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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Oct 24. 2023

10. 영원의 벼랑 끝

<코스모스> 10장


<코스모스> 10장의 제목은 다른 장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문학적입니다. 판타지 소설의 제목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역시 우주 이야기입니다. 10장은 우주의 시공간적 기원과 종점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길을  걸을 때 우리는 공간적으로도 이동하지만 시간적으로도 이동합니다. 이를테면 저는 5킬로미터를 걷는 데 대략 한 시간이 걸립니다. 먼 별에서 출발한 빛도 역시 그렇습니다. 빛은 멀고 먼 거리를 오랜 시간 달려서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닿습니다. 따라서 우주의 시간적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일은 우주의 공간적 한계가 다한 곳, 우주의 공간적 끝까지 되짚어가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간으로는 영원을, 공간으로는 벼랑 끝이라는 비유를 한 것이죠.    


지금부터 100억에서 200억 년 전에
빅뱅이라는 대폭발이 있었고
우주는 그 대폭발에서 비롯됐다.
왜 그런 폭발이 있었는지는 신비 중의 신비다.


이것이 우리가 유일하게 아는 우주의 기원입니다. 대폭발의 순간에 우주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높은 밀도로 모여있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그 순간 그것은 '부피 없는 점' 혹은 '우주의 알'과도 같았어요. 점이자 알인 이것이 광활한 우주 공간의 어느 한 곳에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공간까지도 그것들과 같이 하나로 응축돼 있었다는 뜻입니다.


대폭발이 일어난 우주는 풍선처럼 팽창하기 시작합니다. 우주가 공간적으로 팽창하면서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도 팽창합니다. 그리고 온도는 점차 식습니다. 온도에 맞는 빛의 파장 대역은 전자기에서 감마선, 엑스선, 자외선, 가시광선을 거쳐서 마지막에는 적외선과 전파 대역으로 바뀝니다.  


초기 우주는 강력한 복사와 고온 고밀도의 물질로 가득 차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온도가 점차 냉각되면서 수소와 헬륨 원자들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약 10억 년이 지나자 우주 물질의 밀도가 비균질적으로 변화함으로써 주변보다 밀도가 약간 높은 지역에서 가스 구름이 생겨나고 이것으로부터 거대한 구조물들이 만들어집니다. 바로 은하들입니다.


은하의 형성에는 두 법칙이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중력 법칙과 각운동량보존법칙*입니다. 은하 내부는 중력 수축으로 성간운의 부피가 감소하면서 중심부 온도가 상승합니다. 내부 온도가 약 1000만 도에 이르면 수소가 헬륨으로 변하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고, 이렇게 해서 별이 탄생합니다. 질량이 큰 별은 초신성 폭발로 마감하고, 그때 발생하는 충격파는 은하 간 물질들을 압축하고 은하들을 가속시킵니다. 그 결과로 다양한 크기의 구조물들이 우주 공간 여기저기에서 만들어진 것이죠. 인류가 지구에 출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와 같이 은하단, 은하, 항성, 행성으로 이어지는 우주의 대역사가 있었습니다.   


우주에는 수천억 개에 이르는 은하가 있다고 합니다. 은하의 모양은 규칙적인 은하, 불규칙 은하, 나선 은하, 거대 타원 은하, 왜소 타원 은하 등등 매우 다양합니다. 은하들은 충돌하고 합병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고리 은하는 작은 은하가 큰 은하와 정면으로 충돌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은하 내부도 영구하게 고정된 구조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은하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별들이 그 안에서 태어나고 사라지면서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은하는 유동성의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퀘이사라고 들어보셨나요? 수천만이나 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엑스선, 적외선, 전파를 강력하게 발산하는 복사원들이 여러 개 발견됐는데, 이것들은 중심핵 부분이 유난히 밝게 빛나고 일정 간격으로 밝기가 변합니다. 이 밝은 빛줄기를 뿜어 내는 은하들은 아마도 내부에서 거대한 폭발이 진행 중인 젊은 은하가 아닐까, 천문학자들은 추정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에 퀘이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퀘이사의 빛은 매우 강력해서 초신성 1000개가 동시에 폭발할 때의 밝기라고 하네요. 퀘이사의 에너지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어쨌든 퀘이사 내부에서 거대한 파괴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합니다. 다행히도 우리의 은하수 은하는 중년기에 들어선 '착실하고 건실한 은하'입니다.


우주의 기원은 빅뱅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빅뱅 이전에 우주는 어땠을까요? 어떻게 해서 텅 빈 공간에서  우주가 갑자기 생겨났을까요? 신이 무에서 우주를 창조했다고요? 그렇다면 창조주는 어디에서 왔나요?  신은 항시 존재했다고요? 신비에 대해 답을 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종종 신을 끌어들이지만 칼 세이건은 그러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는 신으로부터 한 단계 내려오자고 제안합니다. 우주의 기원 문제에는 답이 없다, 우주는 항시 존재했다고 말입니다. 구체적 현실에 발을 디디자는 말 같습니다.



