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더위가 언제 있었던가 싶게 갑자기 서늘해졌습니다. 가을입니다. 주말농장의 어느 텃밭에는 봉선화가 예쁘게 피었네요.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 하는데, 이미 봄에 결실을 맺은 식물들도 있고 여름 내 그리고 늦가을까지 결실의 기간이 긴 식물들도 있습니다.
귀염둥이 딸기는 이미 봄에 결실을 끝내고 여름 동안 잎을 무성하게 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어요.
딸기는 월동을 합니다. 그러니 저 푸른 잎이 단풍이 들고 노랗게 마르고 나면, 겨울 동안 뿌리에만 생명을 담은 채 겉으로는 마치 죽은 듯이 보일 거예요.
여기에 또 시드는 식물이 있습니다. 바로 고추입니다.
병이 든 것 같아요. 옆의 고추는 아직 생생하거든요. 하지만 생생한 고추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들 거예요. 고추의 생명 주기는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하얗고 작은 꽃들을 열심히 피워 열매로 키워냈던 여정이 이제 거의 막바지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가을은 식물들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줍니다. 다시 싹을 틔워내고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때가 가을입니다. 텃밭 한쪽에서 고추는 시들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어린 식물들이 자라고 있어요. 아욱과 당근과 비트가 마치 유치원생들처럼 재잘거리는 것 같네요.
한 달쯤 전에 심은 쪽파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가을을 환영하는 듯, 잎사귀를 활짝 뻗으며 만세를 부르는 것 같네요. 그렇죠, 가을은 환영할 만합니다.
여기에 키 큰 친구와 키 작은 친구가 다정하게 서 있습니다. 한 친구는 봄여름을 살았고, 다른 한 친구는 막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계절을 경험합니다. 가을이라는 계절입니다. 봄의 화려함과 여름의 맹렬함을 아는 키 큰 친구는 막 자라고 있는 어린 친구와 함께 나란히 이 계절을 살고 있습니다. 가을은 둘 다 처음입니다. 그리고 유일할 계절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가을은 김장배추와 김장무의 계절이기도 하지요. 주말농장에서는 말이죠. 온라인으로 황금배추를 주문했어요.
8월 마지막주 주말에 배추 모종과 무 모종을 심었습니다. 주말농장은 봄에 상추와 감자를 심을 때와 가을에 배추와 무 모종을 심을 때가 황금기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겨우내 몸이 근질근질하던 텃밭인들이 주말농장 개장을 기다렸다가 뛰쳐나와 흙으로 덤벼드는 때가 봄이라면, 하늘을 찌를 듯하던 의욕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꺼져버리고, 덥고 비 내리는 지루한 여름 끝자락에,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몸을 일으켜 흙으로 나서는 때가 가을입니다.
다들 김장 배추와 김장 무를 심으니 나도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랄까요. 반듯반듯하게 모범생처럼 모종들을 심어놓은 밭을 보면 눈치가 보여서라도 배추와 무 한 줄은 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장 무 모종은 유난히 예쁘네요. 모종 세 개에 천 원입니다.
가을은 봄에 이어 또 한 번 재배를 시작할 수 있는 계절입니다. 봄여름이 좀 아쉬웠다면 다시 의욕을 일으켜 볼 수 있겠어요. 하지만 짧습니다. 9월과 10월, 길면 11월까지 고작 두세 달입니다. 가을은 서늘한 기후를 즐기거나 견딜 수 있는 식물들만 텃밭에서 자랍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저기 저 멀리, 저 끝에서 찬바람이 다가오고 있어요. 여름의 뜨거운 자락이 아직 머물고 있는 중에도 말이죠. 가을은 그래서 뜨거움과 차가움이 뒤섞인, 열정과 한탄이 공존하는, 참 묘하고도 묘한 계절입니다.
이번주의 텃밭 기록을 합니다:
8월 31일: 배추, 무, 상추 모종을 심었다.
9월 2일: 2차로 쪽파 종구를 심었다. 쑥갓, 홍당무, 비트 씨를 파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