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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형 Nov 13. 2019

나날이 정드는 가족

대부분의 동물은 자기만의 영역이 있다. 나도 한때 그런 영역 비슷한 게 있었다. 영역표시를 하 않아서 잘 몰랐겠지만 내 기질과 성향에 맞게 그어놓은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다. 그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 역시 그 밖으로 잘 나가질 않았다. 선을 넘어봤자 피곤할 뿐이니까. 사회성만 놓고 보면 낙제점까진 아니더라도 결코 우등생은 아닌 셈이었다. 하지만 세월 따라 나뭇가지가 뻗어가듯, 내 인맥도 뻗어갔다. 회사에 들어가니 선후배가 순식간에 늘었다. 영업을 하다 보니 고객과 파트너도 생겼다. 결혼은 또 다른 식구를 맞이하는 계기였다. 나만의 영역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핸드폰에는 어느덧 천 명이 넘는 사람이 저장돼있었다. 경조사의 빅뱅이 시작되었다.


세월이 흐르자 인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출처: 픽사베이)


처음에는 분명 경사가 많았다. 승진에 이직에, 시집·장가, 돌잔치가 수두룩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조사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부친상, 모친상, 장인상, 장모상. 조금 지나자 배우자상, 본인상까지. 장례식장에 참 많이도 다녔다. 갈 때마다 느끼는데, 어르신이라 해봐야 대부분 아버지보다 몇 살 위거나 또래셨다. 중년 이래봤자 나와 몇 살 차이도 안 났다. 예전엔 ‘죽음’ 하면 고배율 망원경으로 봐야 했는데 어느덧 가시권에 들어온 셈이다.


같은 직장에 다녔던 부장님의 장례식에 다녀온 적이 있다. 영문도 모른 채 마냥 즐거워하던 부장님의 막내 아이를 보니 집에서 놀고 있을 아이 생각이 났다. 갑자기 짠해져서 육개장이 도무지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뒤늦게 친해진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마음을 다잡고 갔는데도 오열하는 친구를 본 순간 가슴이 무너져서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아이의 친구 엄마가 둘째를 낳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불과 몇 주 전에 함께 만났던 아내의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기분이 내내 울적했다. 지금껏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들이 어느덧 내 이야기로 들리기 시작했다.


유명인의 죽음을 접할 때 유독 가슴이 먹먹해지는 가 있는데 대게 나와 비슷한 상황일 때 그랬다. 나이가 비슷하거나 내 아이 또래의 자녀가 있거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상황이 비슷했다. 집안 사정도 비슷했고, 고민도 비슷했다. 나이도 비슷했다. 많아 봤자 위아래로 10살 이내였다. 심지어 이들은 화면 속에서나 보던 인물이 아닌 내가 일일이 악수하면서 만나온 사이가 아니던가. 그네들의 삶은 이미 내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죽음은 내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들의 부모님 일은 내 부모님의 일이었고, 그들의 아내와 자녀의 일은 내 아내와 자녀의 일과 다름없었다. 그들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었다 (출처: 언스플래쉬)


죽음이란 기실 대단한 일은 아니다. 가을 되면 낙엽 지듯, 생명 있는 모든 것이 거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아무도 바라진 않지만.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장례식장에 가면 공기부터 살피게 된다. 남 일 같지 않으니 기왕이면 호상(好喪)이길 바랐다. 어차피 기분은 착잡하겠지만 그나마 이런 죽음이라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같기 위함이랄까.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이다. 그런데 간혹 애매한 경우도 있다. 당사자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남겨진 이들에게는 최선이 결과가 되는 경우 그렇다. 한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옆 테이블 어르신들의 대화를 들었다.


“어째 상주들이 담담해 보이네.”

“몇 년 전부터 몸이 안 좋았잖아. 수술도 몇 번 받았고. 마음의 준비가 된 거지.”

“그랬구먼. 호상이네 호상.”

“그렇지. 남은 사람 맘고생 안 시키면 호상이지 뭐.”


