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팀장: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팀 점심하시죠. 저녁 회식은 여러분도 부담스럽지만, 점심은 어차피 먹을 거니까. 어디 좋은 데 예약해봐요.”
MZ 대리: “팀장님, 저는 빼주시면 안 될까요? 점심시간은 제 개인 시간으로 알고 있는데요.”
올해 초, 제가 다니는 회사 옆 부서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두 사람의 간단한 대화에 요즘 직장생활의 모든 고단한 문제가 모두 녹아있는 듯합니다. 우선 왕 팀장은 스스로를 배려심이 많은, 쿨한 보스라고 믿고 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점인데 매주 있는 팀 회의에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습니다. 팀 회식을 통해 분위기 반전을 하고자 합니다. 저녁 회식은 업무시간의 연장이니, 팀원들을 배려해서 점심 회식을 제안한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합니다. 그런 만큼, MZ 대리의 이기적인 반응이 괘씸합니다.
하지만 MZ 대리는 어이없을 따름입니다. 다음은 그의 불평 포인트입니다.
‘온갖 회의 따라다니느라고 내 업무 할 시간도 부족한데 왜 또 회식을 한다는 거지?’
‘점심시간은 내 개인 시간인데 내 맘 편한 사람들하고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보내야지. 팀장이라고 직원들 개인 시간 맘대로 하는 건 아니지.’
회식 가봐야 본인 잘 나갔을 때 자랑만 하고 직원들은 다 맞장구 쳐주고 피곤할 거 뻔히 아는데, 너무 본인 생각만 하는 거 아냐?’
요즘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확실히 나만의 자유 시간이 되었습니다. 팀 동료랑 먹든, 나랑 취향이 맞는 다른 팀 동료랑 먹든, 보스랑 먹든, 혼자서 먹든, 개인의 선택인 거지요. 2년 넘게 지속된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업무환경도 나 홀로 점심시간 트렌드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것 같습니다. 부지런한 사람은 회사 근처 헬스장에서 운동도 하고, 영어학원도 다니면서 자기 계발도 합니다. 대단합니다.
그렇더라도 가장 큰 변화를 실감하게 된 것은 팀장이 같이 점심 먹자고 할 때 MZ세대 팀원들의 반응일 것입니다. “점심시간만큼은 내 시간이니까 편하게 먹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90년생이 있고, 그러면 그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겁니다. 팀장 입장에서는 팀과 보내는 시간이 이렇게 싫은가, 개인 시간이 그다지도 중요한가, 어떻게 팀장이 얘기하는데 단칼에 거절할 수가 있나, 싶어 서운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꼭 상처받을 일만도 아닙니다. 팀장이라고 해서 팀원들과의 자리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내가 팀원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하는데…’ 하는 걱정에서 과감히 탈피할 수 있습니다. 팀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무조건 지갑을 털어야 하는 상황도 생기지 않으니,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저도 팀장이었을 때 되도록이면 팀원들과 점심을 먹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부서와의 회의, 본사와의 회의 등 업무 루틴이 팀원들과 다르다 보니 점심시간 맞추기가 어렵기도 했고, 점심시간에는 외부 업체 사람을 만나는 약속을 일부러 잡을 때도 많았고, 점심시간만이라도 팀원들끼리 편하게 수다를 떨으라는 배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팀원들과 시간을 충분히 많이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서 미안하게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오해였다니 다행스럽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합니다.
‘자유 점심’ 또는 ‘나 홀로 점심’이 가능해진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모두에게 옵션을 주는 것이니까요. 예전처럼 팀 단위로 점심을 먹을 때는, 같은 팀 동료가 업무를 마칠 때까지 30분씩 기다렸다가 같이 나가고, 내가 먹고 싶지 않은 메뉴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고, 그리 관심 없는 대화를 듣고 앉아있어야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러면서 같은 팀끼리 친분을 쌓고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었지요. 여전히 그 즐거움은 계속 누릴 수 있습니다. 단, 조인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조인하지 않을 뿐이지요. 단, 팀 단위로 뭔가 축하할 일이 있을 때, 큰 행사를 성공리에 마쳤을 때, 퇴사자나 신규 입사자가 있을 때 등 다 같이 모여 기념할 일이 있을 때는 꼭 챙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런 케이스는 MZ세대 친구들도 모두 이해하는 바입니다.
현재 저는 자유롭게 점심을 먹습니다. 혼자 먹을 때도 있고, 팀과 같이 갈 때도 있고, 집에서 싸올 때도 있습니다. 다른 부서 분들과 같이 먹자고 청할 때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라도 팀장이었을 때보다는 자유롭습니다. 점심(點心), 즉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낭만적인 시간인데, 누구에게든 괴로워서야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