우리의 우주는 영원히 팽창하는 우주일까,
팽창과 수축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우주일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우주의 끝까지 가보는 겁니다. 제목처럼, 영원의 벼랑 끝까지 가보는 거예요. 멀리 떨어진 별에서 출발해서 지금 우리에게 도착하는 빛은 과거의 빛입니다. 공간적으로 멀리 볼수록 시간적으로도 먼 과거의 상황을 보는 것이란 얘깁니다. 예를 들어, 120억 광년 떨어져 있는 퀘이사를 관찰하는 일은 그 퀘이사의 120억 년 전 모습을 보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우주의 지평선 근처를 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가 우주가 끝나는 곳, 우주의 벼랑 끝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대폭발 시대의 우주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마치 과거로의 시간 여행 같지요? 우리가 우주의 과거를 알 수 있다면 우주의 미래도 짐작할 수 있게 됩니다.  


우주를 더 멀리까지 보기 위해서는 망원경도 거대해져야겠죠. 미국 뉴멕시코 주의 전파 망원경들은 27대의 대형 망원경으로 구성돼 있는데 철로 위에 놓여서 배치를 바꿀 수 있어서, 망원경 27대가 하나의 거대한 망원경 같이 작동합니다.



어떤 전파 망원경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다른 전파 망원경과 연결됨으로써 지구 크기의 전파 망원경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지구 궤도에 전파 망원경을 올려놓는다면 그것은 내행성계만 한 전파 망원경이 됩니다. 이렇게 망원경의 기능이 강력해지면 강력해질수록 우리는 더 멀리까지 우주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고 추정되는 퀘이사들이 서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면,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팽창 속도가 과거보다 느려지고 있는지, 팽창을 멈추고 수축할 것인지를 그것으로 알아낼 수 있다는 얘기죠.



우주는 열린 굽은 공간이다.
우주는 닫힌 굽은 공간이다.



'우주는 닫혔다, 우주는 열렸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우주가 굽었다'는 건 또 뭐고요. 칼 세이건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아주 흥미로운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드윈 A. 애보트의 <플랫랜드>라는 소설인데, 부제는 '모든 것이 평평한 2차원 세상'입니다.



<플랫랜드> 주인공 화자가 사는 집은 오각형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집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없기 때문에 변의 길이와 수 그리고 두 변이 이루는 각도로 도형을 지각합니다.



플랫랜드는 납작한 세상, 즉 2차원 세상입니다. 여기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3차원 공간을 알지 못합니다. 어느 날 사과처럼 생긴 3차원 생물이 이 나라를 방문합니다. 그는 '안녕하세요'하고 한 주민에게 인사를 했어요. 그 주민은 어리둥절합니다. 자기 집은 문이 닫혀있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낯선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3차원 세계의 방문객은 플랫랜드 주민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자 이 주민의 집안으로 자기를 밀어 넣습니다. 주민 눈에는 그 모습이 마치 작은 점이 나타나 점점 커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플랫랜드의 주민이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자 방문객은 약이 올라서 주민을 쿵 들이받습니다. 주민은 그 충격으로 위로 붕 떴다가 천천히 플랫랜드의 표면으로 내려앉게 되죠. 다시 말해서, 3차원 세계로 들어갔다가 나온 거예요.  "하느님, 맙소사!" 주민은 친구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저 '위'를 다녀온 거 같아." 친구들은 '위'가 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2차원 세계에서 위와 아래라는 것은 개념조차 없기 때문이죠. 칼 세이건은 우리가 딱 그 주민 신세라고 말합니다.


2차원적 플랫랜드가 3차원적으로 구부러져 있다고 쳐볼까요. 그때 한 주민이 어떤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직선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면 이상한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분명히 길을 벗어나지 않고 똑바로 곧장 걸었는데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와 있는 거예요! 2차원 공간이 3차원적으로 구부러져 있으니 당연히 그럴 밖에요. 2차원 세계의 주민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3차원의 존재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2차원의, 공처럼 굽은 우주가 있습니다. 이때의 우주는 공의 표면에 해당하며 따라서 유한합니다. 경계도 없습니다. 비록 그 우주가 계속 팽창한다고 해도 말이에요. 만약 우주가 공의 내부라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이때의 우주는 닫힌 우주입니다. 닫혀있는 굽은 우주죠. 빛도 그 안에 갇혀 있습니다.


플랜랜드 주민처럼, 3차원 공간에 사는 우리는 4차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존재를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제 상상력으로는 그 세계가 전혀 그려지질 않네요. 칼 세이건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1차원 선분을 한 번 움직여 2차원의 정사각형을 만들고 이것을 한 번 더 이동시켜 3차원 입방체를 만들었듯이 3차원 입방체를 '수직 방향'으로 한 번 더 움직인다면 4차원 입방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 '수직 방향'이 어디라고 독자 여러분에게 보여 줄 수는 없지만 여러분이나 나나 그런 방향이 있다고 상상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이렇게 해서 ㅇ뤼는 4차원 초공간에서의 입방체, 즉 4차원 입방체를 하나 만들었다. 3차원에서는 4차원 입방체를 3차원 입방체 안에 또 하나의 입방체가 있고 그 둘의 꼭짓점들이 서로 선분으로 연결된 구조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 4차원에서 4차원 입방체는 모서리의 길이가 동일하고, 모서리와 모서리가 이루는 각이 모두 90도인 구조물이다.


