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언어를 배우는 시간을 함께 보내기
딸은 이제 곧 만 11세가 됩니다. 하지만 자기는 이미 12살이라고 버럭버럭 우기죠. 어떻게 해서든 한 살이라도 더 높이려고 부득부득 노력합니다. 네, 벌써 5학년입니다. 5학년이 된 지도 1개월이 지났는데 딸은 학습과 관련된 학원을 딱 한 군데만 다니고 있습니다. '과학'입니다. 네? '과학'이요? 네, '과학'입니다. 이건 도대체 무슨... 혹시 자녀 교육에 대해 특별한 철학이 있어서 다른 학원을 안 보내고 있는 건... 네, 아닙니다. 뭐, 나름대로 저희 부부가 나누고 있는 얘기와 어렴풋한 생각은 있기는 하지만 저희만의 굳건한 이상이나 비전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조금만 더 두고 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고민이 많습니다. 집에서 혼자 풀고 있는 'EBS만점왕'과 '디딤돌 최상위' 수학을 이제라도 그만하고 학원을 찾아 보내야 하는 건 아닌지. 작년에 그만둔 영어학원을 다시 다니게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등등에 대해 말이죠. 딸아이의 적극적인 바디랭귀지 피드백을 고려해 지금까지 저희 부부가 선택한 방법은 이렇습니다. 매일 조금씩 집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아, 적고 보니 정말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하나 양파껍질 벗겨내듯 한 꺼풀만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스스로'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주자'. 그렇게 저희 부부는 자연스럽게 과목을 나눴습니다. '수학'은 아내가, '영어'는 제가 말이죠. 오늘 얘기는 그중 제가 맡고 있는 영어공부에 대한 얘기입니다.
작년, 그러니깐 딸이 4학년이 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2년 가까이 다니던 집 앞 영어 학원을 그만두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학습량을 모두 채우고 잘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딸의 짜증도 그만큼 늘었기 때문입니다. 근데 3학년 때까지는 수업이 재밌다는 표현도 간간히 해왔었고, 항상 보던 단어시험도 나름 괜찮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기에 딸이 보인 그 부정적인 반응에 저희는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일단 딸과 얘기 나누고 이해하려고 노력도 해보고 다른 방법도 찾아봐야죠. 얼마간의 시간을 거쳐 딸과 함께 찾은 방법은 이랬습니다.
"아빠랑 일주일에 두 번(학원이 일주일에 두 번이었으니) 영어(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영어공부하라고 준 reading gate 내에 있는 story) 공부하기."
정작 딸은 아빠와 함께 영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만, 저희 부부의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어쩌면 학원에서 내준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학년이 올라가며 갑자기 부쩍 어려워진 단어를 외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 때문에 이것만 아니면 뭐든지 오케이라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 기왕 서로 간에 합의한 옵션을 찾은 마당에 그럼 일단 한번 해보자 했습니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하고 계신 그 생각, 저도 했습니다. 혹시라도 서로 간에 큰소리만 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말이죠. (그럼 와이프한테 돈이라도 받고 가르쳐야 하나...)
자, 이제 영어 학습이라는 목표로 시작한 그 과정(대략 한 학기 정도의 시간)을 몇 개의 에피소드로 나눠 얘기하려 합니다. 참, 저는 bilingual(2개 언어를 native 하게 구사)은 아닙니다. 하나 영어를 수단으로 사용해 돈을 벌고 있는 직업(오너가 한국인이나 해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외국 회사 및 한국에 있는 외국계 회사)을 9년 가까이 경험해 온 점과 대학시절 영어 과외를 했던 것을 양분 삼아 시원하게 시작했습니다. 비록 돈은 받지 않지만 대충대충 할 수는 없는 법. 저는 딸과의 영어 수업 준비를 위해 어떻게 하면 복잡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외국어를 배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제일 중요해 보였습니다. 그건 바로 S(주어) + V(동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