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억한다. 나의 첫 기억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유리온실의 계단을 내려가고 있던 나를 기억한다. 무척 따뜻한 날이었고, 포근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이 기억에 대해 얘기했을 때, 엄마가 꺼내 보여준 사진을 통해 그건 이 세상을 살아낸지 갓 일 년 정도 된 아주 어린 나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붉은 한복 치마와 색동저고리를 입고서 짧고 숱 없는 머리를 애써 양갈래로 묶은 전형적인 아기 머리를 한 나는, 유리온실 안에서 식물들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선생님 커플이었던 부모님은 내가 태어난 후에도 각자의 학교에서 근무를 하느라 주말 부부로 지냈다. 엄마는 외갓집이 있는 시골에서, 아빠는 친가가 있는 도시에서 근무를 했고, 나는 엄마와 함께 시골의 외갓집에서 지냈다. 나의 첫 기억에 남겨진 장소는 엄마의 고향이었다. 엄마의 직장이었던 어느 중학교 안 유리온실이었다. 나를 잡아 이끌던 다정한 손은 엄마의 제자 여중생이었다.
나중에 동생이 태어나면서 우리 가족은 도시로 이사를 왔는데, 외갓집에서 살았던 기억은 유리온실로 내려가던 그 순간의 기억 빼고는 모두 증발해 버렸다. 그래서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엄마나 아빠, 그리고 사랑하는 외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들로 재구축되었고, 어느 부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부풀려지고 각색되어 내 머릿속에 스스로에 대한 일종의 신화처럼 자리 잡았다.
그 시절의 우리 가족은 떨어져 사는 탓에 애끓는 일이 많았고, 그건 갓난아이었던 나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숨을 쉬지 않아 이마에 링거를 꽂고 한 달 가까이 혼자 입원을 해야 했다던가, 병원에서 나온 뒤엔 유모가 엄마 모르게 나를 한겨울 골방에 홀로 팽개쳐놓고 놀러 다녀 내가 빼빼 마르게 되었다던가(엄마는 항상 이 부분에서 분노를 토하신다.), 열감기에 걸려 우는데 목이 심하게 부어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나를 보고 몇 시간이나 달려온 아빠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던가(아빠는 항상 이 부분에서 울컥하신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 갓난아이가 불혹의 나이가 될 때까지도 종종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신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이런 역경들은 필수조건이지만 영광의 순간들 역시 빠뜨리면 안 된다. 되바라진 유모에게서 탈출한 나는 외할머니의 손에 맡겨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내 인생에서 빼빼 마른 아이는 실종된다. 배, 양다래, 앵두, 자두, 살구, 감, 죽순 등등 먹을 것들이 사시사철 지천으로 솟아나던 외갓집에서 나는 금세 살이 포동포동 올랐다. 금세 말했고, 금세 걸었다. 엄마 학교 입구에 있던 사납고 커다란 검정개한테 겁도 없이 다가가 쓰다듬고 안고 부벼서 금세 친구가 되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신혼의 에너지가 충만했던 엄마아빠는 그 시절 낭만적인 사진도 많이 남기셨다. 꽃이 만발한 배나무 앞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엄마와 나, 외갓집 툇마루에서 빨간 스카프를 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나, 단단하게 다져진 흙바닥의 마당 위에서 꽃모자를 쓰고 보행기를 타는 나, 꽃무늬 이불속에서 아빠 품에 꼭 안겨 웃고 있는 나. 엄마 아빠와의 사진들 속의 나는 그들의 첫 아이로서 온 세상의 사랑을 당차게 독차지하고 있으며 아무 근심 걱정이 없어 보인다.
색동저고리 사진은 그때 그 시절의 정점에 있는 사진이다. 엄마는 그날의 내가 무척 귀여웠었는지 내가 태어나서부터 막내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장장 5년여간의 세월이 담겨있는 색 바랜 앨범 안에 그 색동저고리 사진을 여러 장 꽂아두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내가 교정의 벤치 위에 아슬아슬하게 혼자 앉아있는 사진을 가장 좋아한다. 사진 속 아기는 스스로의 균형감각을 실험해 보는 것이 재밌는지 발이 닿지 않는 스릴을 즐기며 개구지게 웃고 있다.
외갓집에서 보낸 시간들은 나를 외할머니를 엄마아빠보다 더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었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내 신화 속에서는 그렇다. 엄마는 늘 큰 문인들을 여럿 배출한 자신의 고향을 무척 자랑스러워하며,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써서 받은 ‘글 쓰는 어머니’ 메달을 보여주곤 했기 때문이다.
또 그 시간들은 나를 도시의 시계보다 더 느리게 사는 삶을 선호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시절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들을 도시에서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느낀다. 도시는 내게 너무 빠르다. 자주 그렇게 생각한다. 바쁜 세상 속에서 나는 한없이 초라하고 패배는 끝없이 이어진다. 거울 속의 내가 미운 날도, 자책하는 말을 퍼붓는 날도 많아졌다.
어느새 턱까지 어깨까지 커버린 아이들과 친정을 찾은 어느 날, 어릴 적 앨범을 들춰보다 오랜만에 그 낡은 교정의 색동저고리 사진을 마주했다. 그리고 문득 엄마에게 허락을 구해 집으로 가져왔다. 사진은 액자에 담겨 화장대 거울 옆에 놓였다. 아침저녁으로 세수를 하고 화장품을 바를 때마다 힐끗힐끗 그 사진을 본다. 사랑과 세상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한 그 아기를. 누구도 그 충만함을 해칠 수 없을 것처럼, 누구도 해쳐서는 안 될, 웃음을 짓고 있는 그 아기의 얼굴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