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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싸라 Jan 19. 2024

로컬(Local)의 재미를 찾아서

 

 출근 후 항상 하는 루틴(Routine)이 있다. 업무와 관계된 혹은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받고 있는 여러 뉴스레터를 확인하고, 월간 비용을 내고 보고 있는 유료회원 전용기사와 칼럼 등을 보고 정리하는 일이다. 꽤 오랫동안 이 루틴을 따르는 과정에서 우연히 나 혼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을 뉴스레터도 어찌어찌 구독해 보고 있는 것도 있다. 그중 오늘 하루 내 눈을 오랜만에 확 끈 콘텐트가 하나 있는데 '슈퍼마켓'이라는 잡지다. 잡지라고는 하나 월간 혹은 격월 등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2019년 6월에 처음 나왔는데 지금까지 세 권이 나왔을 뿐이다. 뉴스레터의 내용을 읽고 온라인서점 알라딘에 들어가 해당 잡지에 대해 곧바로 몇 줄 읽은 후 아무 생각 없이 세 권 모두 주문을 했더니 그제야 이 책을 만든 편집부에서 쓴 다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슈퍼마켓에서 여행을 시작합니다. '슈퍼마켓'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슈퍼마켓을 통해 여행을 해석하는 새로운 개념의 도시여행 총서입니다. 한 도시의 사람, 환경, 문화까지 모두 녹아있는 슈퍼마켓에서 도시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법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슈퍼마켓에서 도시를 삽니다." by '슈퍼마켓' 편집부


 세상에 '무조건', '100%'라는 건 없다고 하지만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왠지 "무조건 혹은 100% 없다"라고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행 간다는 생각만 해도 벌써 이렇게 들뜨는데 어찌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 말이다. 최인철 교수는 자신의 책 '굿 라이프'에서 여행을 행복 종합 선물 세트라고 표현한다. 재미와 의미 모두를 갖춘, 먹고 수다 떨고 걷고 노는 행위가 한꺼번에 일어나기에 마치 행복의 끝판왕과 같은 존재 말이다. 


 한데 이렇게 재미난 여행도 장소만 바뀌었지 맨날 하던 거만 한다면 분명 재미가 떨어질 거다. 가령 동남아의 리조트는 편안하고 음식값도 생각보다 합리적이고 각종 편의시설이 잘 돼 있다. 그래서 국가를 달리 해 가더라도 여전히 만족감을 주고 있긴 하다. 한데 결혼 이후 꽤 오랫동안 리조트 여행을 반복해 왔다. 일 년에 보통 한 번 가는 해외여행이기도 하고 애가 어리기에 이곳저곳 막 돌아다니기가 어려울 거라는 심리적인 제약 등으로 인해 말이다. 근데 꽤 오랫동안 리조트 여행을 반복하다 보니 뭐랄까 이젠 감흥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좀 더 즐거운 여행놀이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궁하면 통한다고 그 과정에서 '슈퍼마켓'을 다룬 뉴스레터가 눈에 들어왔던 거다. 


 2005년도, 그러니깐 결혼하기 전에 새로운 도시에 가면 꼭 들르던 장소가 있었다. 대학교 캠퍼스가 바로 그곳인데 처음부터 그랬던 아니다. 내 인생 처음 해외여행이 대학생 시절 '동남아+남중국 배낭여행'이었고, 그 첫 번째 장소가 태국 방콕이었다. 거의 모든 배낭여행자가 모이는 '카오산로드'에 나 역시 짐을 풀었다. 주변에 왕궁도 있고 하니 배회하다 근처 탐마삿 대학교(Thammasat University)에 우연히 들어갔다. 방콕에 한 삼일 정도 머물 거라 어디를 갈까 고민하며 '론니 플래닛(여행 가이드북)'에 코를 박고 있던 내게 한 명이 다가왔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어리바리 여행객이라 경계심을 갖지 않은 것 같다. 특별할 것 없는 얘기로 몇 마디 나누다 몇 가지 물었다. 나 여기 처음인데 어디 가면 괜찮은지, 너희들 자주 가는 괜찮으면서도 싼 곳은 어딘지 등에 대해 말이다. 그는 내가 갖고 있는 론니 플래닛 지도를 보면서 바로 몇 군데 찍어 줬다. 영어로 빼곡하게 돼 있던 가이드북에 멍해있던 내게 뭐랄까 AI가 핵심 내용을 세 줄로 요약해 주는 기분이랄까. 난 바로 '와우!!!'라고 외치곤 연신 고맙다고 했다. 


 그 이후론 방문하는 도시마다 무조건 대학교부터 찾게 됐다. 그 당시는 로컬을 체험한다는 서비스가 겨우 비영리의 '카우치' 정도밖에 없었고, 지금의 '에어비앤비'나 '마이리얼트립닷컴' 등은 없었을 때다. 그 경험이 내게는 강렬해서 방문한 캠퍼스 숫자까지 내 이력서에 넣기까지 했다. 대학교가 특별한 여행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는 도시마다 그렇게도 주구장창 찾아갔던 이유는 이렇다. 언어가 통하는 사람(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국가라 하더라도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이 가장 많이 있다. 또, 자기랑 다른 배경을 갖고 있더라도 새로운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친구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그 지역의 싸고 맛있고 또 재밌는 공간을 많이 알고 있다. 


 '띠링',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는 신호가 왔다. '슈퍼마켓' 세 권 모두를 꺼내 읽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계획을 좀 세워서 아내에게 새로운 여행놀이를 제안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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