우주는 아직까지 신비에 싸여있고 우리는 신비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한편으로는 과학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애씁니다. 때로 종교와 과학은 묘하게 같은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힌두교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 힌두교에서는 우주가 생과 멸의 끝없는 순환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창조의 춤을 추고 있는 힌두교의 시바 신



과학계에서도 우주는 팽창과 수축을 주기적으로 반복한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힌두교에서 말하는 우주의 순환 주기는 상상을 초월하게 깁니다. 브라흐마(세계의 창조자)의 1년(우리 시간으로 86억 4000만 년)이 100번 지난 다음에 우주는 분해되고, 브라흐마의 100년이 지난 뒤 다시 재구성됩니다. 이런 식으로 우주는  태어나고 소멸되기를 반복합니다. 또한 그 우주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수한 신들이 무수한 우주를 만듭니다. 그러니 우주는 무한히 많습니다. 게다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주는 실체가 아니라 꿈이라고 하네요. 신이 꾸는 꿈 말입니다. 수축과 팽창의 새로운 주기가 열릴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코스모스를 말하는 힌두교의 신화적 상상과 객관적인 과학적 상상이 이렇게 이어지는 걸 보면서 전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하게 되더군요.



힌두교의 우주론은 영원히 순환하는 우주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우주들의 계층구조라는 아이디어는 힌두교의 우주관을 뛰어넘은 유일한 대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칼 세이건은 색다른 우주관을 내놓습니다. 여러 개의 우주가 끝없이 계층구조를 이루고 이어진다는 생각입니다. 미시세계로는 전자 같은 소립자도 하나의 닫힌 우주여서 그 안에 나름의 수많은 은하들이 있고 그 세계 속에는 그 세계에 걸맞은 소립자들이 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립자들 하나하나도 하나의 우주를 이루어, 이 계층 구조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갑니다. 우주들은 위로도 연결됩니다. 은하와 별과 행성과 사람 등으로 구성된 우주는 한 단계 위의 우주 속에 들어있는 하나의 소립자를 구성하고, 그 위로 또 그위로 더 큰 우주들이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칼 세이건의 우주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글쎄요... 흥미롭지만 별로 신선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굉장한 상상력을 발휘한 우주과학 영화들을 많이 봐서일까요? 너무 비약을 한 건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느낌까지 듭니다. 하지만 상상은 비난거리가 될 수 없죠. 과학자의 상상은 오히려 응원해야 마땅합니다. 제 생각에 중요한 건, 상상의 내용보다 상상하는 행위인 것 같습니다. 상상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수많은 상상물들을 만들어냅니다. 그것들 중 한 줌도 안 되는 것들만 진실로 이어지는 것을 역사는 말해줍니다. 하지만 상상 행위가 없다면 그 한 줌의 진실은 결코 얻을 수 없겠죠.


월터 미티라는 소심한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갑갑한 현실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니, 그는 상상 속에 갇혀있습니다. 역설입니다. 지리멸렬하게 느껴지는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서 그는 상상의 세계 속으로 도피하지만 상상은 오히려 그를 그러한 현실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발목을 잡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사건으로 그는 의도치 않게 낯선 세계로 뛰어들게 됩니다. 그가 맞닥뜨린 현실은 그가 상상했던 세계와는 달랐습니다. 그의 갑갑한 예전 현실과도 달랐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상상적인 세계였죠. 이제껏 꿈도 꾸지 못했던 새로운 현실이었으니까요. 그는 상상과 현실을 혼동하는 사람이었고, 그러한 혼란이 그가 궤도를 이탈하게 만드는 운명적 촉발제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월터 미티는 놀라운 모험을 펼칩니다. 그의 상상은 현실과 교묘하게 이어집니다. 여기에도 뫼비우스의 띠가 있습니다.


칼 세이건은 이 세상에 여러 우주가 존재한다면 그것들을 이어주는 4차원 '길'이 있을 것이며 어쩌면 그 길은 블랙홀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월터 미티의 비현실적 상상행위가 마치 블랙홀처럼 그의 눈앞에 수시로 상상적 세계를 열곤 했는데, 결국 그중 하나로 그가 뛰어듬으로써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다른 현실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미래 언젠가는 이 길을 통해 이 우주에서 저 우주로 들어갈 날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7EROynApU





 


* 각운동량보존법칙: 계의 외부로부터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계 내부의 전체 각운동량이 항상 일정한 값으로 보존된다는 법칙. 피겨스케이트 선수의 회전 묘기가 바로 이 법칙이 적용된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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