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11장
인류보다 고등한 지적 생물이 살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세상이 은하수 은하에만
100만 개에 이른다.
11장은 6장에서 언급했던 보이저호의 음반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나옵니다. 바로 이 음반입니다.
이 음반에는 지구와 인류에 대한 정보들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유전자와 두뇌에 대한 정보는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정보들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보살피는 모습과 예술품이나 도구를 만드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들어있는데, 이런 모습들을 인류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생각한 선별자들의 가치관이 엿보입니다. 또한 예순 종류의 언어로 된 인사말과 혹등고래들의 소리 언어도 들어있다고 하네요. 지구에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빗소리 등)와 인간의 기술 문명이 만들어내는 각종 소리(기차 소리 등)도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여러 문화권에서 즐기는 음악을 1시간 30분 분량으로 편집해서 수록했다고 해요. 칼 세이건은 그것들의 목록을 특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지구인의 우주적 고독감과 고독에서 벗어나 외계 문명과 접촉하고 싶은 우리의 갈망을 표현’하는 음악이라고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검색해 봤어요. 일단 유럽의 고전음악 여덟 곡이 수록됐네요. 바흐의 곡이 세 곡, 모차르트의 오페라 <요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 스트라빈스키와 베토벤의 음악이 거기에 포함돼 있습니다. 다른 곡들에 대한 정보는 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보이저호를 쏘아 올린 이들은 서구인들이니 서구문명권에서 중요시하는 음악들에 편향됐을 겁니다.
다른 사회에서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온 저는 저자와 똑같은 생각에서, 다른 곡들을 선곡하겠습니다. 저의 타고난 취향과 우연적이고 환경적인 요인들이 선곡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겠지요. 이를테면 국악을 고려해볼 수 있을텐데, 그래도 첫 번째 곡으로는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를 올리고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FOj0RUC6I4
아무튼 저자는 우주의 광대한 암흑의 심연에는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의 지적 존재들이 살면서 우리보다 훨씬 앞선 기술 문명을 키우고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외계 문명이 이 음반을 열어본다고 해도 그것을 해독할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독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애초에 음반을 제작하지 않았겠죠. 이 음반은 우리의 정체성을 알리고자 하는 노력을 의미하고, 외계 문명은 틀림없이 우리의 의도를 이해할 거라는 저자의 생각은 충분히 공감됩니다.
지구의 생물체 가운데 인류는 가장 지적으로 발전했고 따라서 정보도 압도적으로 많이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유전자는 약 50억 비트의 정보를 담고 있는데 이것을 책으로 치자면 대략 500쪽 분량의 책 1000권에 해당합니다. 정보는 유전자에만 담겨있지 않습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것보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생물은 뇌라는 특수 기관을 소유하게 됩니다. 지구 모든 동물들은 유전자 도서관과 두뇌 도서관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인간 두뇌의 정보량은 100조 비트에 이르며 책으로 따지면 대략 2000만 권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두뇌는 도시와 비슷하게 진화했습니다. 서울은 구도심인 강북의 작은 중심부에서 시작해서 서서히 확장됐습니다. 필요에 따라 지역을 확장하고 구도심을 정비하는 식으로 도시는 커졌죠. 그래서 서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태입니다. 우리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뇌는 수백만 년 동안의 끊임없는 진화를 통해 점점 더 복잡한 구조를 갖추고 더 많은 정보를 소유하게 됐는데, 폴 맥린에 따르면 크게 세 단계에 걸쳐 진화했다고 해요.
우선 뇌는 내부에서 외부로 진화했고, 가장 깊숙한 곳에 뇌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뇌간은 반사작용, 심장 박동, 내장활동, 호흡 등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을 조절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다음의 세 부분이 입혀집니다:
R-영역: R-영역은 뇌간 윗부분을 덮고 있는 부위로서, 인간의 공격적 행위, 정형화된 의식 행위, 자기 세력권의 방어, 계층적 위계질서의 유지 등을 관장합니다. 뇌의 이 부위는 수억 년 전 인간이 아직 파충류였던 시기에 발달했기 때문에 말하자면 우리는 아직도 두뇌 깊숙한 곳에 악어의 뇌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변연계: R-영역을 변연계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부위는 포유류 시기에 생긴 뇌로서, 수천만 년 전 인간이 아직 영장류가 되기 전의 포유류 시기에 발달된 것입니다. 이 부위는 인간의 기분, 감정, 걱정 등의 정서적 반응과 행동 그리고 자녀 보호의 본능을 지시하고 제어합니다
대뇌피질: 이 부위는 뇌의 가장 바깥 부위에 해당하며, 수백만 년 전 인간이 영장류였던 시기에 생겼고, 우리 두뇌의 전체 질량 중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뇌 피질은 직관과 비판적 분석의 중추이며, 읽기, 쓰기, 수학적 추론 등을 담당합니다. 한마디로, 대뇌피질은 인간의 의식적 삶을 가능케 하는 부위입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바로 이 대뇌 피질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그리고 문명은 대뇌피질의 산물이고요. 두뇌는 유전자보다 수만 배 이상의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이 두뇌로 감당할 수 없게 됐을 때, 인류가 그다음에 택한 방식은 육체 바깥에 정보 저장소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도서관입니다. 칼 세이건은 여기서 다시 한번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글쓰기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다.