호상이라니. 귀를 의심했다. 생전에 지병으로 고생을 했는데. 이제 없는 사람이라고 대놓고 남은 사람 기준으로만 해석하는 거 아닌가. 하긴 그분들을 탓할 것만도 아닌 게 하마터면 나도 상주에게 “그나마 다행이네요”라고 할 뻔했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서인지 상주들 얼굴이 너무 평온해 보이긴 했다. 고인 입장에선 억할 만하다. 마지막까지 고생하 갔는데 남의 속도 모르고, 호상이네, 다행이네 하는 소리나 하고들 있으니. 나라면 어떨까. 아무래도 예고 없이, 고통 없이 가버리는 게 최고가 아닐까. 남은 이들이야 갑작스러운 나의 죽음에 가슴이 미어지겠지만. 문득 아내와 아이가 떠올랐다. 아니다.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가족 간에도 정이 든다 (출처: 언스플래쉬)


어떻게 죽는 게 나와 가족에게 최고의 죽음일까. 답은 의외로 죽음의 반대편에 있었다. ‘선택할 수 없는 것을 고민하기보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자.’ 호상(好喪)이든 악상(惡喪)이든 어느 정도의 후회를 길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평소에 후회를 줄여버리면 되지 않을까. 내 기준으로 보면 최대한 가족과 함께 지내면 될 일이었다. 후회 남기지 않으려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고 했던가. 틀린 말은 아니다. 내심 오늘의 수고가 내일의 열매가 되기를 바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당장 뭐부터 해야 할까. 과제를 마무리하는 것? 칼퇴근? 한 그루의 사과나무 심기? 정말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가족에게 달려갈 테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가족 곁에 있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게 생겼다. 출산휴가에 연차 5일을 더 붙이고 말겠다는 사명감이 아닌, 남은 인생을 최대한 가족과 함께 보내겠다는 사명감이었다. 사명감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성공기준을 ‘사회에서의 인정’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으로 바꾸고 가장 먼저 한 것이 직업을 바꾼 것이다. 직업을 바꾸자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의 사 분의 삼이 순식간에 필요 없어졌다. 직업이 바뀌자 친구가 바뀌었고 이내 일상이 바뀌었다. 아니, 다시 예전의 나의 영역으로 돌아왔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변화라고 한다면 전보다 열 살 정도 나이가 들었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다.


한집에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라 한다. 단지 식구로만 지낼 생각이라면 함께 밥만 먹어도 된다. 하지만 그 이상이 되고 싶다면 함께 호흡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대단할 것도 없다. 밥만 먹을 게 아니라, 차도 함께 마시면 된다. 대화하는 시간을 늘린다면 금상첨화다. 함께 숨 쉬는 시간을 늘려갈수록 가족 간에도 정이 든다. 함께 하는 것의 지경이 넓어지면 언제부턴 가는 알아서 가족을 찾게 된다. 수영장도, 도서관도, 서점도, 슈퍼도, 가족 모임도 함께 가고파진다. 보고 싶어도 보고 싶은 마음은 이제  연애를 시작한 커플의 전유물이 아니다. 가족도 그런 마음을 갖는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감동이 있을 때 비로소 식구는 가족이 된다.


저녁 아홉 시가 되면 아이는 아내와 함께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나는 서재로 향한다. 아이는 바로 자는 법이 없다. 오늘 일을 시시콜콜 엄마에게 늘어놓느라 한참 동안 깨어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집안이 고요해진다. 긴 하루를 추억하느라 가쁘게 내쉬던 아이의 숨이 색색거리는 숨으로 바뀐 것이다. 천천히 서재 문을 열고 나와 안방으로 향한다.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아내 옆에 가만히 눕는다. 그리고 함께 아이를 바라본다. 꿈나라에서 또 누구를 만나 놀고 있는지 오물거리는 작은 입술이 귀엽다. 오늘 하루도 우리 가족 행복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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