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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엽 Jan 04. 2022

지하 8층, 1.9평짜리 방

식은 헤드셋을 살짝 벗어 바지를 내리고 채취기를 착용했다. 식이 기대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모르지만 채취 과정은 식의 기대보다 훨씬 빠르게 끝났다. 식은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셀로 들어가기 전 가장 꺼려지던 일을 마쳤다는 후련함을 가지고 병원을 떠났다.


입주 당일 식은 오랫동안 살던 아파트와 이별하고 셀로 향했다. 짐은 어제 셀로 먼저 보낸 터라 따로 챙길 건 없었다. 셀이 있는 곳 위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셀이 여기라는 것을 모르는 누군가 였다면, 발아래 5000명이나 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그저 커다란 부지의 숲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환풍구나 지상 시설조차도 교묘하게 감춰져 있었다.


식은 안내서를 따라 셀 입주지원 지상센터를 찾았다. 입주지원 센터 건물은 공원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숲 속의 나무 사이로 난 산책로를 따라 15분 정도 걸어가자 사방이 유리로 되어 투명한 1층 건물이 보였다. 건물 안에는 사람들도 보였고, 대기용 소파와 가운데에는 지하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도 보였다. 식은 문을 열고 들어가 입주 절차를 밟았다. 자잘한 건강검진이며 심리검사, 특히 폐소공포증 검사와 성범죄 잠재성 검사를 했다. 셀에 들어가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두 가지 검사는 필수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씩 자신도 폐쇄공포증이 있는 줄 몰랐다거나, 전과조차 없는대도 불구하고 성범죄 잠재성을 띈다는 이유로 입주자격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 VR을 이용해 좀 더 심층적인 시뮬레이션 검사를 진행하는데 다행히도 식은 둘 다 문제없이 통과했다.


이후 안내 직원은 셀에서 생활하는 법을 안내했다.


“기본적으로 이전에 거주하시던 곳이랑 크게 다르지 않을 거예요. 식사는 셀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해드리는 식단이 있습니다. 선호하는 식단을 고르시면 밖으로 연결된 냉장고나 냉동고로 넣어드려요. 같은 냉장고를 안에서도 열 수 있습니다. 셀 안에 있는 전자레인지로 조리해서 드시면 바로 요리한 것 못지않을 거예요.”

“또 하나가 세탁인데, 셀에 들어가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안과 밖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있습니다. 저희는 ‘포트’라고 부릅니다. 세탁바구니 쓰시는 것처럼 그냥 넣으시면 저희 세탁 로봇이 매일 밤 11시에 수거해 갈 겁니다. 몇 시간 뒤면 세탁 후 다시 넣어드리고요. 택배도 같은 방식으로 받으시거나 보내실 수 있습니다. “

“쓰레기통도 포트와 동일한 방식입니다. 안에서 버리실 쓰레기가 나오면 분리하실 필요 없이 그냥 넣으시면 매일 수거해드립니다. ”

“이 정도면 거의 다 설명해드린 것 같은데 혹시 이외에 궁금하신 점 있으신가요?”

“그 냉장고랑 포..”

“포트 말씀이신가요?”

“네, 그 냉장고랑 포트는 혹시 밖에서도 열 수 있으면 위험한 거 아닌가요?”

“그 점이라면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수거/배달 과정은 로봇으로 이루어져서 사람이 관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질문에 답한 후 직원은 식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803' 숫자가 쓰인 방문 앞까지 안내했다.


“셀에 열쇠는 따로 없습니다. 셀이 사용자의 여러 특성을 복합적으로 파악해서 사용자를 인식하고 문을 열어줍니다. 이렇게 자신의 셀 문 앞에 도착하면 최연식 님을 알아보고 손잡이가 나올 겁니다. “

“어제 보내신 짐은 말씀드린 것처럼 방 안에서 포트를 열어보시고 있을 겁니다. 혹시 또 도움이 필요하시면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식은 감사 인사를 하고 셀 안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왼쪽에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바깥에서 본 숲 속 풍경이었다. 햇빛이 방 안으로 길게 들어오고 있었다. 창문이 없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지하 아니었어?라는 의문을 품고 창문 가까이 가보자 식은 창문이 화면이었음을 알았다. 식이 으레 그렇게 하듯 화면을 터치해보자 풍경이 흐릿해지고 여러 메뉴가 주르륵 나왔다. 식사 주문에서부터 온도 조절, 조명, 환기, 뉴스, 셀 일정 공지사항 등등 이 보였다. 그중에 변기 모양, 침대 모양, 샤워기 모양, 의자 모양의 아이콘이 눈에 띄었다. 식이 방안을 다시 한번 돌아보니 침대가 보이지 않았다. 방안에는 반쯤 눕혀진 라운지체어와 조그만 사이드 테이블 그리고 수납공간이 전부였다. 식은 침대 아이콘을 눌렀다. 라운지체어가 바닥으로 접혀 내려가고 천장에 숨겨져 있던 침대가 벽을 따라 내려왔다. 식은 다른 아이콘도 차례로 눌러보았다. 화장실 아이콘을 누르자 침대 옆 남아있던 공간으로 유리 부스가 밀려 들어왔다. 문을 열어보니 변기와 세면대가 있었다. 식은 짐짓 놀라며 샤워기 모양을 눌러보았고 같은 부스 안에 변기가 접히고 샤워부스가 되었다. 셀은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도록 영리하게 설계되어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미 좁은 공간이 좁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식은 다시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방의 모습을 돌려놓았다. 들어왔던 쪽의 벽면을 돌아보니 아까 말했던 문이 세 개 있었다. 각각 안과 밖으로 각각 향하는 화살표 모양의 아이콘, 냉장고를 뜻하는 눈꽃 아이콘, 쓰레기통 모양의 아이콘이 문 옆에 작게 있었다. 식은 포트의 문을 열어 보았다. 식이 어제 보낸 짐 박스가 있었다. 식이 박스를 밖으로 꺼낸 후, 열어서 짐을 하나씩 필요한 곳에 배치했다. 그중에서도 선인장은 가장 잘 보이는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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