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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플란트와 변태스러움에 대하여

by 도라

아이를 한 명 낳을 때마다 이를 하나씩 씌웠다. 3년 터울로 세 명을 낳았고, 그동안 총 세 개를 씌웠다. 그중에 하나는 끄트머리에서 기우뚱하게 나던 사랑니가 머리를 디밀어, 애써 씌워놓은 걸 떼어내고 말았다. 그래서 그 이는 한번 더 씌웠다. 두 번째 씌웠던 때에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처음 신경치료할 때 잘못된 것인지 몰라도 그 이는 나중에 단단히 잘못되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생처음 임플란트를 하게 되었다.


뚝딱 되는 것인 줄 알았더니 나사를 박아놓고선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치과에 가서 나사가 잘 자리 잡고 있는지를 확인받는다. 치과를 가기 위해선 내가 사는 동네를 가로질러 흐르는 꽤 넓은 하천을 넘어가야 하는데, 다리를 넘어가기 전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습관적으로 립밤을 꺼내 바른다. 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있는 나는, 점검을 위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동안 입술이 필연적으로 신나게 터버리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립밤을 바르는 동안, 치과의사라면 입술이 예쁜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 쉽지 않을까 상상한다. 구강검진이나 스케일링을 받으러 왔는데 입술이 매끄럽고 혈색이 돈다. 물론 이도 튼튼하다는 가정하에. 내가 치과의사라면 사랑에 빠질 것이다. 수십 명의 허름한 이와 입술을 보다 누군가의 가지런한 이와 반지르르한 입술을 본다면. 치과로 향하는 하천을 건너가며 작고 완벽한 세계를 치과 의자 위에서 발견한 치과의사에 빙의되어 짜릿함을 즐겼다.


하지만 허름한 이와 너덜너덜한 입술을 가진 나는 립밤이라도 바르는 수밖에 없다. 의사 선생님을 사랑에 빠트리고자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대부분이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는 곳을 자세히 보는 이들은 사람들이 미처 신경쓰지 못했거나 숨기고 싶어하는 부분들을 발견하는 법이니까, 그런 곳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내게는 허름한 구석이 있고 그 구석을 남에게 보이는 게 싫어서 그렇다.


초등학생 시절, TV에서는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프로그램이 유행이었다. 운전하는 것을 몰래 지켜보는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부터, 연예인들의 몰래카메라는 물론 이거니와, 가족이나 친구의 의뢰를 받아 그 상대방의 일상을 몰래 방송국 카메라가 찍다가 마지막에 우왁하고 놀라게 하는 사찰 같은 잔인한 프로그램들도 있었다. 몰래 찍힌 그들의 모습은 늘 감동적인 부분이 있었고, 마지막에 대개는 울면서 끝났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 내가 그들만큼 충분히 멋지거나 감동스럽지 못하고 지질한 행동을 몰래할 때마다 잘못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몰래카메라인데 내가 이렇게 행동해서 방송에도 못 나가게 되면 어쩌지.’ 이따위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아무도 모르게 멋진 행동을 하거나 자랑스러울 때엔 ‘누군가 나를 몰래 찍고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중학생 때 머리를 짧게 잘랐다가 후배들에게 팬레터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여자중학교였고, 편지를 보낸 후배들도 역시 여자였다. 팬레터에는 녹음테이프 하나가 동봉되어 있었다. 셋 정도로 추정되는 그 아이들은 내가 등교한 후부터 하교한 뒤까지 하루 종일 나를 몰래 지켜보며 내가 뭘 하는지 녹음으로 기록했고, 그 기록을 내게 선물했다. 집에 와서 그 테이프를 들으며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소름 끼치는 일인지 행복한 일인지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나는 그날따라 학교에 늦게 도착해서 4층까지 두 계단 씩 뛰어 올라갔으며, 배가 고팠는지 매점에 여러 차례 방문했고, 화장실은 몇 번 다녀왔고(머문 시간을 초단위로 기록했다), 아빠를 기다리는 차 속에서 혼자 노래 연습을 했다. 그 아이들은 그걸 다 기록했다. 부끄러웠다. 멋진 선배인 척해놓고서 신나게 과자를 까먹은 일이며, 혼자인 줄 알고 마음 놓고 했던 자질구레한 것들이 창피했다.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누군가 나를 지켜봤다는 사실이 흡족스러웠다. 누군가 나를 위해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비밀스러운 나를 누가 알게 되었다는 게 좋았다. 일기장을 쓸 때도 비슷했다. 누군가 나를 유심히 훔쳐보고 이해해줬으면 하는 바람. 내가 구태여 말할 순 없지만 누군가 몰래 알아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 쓰다 보니 무척 변태스럽다. 양가감정 따위로 포장할 수 없을 정도로 멋쩍게도 참 변태스러운 마음이다. 가스라이팅에 유능한 나쁜 남자에게 빠지지 않고 착하고 순박한 남편과 일찍 결혼한 게 참 다행이다 싶다.


사실 글을 주기적으로 써서 공개적으로 게시하는 목적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한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정들을 전혀 모르는 타인들에게 오픈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아도, 브런치 주소는 공유해 둔다. 적어도 내 브런치북은 그렇게 좀 변태적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시간은 나를 뻔뻔해지도록 내버려 두었고, 변태스러움도 당당하게 오픈할 정도까지 레벨 업시켰다.


그래서 치과의사와 입술이야기니, 몰래카메라를 기다렸다느니 하는 자잘하고 변태스러운 이 글이 완성된 것이다. 얼굴 모를 누군가가 나의 지질함과 소심함과 변태스러움을 담은 이 글을 끝까지 읽을 정도로 집중했고, 한 번쯤 피식거렸다면 그걸로 됐다. 소심한 커밍아웃이 또 한 번 성공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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