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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치형 Nov 11. 2019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있다

세월호 (출처: 위키백과)

2014년 4월, 한 여객선이 침몰했다.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서 발생한 이 대형사고로 전체인원 476명 중 약 300명이 사망했다. 딱히 나와 관련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내 마음은 무너졌다. 나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마음이 무너졌다.

    

나는 그때 옷 장사를 하고 있었다. 매일 저녁 동대문 도매시장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퀄리티 좋은 저가 브랜드가 많아져서 예전만큼 동대문이 불야성을 이루진 않는다고들 했지만 내 눈에는 이보다 더 문전성시를 이루는 시장도 많지 않아 보였다. 반듯한 개미굴. 아마 도매시장을 가장 잘 묘사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두 사람이 어깨를 마주하고 걸으면 꽉 차는 좁은 복도의 양옆으로 고작 몇 평짜리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이 거대한 개미굴과도 같은 곳에 매일 수천 명의 사람이 몰린다. 전날 주문받아 놓은 옷들은 성인 몸통만 한 큼지막한 봉투에 담겨  출병을 앞둔 병사처럼 오와 열을 맞춰 쌓여있었는데 덕분에 좁은 복도가 더욱 비좁아지곤 했다.


동대문은 한국 경제의 축소판이었다. 시끄러우면 시끄러울수록, 포장된 물건이 많으면 많을수록 호황이었고 그 반대는 불황이었다. 세월호 사건 발생 후 동대문은 한동안 조용했다. 조용하다 못해 썰렁하기까지 했다. 못해도 수백 번을 들락날락했는데 그렇게 썰렁했던 건 처음이었다.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 복도는 대로처럼 텅 비어있었다. 대자연이 일으키는 재앙도 전조가 있는 법인데 이번 불황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닥쳤다. 그렇다고 사람이 전혀 없진 않았다. 그 와중에도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나처럼 물건을 떼러 나온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다만 미리 짜고 방문하기라도 한 듯 조용했다. 침울한 분위기. 마치 거대한 합동분향소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아니네요.”

“그러게. 주문이 뚝 끊겼어. IMF 때보다 더 심해. 에그 불쌍해라. 애들이 무슨 죄야.”


대부분의 대화가 이랬다. 사실 거기 있는 사람 대부분 세월호 승객과는 무관했다. 사는 곳도 달랐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두세 다리 건너면 연결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 일이었다. 하지만 남 일 같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그때의 기분을 묘사하려면 다시금 그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데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 아무튼 울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오는 세월호 관련 소식에 그 울적함은 한동안 동대문을 한산하게 만들었고, 한국인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아기 천사 알라 쿠르디 (출처: www.charitytoday.co.uk)


그로부터 1년 하고 5개월 후. 뉴스에 나온 사진 한 장으로 이번에는 전 세계가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세 살배기 아이가 곤히 잠든 듯 해변에 고개를 묻고 죽어있는 사진이었다. 아이의 이름은 아일란.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한 가정의 막내였다. 우여곡절 끝에 터키에서 작은 배를 타고 그리스로 가던 중 배가 침몰했고 아일란과 그의 형, 그리고 엄마도 모두 죽고 말았다. 생김새도, 사용하는 말도 다른 그 아이. 심지어 세상에 존재했는지도 몰랐던 그 아이의 죽음에 전 세계에서 추모의 물결이 일었다. 당시 내 아이도 비슷한 또래였기에 그 슬픔은 더욱 컸다.


수영이나 할 줄 알았을까. 두려움에 필사적으로 엄마 품을 찾았을 것이다. '엄마한테 가야 하는데, 엄마한테 가야 하는데' 분명 엄마도 아이를 애타게 찾았을 것이다. 손을 뻗어 겨우 아이의 몸에 닿았을 때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내 아가. 사랑스러운 내 아가' 하지만 얼마 못가 차디찬 바닷물을 들이키고 이내 잠잠해졌으리라. 성난 황소같이 굴던 파도는 요람을 흔드는 부드러운 손길이 되어 곤히 잠든 아이를 터키의 어느 해변에 가만히 데려놓았다. 한참 가족의 품이 그리울 나이. 아일란은 홀로 쓸쓸히 해변에 누워있었다. 바다는 파랬고. 아이의 옷은 피처럼 빨갰다. 눈꽃 송이처럼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면 나았을까, 강변에 핀 개나리처럼 노란 옷을 입었다면 위안이 되었을까.


‘아일란 쿠르디’로 처음 기사에 실리긴 했지만 정확한 이름은 ‘알란 쿠르디’다. 아랍어로 ‘알란’은 ‘깃발을 나르는 자’,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라는 뜻이란다. 새로운 생각이나 가치를 처음 주장해서 그 사상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는 사람을 뜻한단다. 알란은 자신의 이름대로 난민이 처한 현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강 건너 불구경 하던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난민을 향한 온정이 쏟아졌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었다. 분명 의미 있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알란은 세상의 관심을 얻었으나 더는 숨을 쉬지 않는다.



세상의 분쟁은 여전히 그칠 줄 모른다. 오늘도 수많은 알란이 죽었다. 어쩌면 내 이야기가 될 수 있었고 내 아이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다만 시리아에 태어나지 않았고, 세월호에 타지 않았을 뿐이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우리가 딱히 뭔가를 잘해서 맘 편히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질 않는다. 그 일은 언제라도 내 일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침울했는지 모르겠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아이들의 절규를 듣진 못했지만, 알란이 느꼈을 공포를 마주하진 못했지만, 남의 일이 아니란 걸 알기에 속으로 울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좋든 싫든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가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삶이란 연극을 이어간다. 그러다 갑자기 하나의 배경이 사라지면 그제야 눈치를 챈다. 이 연극에도 끝이 있음을. 사람은 경험을 통해 세상을 지각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은 그에게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죽음은 모든 것을 마무리 짓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강력한 경험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물을 수도 없거니와 새로운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만 죽음을 경험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나와 닮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닮았다. 언젠가 태어났고, 언젠가 죽는다. 마치 쌍둥이처럼 똑 닮았다. 어쩌면 우린 남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죽음에 우리가 그토록 가슴 아파할 이유는 없을 테니. 누군가의 마지막 숨이 그토록 슬픈 이유는 그 안에서 나의 마지막을 봤기 때문이리라.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 알란이 타고 있던 작은 보트가 가라앉았을 때 나도 가라앉았다. 그들의 마지막 숨은 나의 마지막 숨이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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