명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알고 보니 은하 대백과사전 3267권째 것이더라... 지구인들은 오랜 숙고 끝에 그 문명에게 우리의 정보를 보내게 되고 그렇게 해서 저자가 상상한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들은 은하 문명 공동체의 최신 가입자에 대한 정보를 자신들의 컴퓨터에 입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가상의 고등 문명에 관한 정보 일부. 칼 세이건과 존 롬버그가 상상한 것.

 


이전 13화 11. 미래로 띄운 편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