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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터가든 Oct 22. 2023

9화: 진정한 여자의 매력


여자 1호는 출근 준비를 하며 거울 앞에 섰다. 어젯밤에 여자 1호와 핸드폰으로 1시간 동안 열변을 토하며 만나본 적도 없는 미셸이라는 여자의 인간성을 샅샅이 욕한 후, 어쩐지 분해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거울 앞에 선 33살의 여자.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서 5년째 일하면서 얻어진 세련된 태도와 화술, 스포츠업계의 최신 트렌드를 좍 꿰는 지식, 일하는 여자로서 느끼는 자신감까지 갖출 것은 다 갖췄다. 남들은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외모지만, 그 안에는 언뜻 봐서는 알아채지 못하는 진정한 미모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게다가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할 만큼 치명적인 미모다. 진짜냐고 묻지 마라. 그래야만 하니까. 그게 세상의 소금 같은 진리니까. 그게 모든 드라마와 영화에서 말하는 진정한 사랑이니까. 제발 묻지 마라. 안 그러면 큰일 나니까.

    대학교 다닐 때 미팅, 소개팅을 처음 시작할 때 남자들이 외모로만 여자들을 평가하는 걸 알고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곧 나라는 여자는 오래 보아야 예쁘다는 나태주 시인의 결론에 일찌감치 깨닫고, 미팅, 소개팅을 그만뒀다. 학교든, 직장이든, 동호회든, 자연스럽게 자신을 꾸준히 만나야 하는 세팅에서 자신의 매력이 발산될 것이므로. 여대를 다니는 탓에 대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선배를 만날 기회는 놓쳤고, 그 기회는 직장에서 잡으리라 내심 벼르고 있었다. 내가 취업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회사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 꽤 괜찮은 베네핏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인 만큼 훈남 사원들이 많고, 게다가 서울 시내에서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있는 곳에 회사 사무실이 있어서 도처에 훈남 회사원들이 많은 곳이다. 오늘도 어디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출근 준비는 소홀히 할 수 없다. 꾸안꾸, 무심한 스타일로, 도시 감성의 올블랙 패션으로 차려입고 지하철을 탔다. 

    최근 보기 시작한 <러브? 러브?! 러브!> 이번 시즌에서 일반인이지만 딱 자신의 분신과 같은 캐릭터를 만났다. 지적이고, 센스 있고, 자신의 일에 열심이고, 현명하고, 성격도 좋고, 모든 면에서 내가 응원하고 싶은 바로 그 여성, 바로 나나다. 하지만 남성 출연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어서 진심 안타깝다. 왜 남자들은 다 미셸을 좋아하는 거야? 

    출근하는 동안 지하철에서 어제 끝난 프로그램 댓글을 챙겨보고 있는데, 모두들 최종 선택을 앞두고 자신만의 시나리오를 짜고, 그 근거를 설명하는데 열심이다. 나나를 응원하기 위해서라도 퀴즈에 참여해야겠다. 남성 출연자들은 이번 데이트에서 나나의 진가를 발견했으니, 이제 그녀를 선택해야만 한다! 미셸의 간교한 꾀에 넘어가지 말고, 끝없는 용기와 지혜를 갖추고, 어둠의 동굴 속 멀리 그대를 봐야 한다! 

    최종 선택 정답을 맞히려고 하니, 앤드류부터 애매하다. 당연히 미셸을 선택할 것처럼 보이지만, 최근 데이트에서 나나의 현명함에 드디어 눈을 뜬 만큼, 최종에는 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앤드류 같은 잘난 체 하는 속물 캐릭터가 의외로 결국에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걸 종종 봐왔거든.    

    출근해서 메일함을 열어보니 신규입사자 소개 메일이 들어와 있다. 클릭. HR에서 보낸 메일 속에는 또 다른 미셸 같은 여자가 배시시 웃고 있다. 필터를 잔뜩 걸고 찍은 사진이 몹시 거슬린다, 짜증이 치미는데, 옆자리, 뒷자리 남자 동료들이 수군댄다. “오, 예쁜데?” “우리 골프 동호회 영입해요.” 아침부터 화기애애한 이 분위기 무엇? 이런, 열받아. 이게 웬 현실판 <러브? 러브?! 러브!>야??

    이어폰을 귀에 꽂고 바로 <러브? 러브?! 러브!> 프로그램 게시판을 열고 최종선택 퀴즈에 접속한다. 고민 없이 앤드류도, 톰도 모두 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답을 제출한다.

    그래, 이게 내 답이야. 이로서 이 거지 같은 세상을 응징하고, 정의가 승리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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