책은 인간으로 하여금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했다.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저자와 오늘을 사는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 글이기 때문이죠. 도서관은 인류가 이룩한 거대한 지식 체계와 위대한 통찰의 세계를 우리와 연결시켜 주는 고리의 구실을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해서 도서관보다 더 상위의 저장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이 그것입니다. 정보의 양으로만 따지면 도서관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정보에는 오래된 책에서 나는 책 냄새도,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손에 닿는 촉감도 없죠.
행성 지구가 태어날 당시와 똑같은 상태에서 똑같은 물리적 특성을 가진 또 다른 지구가
은하수 은하 어디에선가 다시 만들어진다면 거기에도 우리 인류와 흡사한 생물이 출현할 수 있을까?
칼 세이건은 아마도 아닐 거라고 말합니다. 진화에는 우연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연의 힘을 '폭력적'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를테면, 우주선 입자가 유전자 중에서 어떤 것을 때릴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나타나는 돌연변이도 제각각일 것입니다. 인간의 손가락이 다섯 개가 된 까닭은 우리가 약 4억 년에서 3억 5000만 년 전의 고생대 시기 중 데본기에 지골이 다섯 개인 어류에서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손가락이 총 열 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십진법 대신 팔진법이나 십이진법을 쓰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것은 '비단 손가락뿐 아니라 유전적 재질, 신체의 생화학적 반응, 신체의 형태, 자세, 장기의 구조, 사랑과 증오의 감정, 열망과 절망, 상냥한 성격과 공격적 성향, 우리 인식의 분석 과정에까지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결국 진화의 오랜 과정에서 겪었던 사소한 사건들이 누적된 결과가 지금 우리의 모습인 것이죠.
인간 생존의 근본 문제는
천문학이나 지질학적 우연성에도
민감하게 의존한다.
한 예로, 공룡 멸종이 그렇습니다. 공룡이 멸종하게 된 원인을 우주적 요인으로 설명하는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태양 근처에 있던 초신성의 폭발로 막대한 우주선들이 발생되었고, 그중 일부가 지구 대기로 들어오면서 공기 중의 질소를 산화시킵니다. 산화질소는 오존층을 파괴해서 많은 양의 태양 자외선이 지표로 떨어지게 되고, 그 결과 지구의 생물들은 자외선 복사에 의해 거의 타버리고 우주선의 피폭으로 심한 돌연변이를 일으키게 됩니다. 많은 생물종이 그로 인해 없어져서 공룡은 결국 식량 부족으로 멸종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룡이 멸종한 덕분에 인간이 포식자로부터 해방돼 현생 인류로 계속 진화해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구의 환경 조건이 조금만 달라졌다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다른 형태의 생명이 태어나 인간에 버금가는 지적 능력과 솜씨를 구비하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모든 상황들을 감안해 보면 외계 행성에 사는 지적 생물이 지구인과 닮았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칼 세이건은 말합니다. 지구의 경우를 보건대 유전적 다양성은 일련의 우발적 사건들에 따라서 결정되는데, 특정 유전자들의 선택 과정도 우연성을 동반하는 환경적 요인들에 따라 좌우됩니다. 그것은 외계 행성에서도 마찬가지겠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우발적 사건들과 그곳 환경을 지배하는 우연적 요인들은 지구와 전혀 동일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칼 세이건은 단언합니다.
형태는 비록 우리와 다를지라도
지적 생명 자체는 분명 외계에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과 같은 우주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상당 부분에서 그들과 우리의 지식에는 공통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우리처럼 우리에 대해 많은 것을 궁금해할 것이다.
긴수염고래는 피아노의 가장 낮은 옥타브에 해당하는 20 헤르츠에 해당하는 주파수로 대화를 한다고 해요. 이렇게 낮은 주파수의 소리는 거의 흡수되지 않아서 고래는 심해에서 1만 50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다른 고래와 사랑의 노래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답니다. 지금은 인간이 만드는 소음으로 인해서 (상선과 군함 등등) 안타깝게도 그 거리가 수백 킬로미터로 줄었다고 하지만 말이에요.
인류도 긴수염고래처럼 먼 광활한 우주로 메시지를 띄웁니다. 우리가 보내는 메시지를 외계에 있을 지적 존재들이 해독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보이저호를 잡아챌 수 있을 정도라면 틀림없이 우리보다 훨씬 발달된 문명일 거라고 추정만 할 뿐입니다. 아무튼 해독의 가능성 유무와 상관없이,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행위겠지요.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를 알리려는 노력을 그들은 알아주리라, 칼 세이건은 믿습니다.
지적으로 우리보다 뛰어나든 못하든, 임윤찬이 연주하는 바흐를 그들이 듣는다면 그들은 분명히 인간의 감정이 어떤 것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까요. 저라면 데이빗 보위의 곡과 나란히 그의 연주를 보이저호의 음반에 싣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tenRBYT8G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