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주말농장은 참 바쁩니다. 내 안의 농부가 깨어난 것일까요? 모두들 새벽형 인간이 되어 부지런히 줄 맞춰 모종을 심고 다람쥐처럼 씨를 묻어놓았습니다. 밭마다 연둣빛이 솟아나고 있어요. 대부분은 김장 배추와 김장 무이지만 상추도 꽤 보입니다.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고 싶은 마음은 내가 뭘 어디에 심어놓았는지도 모르게 여기저기에서 결과물들을 보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이게 무슨 식물의 떡잎인가, 내가 뭘 뿌렸던가, 고심하던 이것은-
며칠이 지나 보니 당근이더군요.
아직 정체를 확인하지 못한 작물도 두 종이 있습니다.
가을 텃밭의 한 모퉁이에서는 파와 부추와 미나리가 김장 무를 새 가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녀석, 귀엽네." 그런데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곧 알게 될 겁니다. 고양이인줄 알았는데 호랑이였다, 이런 거죠. 김장 무는 하루가 다르게 커서 미나리와 부추의 자리를 침범하며 이들을 위협할 거예요. 작년에 보니, 김장 무가 자라면 흙 위로 불쑥 솟아오르는 모양이 무서울 정도더라고요.
김장 무를 받아들인 부추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다른 밭에서는 부추 꽃이 많이들 피었는데 제 밭에서는 꽃대가 겨우 2개만 올라왔어요. 금이나 은은 적어서 귀하게 느껴지는 거라죠? 부추 꽃도 그런 것 같습니다. 새삼스레 꽃봉오리를 들여다보니, 단정하게 각이 졌네요! 꽃의 흰빛은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방풍꽃은 씨앗이 여물었는데, 그 모습 또한 아름다움의 표본 같습니다.
씨앗이 빠져나간 빈 꽃들을 포함해서 말이지요.
방풍꽃은 씨앗이 자라서 독립했지만 밭 한쪽에서는 아직 씨앗이 차는 중인 식물도 있어요. 바로 서리태입니다. 모습은 강낭콩과 별반 다르지 않네요.
몇 장 되지도 않는 콩잎으로 장아찌를 담근다니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이젠 알겠어요, 콩잎 장아찌를 담그는 이유를요. 잎이 정말 무성합니다. 잎사귀 아래 콩깍지들이 잔뜩 달린 것 같은데 시퍼런 잎사귀들이 심란해서 들추질 못하겠어요.
아침에는 쌀쌀하다 싶을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지만 낮은 다시 30도를 훌쩍 넘습니다. 여름과 가을이 하루 안에서 교차하는 시절이네요. 우리는 지금 두 계절을 살고 있습니다.
브런치의 글을 올릴 때면 제목이며 구성 등을 이리저리 궁리하게 되는데, 원래 계획으로는 밭에 물을 주는 영상을 찍어 올리려고 했으나, 정작 밭에 가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물만(!) 주고 왔습니다. 아차차... 그래서 요 며칠 제가 빠져서 듣고 있는 곡으로 제목도 달고 영상도 올리기로 했습니다(이런 간단한 방법이 있었네요^^)
'따로 또 같이' 4집에 있는 "나는 이 노래 하리오'입니다. (브런치작가 Jeff Jung의 매거진 '음악 한 스푼의 위로'에 이 밴드를 아름답게 추억하는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우리는 여름에서 가을로 흐르는 시냇물에 발을 담근 채로 다들 저마다의 노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잠깐 그런 상상을 해보아도 좋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kO88mP46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