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농장 입구에 우뚝 솟은 해바라기가 눈길을 끕니다.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언제 이렇게 꽃을 피운 걸까요. 한 줄기에 여러 개 꽃이 매달린 모습도 신기합니다. 해바라기가 원래 이렇게도 자라는가 봐요. 제가 이제껏 본 해바라기는 이것보다 훨씬 작고 소박한데요.
'우산모양꽃차례'라는 예쁜 이름을 알게 됐습니다. 브런치의 이른아침 작가님이 <왜당귀, 나비도 불러온다>에서 소개한 꽃 모양인데, 줄기 끝에서 꽃이 사방으로 퍼져 우산을 펼친 것 같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해요. 한 줄기에 꽃을 소복하게 담뿍 담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이른아침 작가님은 당귀꽃을 예로 드셨는데, 제 밭에도 비슷한 꽃이 있어요. 바로 방풍입니다.
방풍꽃은 어느새 씨를 맺어서 이렇게 변했습니다.
아직도 벌레가 꽃에 붙어있습니다. 꿀을 다 빨고도 꽃에 머무는 까닭은 씨앗에서도 볼일이 있기 때문일까요? 여치도 보이고 애벌레도 있네요.
서리가 내릴 때에야 여문다는 서리태에도 꽃이 피었습니다. 겹으로 보랏빛 모자를 쓴 것 같네요. 꽃이 상대적으로 작아서 눈길을 확 끌지는 못합니다.
애호박을 딸 시기를 자꾸 놓쳐서 늙은 거대 호박만 따먹다가 드디어 애호박다운 애호박을 하나 땄습니다. 호박꽃도 좀 땄어요.
그래서 호박전과 호박꽃전을 해 먹었어요. 뜨거운 프라이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달걀물을 입힌 동그란 호박을 차르르... 호박꽃도 차르르... 뜨거울 때 초간장에 찍어서 먹었습니다. 바질 잎사귀를 잘게 다져서 간장에 넣고 전 위에 올려 먹으니 향이 아주 좋네요.
가을 감자는 포기했어요. 싹이 도무지 안 나서 말이죠. 열개 스무 개의 아들 감자들을 만들 수도 있었을 감자들이 감자된장국, 닭볶음탕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별로 아쉽지는 않았고 오히려 홀가분했어요. 할 일이 줄었다!
바질 모종을 주문해서 옥수수 밑에 심어줬습니다. 밭일을 끝내고 보니 햇살이 뜨거운 11시에 심게 됐어요. 망했다, 다음날 조바심을 치면서 바질 모종을 보러 밭에 갔는데, 꼿꼿하게 서 있네요! 오, 이만하면 바질 숲도 이룰 수 있겠어, 꿈이 허황되게 부풀고 있습니다.
이제 가을 재배가 슬슬 시작되려고 합니다. 장마와 열기에 한가하던 주말농장이 새롭게 활기를 띠고 있어요. 여름내 자란 잡풀들을 뽑고, 꽃대가 올라오거나 수확시기가 지난 작물들도 뽑아 빈자리를 만드느라 다들 바쁩니다. 바야흐로 김장 배추와 무를 심는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텃밭 전문가님들의 말씀을 듣자 하니, 먼저 밭을 잘 만들어 놓아야 한다네요. 1. 퇴비를 섞어주고 가스가 빠질 시간을 준다. 2. 토양살충제와 비료를 뿌려준다.
텃밭 이웃인 할아버지께서는 진딧물약 사랑꾼이세요. 벌레가 열무를 다 먹었다고 하면 "진딧물약을 뿌려야 뒤여" 파가 다 죽어간다고 하면, "진딧물약을 뿌려야 뒤여"... 하십니다. 토양살충제도 꼭 뿌려야 한다고 강조하세요.
잡초로 만든 퇴비로 이상적인 환경 농사를 지어보려는 꿈을 눈 감고 아주 잠시 꿨지만, 곧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종합비료와 유기농토양살충제를 뿌리고 퇴비도 주문했습니다. 한마디로, 오락가락합니다. 텃밭인의 마음은 갈대예요. 땅에 대한 지식도 확신도 없어서 그러는 거지요. 지금은 토양살충제를 유기농으로 한다는 정도, 비닐멀칭을 안 한다는 정도, 농약은 안 쓴다는 정도로 적당히 타협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텃밭 농사를 하면서 느끼는 꺼림칙한 느낌이 있는데 말이죠. 농사는 적극적인 '살충'인 것 같다는 거예요. 어제도 밭 귀퉁이에서 흙을 헤치니 개미가 폭발을 하더군요. 개미집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계피를 팍 뿌려줬어요. 개미는 계피를 덮어쓰고도 활달하고 힘차게 달리더만요.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불행이라면 불행이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겠지요. 그런데 계피를 뿌린 그 순간의 제 마음은 '살충' 아니겠습니까? 새로 주문한 토양살충제가 도착하면 그걸 들고 밭에 가서 뿌려댈 텐데, 백강균이라는 균으로 흙 속의 굼벵이 같은 유해곤충들을 죽이는 방식이라는데, 유기농이라는 이름으로도 적극적 살충에 대한 이 느낌은 어쩌지 못합니다. 이 두 차원은 별개의 문제니까요.
개미야, 미안해! 그런데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계피향이 좋진 않았니?!
이번주의 텃밭 기록을 합니다:
8월 24일: 바질 모종을 심었다.
8월 26일: 고수, 아욱, 비트, 홍당무, 들깨, 쑥갓 씨를 파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